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학회 2017 추계 학술대회 정리 (1)
오랜만에 한국야구학회 추계 학술대회에 다녀왔다. 발언 내용을 정리해서 글을 써본다. 연사의 발언 내용은 검은색, 개인적인 코멘트는 파란색으로 정리했다. 따라서 검은색의 내용은 강연한 사람 개인의 의견이나 잘못된 사실이 있을 수 있으니, 100% 신뢰하는 건 곤란하다. 파란색의 내용은 나 개인의 의견이나, 발췌한 부분에 잘 안 나와있어서 기억나는 뉘앙스를 덧붙였다. 한국야구학회의 요청이 있을 경우 본 게시물은 수정, 비공개, 삭제될 수 있다.
주제별로 정리해서 쓸까 하다가 강연의 흐름대로 그냥 의식의 흐름 기법을 따르기로 했다. 불편하셔도 다소 양해 부탁드린다. 그리고 쓰다 보니 너무 길어서 두 편으로 잘라 올린다.
<한국 야구의 과거, 현재, 미래> -허구연 (KBO 야구발전위원장)
-9년 전에 비해 야구장이 160개에서 500개로 늘었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하다. 전국에 야구팀만 1만 5천 개가 있는데...
-익산에서 사회인야구/티볼 대회 하나 하는 데 3년이 걸렸다. (지자체 협조받기가 어렵다는 뉘앙스였던 걸로 기억)
-군사정권에서 프로야구를 만들었다고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고 MBC 사장 이진희가 기획해서 MBC가 주도하고 결재받은 것. 전두환 대통령은 기획서 올라올 때까지만 해도 자기가 축구를 좋아하니 당연히 축구일 줄 알았는데 막상 받아보니 야구라서 "이게 축구 아니고 야구가?" 라는 말을 했다고. MBC가 야구를 만들자 열받은 라이벌 KBS 사장이 주도해서 만든 게 프로축구. (이 일화는 나무위키 'K리그' 문서에 나와있다. 그리고 어차피 이진희가 전두환 정권 시절의 대표적인 나팔수 언론인이었는데 군사정권이 만든 게 아니라고 굳이 부정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할 따름.)
-70년대에도 프로화 전환 시도가 있었지만 잘 되지 않았음.
-프로야구는 아직도 '산업' 이 아니다. 내가 보기엔 '산업이 되려고 막 넘어가는 단계' 다. 자생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한다. 프로구단 사장, 단장들이 자기 팀 우승에만 신경쓰지 리그 전체가 어떻게 발전할 건지, 길게 갈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밑줄친 부분이 강연 핵심내용이었다)
-KBO 총재도 전형적인 포상자리였다. 정치인들 최측근이 자리잡고 연봉, 판공비 따내고 매스컴 주목받으면서 책임은 거의 안 지는 자리이니 오죽했겠는가.
-그 전까지는 한일전에 나가면 맨날 5할 아래로 했다. 지금 우리가 일본, 대만 외의 다른 팀 상대하듯 일본이 우리를 상대했는데, 대학 4학년 때 처음으로 한일전에서 4승 1무를 했다.
-잠실야구장 건립 과정에서 서울시는 돈 하나도 안 냈다. 김종필씨 형인 김종락씨가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유치해서 건립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매년 (LG와 두산에게 많은 돈 받아먹고) '얌체짓' 한다. 서울이 하니까 다른 지자체들도 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 정말 문제다. 야구계가 이걸 받아주면 안된다.
-이번 APBC 전에 일본야구관계자들이랑 만났다. 많이 엄살을 부리더라. '내가 보기엔 이번이 제일 약한데' 했는데 잘할 거라고 자꾸 그러더라. 잘하긴 뭘 잘해 7점 줬는데.
-한국 야구 역사가 바뀐 건 1985년 삼성 라이온즈의 베로비치 전지훈련이다.
내가 2년 전에 피터 오말리 초청으로 베로비치를 다녀왔는데, 너무 충격이더라. 토미 라소다한테 뭐라뭐라 하면 "어이 미스터 허, 그 이론은 XX년 전에 바뀌었어!" 했다. 페르난도 발렌수엘라가 피칭 후 아이싱을 하는 것도 놀라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투수들은 공 던지고 나면 감독이 뜨뜻한 물에 들어가서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해서 그대로 그러고 있었다. 귀국해서 '아이싱을 해야 한다' 는 얘길 하니 다들 나를 또라이 취급하더라.
또 내가 내야수 출신이다. 2루수 수비를 할 때 예전엔 백핸드 캐치를 안하고 무조건 몸 가운데로 공이 오게 해서 잡았다. 백핸드 캐치를 하면 혼났다. 그리고 공을 잡으면 무조건 가운데에서 포구해서 (멈추고 디딤발 딛고) 던졌다. 그런데 캠프를 가서 스티브 색스가 수비하는 걸 보니까 백핸드 캐치를 한 다음 그 상태에서 몸을 그대로 (왼쪽으로) 돌려서 던지더라.
