일상과 놀기

아주 평범한 음악 이야기 (3)

김에밀 2015. 9. 20. 12:00

오늘은, 한희정이다.



<Drama> (2008)

[너의 다큐멘트] by 한희정



거짓말이었어요 내가

더 이상 그댈 사랑 아니한다고

고개를 떨굴 때 말이에요

그댄 울고 있었죠

<Drama>


'홍대여신' 한희정을 얘기할 때 흔히 붙는 수식어다. 그러나 그 단어 하나로 한희정의 음악세계를 설명하기엔 매우 많이 아쉽다. '홍대여신' 느낌이 나는 <우리 처음 만난 날>이나 <휴가가 필요해> 같은 곡들도 본질적으로 아주 다른 곡이다. 같은 '이별' 주제라도 기타 하나로 단순한 리듬을 반복하면서 (여덟 개의 다른 마디로 구성되어있을 뿐이다. 기타 초보라도 칠 수 있는 쉬운 곡이다.) 본인의 목소리를 얹어 '눈물이 아닌 시간을 믿으라' 라고 호소하는 <Drama>와, 여러 악기를 동원해 어쩌면 뜬금없기까지 한 '브로콜리가 내게 말하기 시작해 우리 그만 헤어져' 라는 가사를 노래하는 <브로콜리의 위험한 고백> 역시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April> (2003)

[Bluedawn] by 푸른 새벽



많이 울었었지

한참을 그래왔지

4월이 가기 전엔

눈부신 햇살과

나를 기다리는 널

떠올릴 수 있는 April

<April>


같은 앨범 안에서도 이렇게 분위기가 다른데 하물며 다른 앨범들은 어떻겠는가. 몇 일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TV 소리를 배경으로 1절 2절 후렴 따위의 형식은 가뿐히 무시해버리는 1분 54초짜리 트랙 <April>은 [Bluedawn]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흙> (2013)

[날마다 타인] by 한희정



그 곳엔 분명

아무 것도 없어보였는데

밤새 물 한 모금

마시게 한 것밖에 없었는데

무서워 두려워

작고 파란 게 돋아났어

그 어두운 곳에서

난 그걸 쉽게 뽑아버리고는

물 한 모금 마시게 했지

<흙>


재작년 발표된 [날마다 타인]도 다채로운 색깔의 트랙들을 엿볼 수 있는 앨범이었다. 디스코, 50인조 오케스트라, 해금연주, 어쿠스틱... '나는 이제 홍대여신이 아니라 홍대여(자댄싱머)신이다' 라는 선언, <방송의 적>에서 한 농담같은 이야기지만 <흙>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순간 수긍할 수밖에 없다. 한희정의 어설픈 발레동작으로 꾸며진 뮤직비디오와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한 사고들을 담고 있는 가사, 한희정의 것이라고는 도무지 믿기 힘든 뿅뿅거리는 디스코풍의 음악. '재미있는 거 하겠다' 라는 말을 잘 지켰다.


정규 2집 발매 단독콘서트에서 한희정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 음악은 '관계' 를 노래하는 것 같고, [날마다 타인]은 그 중에서도 인정과 수용 이야기라고. 앨범 이름과 같은 트랙 <날마다 타인>을 듣다 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도 같은 느낌이다. (인터뷰에서 본 이야기인데) 헤어진 연인과의 재결합을 바랐지만 잘 안됐다는 뒷배경을 알게 되면 더욱더.



<날마다 타인> (2013)

[날마다 타인] by 한희정


너는 마치 거대한 바위처럼

여기저기 흩뿌려져있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나는 매일 거대한 바위들을

온 몸으로 조금씩

힘겹게 밀어낸다

<날마다 타인>


요즘 한희정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보면 도통 조용히 부를 때가 없다. (..) 이전 소위 '홍대여신' 같았던 노래들도 전부 시끄럽게 부르던데, 17일 발표된다는 EP [Slow Dance] 다음 앨범은 혹시 헤비메탈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겠다.


변화하는 뮤지션은 항상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