지도자들이 그냥 "역기 들지마." "수영하지마." 이런 식으로 피칭 후에 아무 것도 못하게 하는 게 대세였다. 미국에 가서 웨이트를 알게 되었다.
삼성 라이온즈가 1984년 유두열에게 쓰리런 맞고 진 다음에 사장단 회의에서 이병철 회장이 "우승을 와이리 못하노" 해서 아주 난리가 났다고 한다. 그래서 비선팀에서 야구감사도 오고 그랬는데 나에게도 찾아오길래 "삼성은 절대 우승 못한다" 고 했다. 그러니까 삼성 이종기 사장이 나를 불러서 "아니 대체 왜 못한다는 거냐" 고 해서 "팀플레이도 안하고, 국대 출신이 많아서 자부심은 넘친다. 야구 못하는데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이런 얘기를 했다. 그러니까 원래 OB가 가기로 했던 베로비치를 삼성이 웃돈 주고 가게 되었다.
-80년대에 매년 미국을 갔는데 기자들 반응이 "너네도 프로야구를 한다고?" 했다. 외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게 한국전쟁 이런 거밖에 없는데 (국민소득 2만 불이나 되어야 한다는- 이 부분 뉘앙스 확실치 않다) 프로야구를 한국이 한다니까 놀란 거다. 88올림픽 이후에나 그나마 좀 대접이 달라졌다.
-야구장 시설을 보고 미국 가서 또 놀랐다. 베로비치에 7면으로 야구장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 있던 도원, 구덕, 대전, 대구구장은 솔직히 MLB캠프장 화장실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야구는 마스터플랜이 없다. MLB 사장, 단장들을 봐라. 다 젊고 쟁쟁한 (경영인이나 경제 등 말했던 듯) 출신이다. 커미셔너의 역할도 중요하다. MLB에서 고의4구 룰 개정하겠다는 이야기 한 것을 보라. 솔직히 고의4구 (4개 던질 거 하나 던져서 내보낸다고) 그거 바꾼다고 시간이 얼마나 줄겠나? 그런데 '시간을 줄여야 한다' 는 명제 자체는 다들 공감하고 있는 거다. KBO는 시즌 초만 되면 스피드 외치면서 경기 시간 줄여야 한다고 하지만 9월쯤 되면 선수들부터 어슬렁어슬렁 그라운드에 나가고 질질 늘어진다.
-한국 리그는 구단이 힘이 세고 KBO가 힘이 없는 게 문제다. 롯데, LG, 두산 이런 구단들 야구장 지을 때 돈도 안 내고 쓰고 있다. (그러면서 빅마켓이라고 이것저것 다 반대하고 혼자 먹으려 든다는 뉘앙스) 예전에 광주나 대전처럼 만 몇 천 명 들어가는 구장 쓰는 구단은 어떡하냐. MLB 탬파베이는 관중수 꼴찌지만 MLB에서 스몰마켓에 분담금을 주니까 어찌어찌 구단을 꾸려나간다.
-9, 10구단 창단할 때 발로 뛰었다. 그래서 기존 구단이 나를 별로 안 좋아한다. 모 구단에서 신생 구단 창단한다니까 '얼마나 가나 보자' 고 나한테 아파트 내기를 제안하더라. 곧 망할 거라는 그 구단은 몇 년째 PS 갔는데, 모 구단은 이번에 겨우 포스트시즌 갔다. 그 구단 구단주가 (실명 거론함) 이 얘기 듣고 열받아서 승리수당을 (더 걸었다로 알아들음) ... 그래서 선수들이 동기부여가 되지 않나. 작년에 모 구단이 (실명 거론함) 그 구단한테 1승밖에 못한 게 다 그래서인 거다. (승리수당 제도는 재작년 말에 폐지되었다. 아마 이렇게 눈에 불을 켜고 하다 보니까 계속 이기는 흐름이 되었다는 취지인 듯...)
-9년 전만 해도 선수협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야구계는 그나마 인기가 많아서 잘 나가는 편이다. 우리나라 체육단체장 대부분 돈 주고 욕먹는 자리라 다 안하려고 한다.
-야구발전위원장이 되면서 구단을 늘리자, 선수들의 취업의 길을 열자 등 다섯 가지 목표를 세웠다. 9구단 만들 때 박완수 창원시장이랑 운영권, 광고권 구단에 주는 조건으로 사인했다. 이런 조건으로 계속 나가야 지자체들이 지금처럼 버팅기는 게 바뀐다. 4개 정도 기업이랑 접촉했는데 경직된 제조업체 쪽보다는 문화가 유한 IT 기업이 들어오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스포츠 관해서는 염태영 수원시장이 제일 잘하고 있다. 반면 서울은 전혀 아니다. 박원순 시장이랑 대화해봤는데 솔직히 잘 모른다. 서울이 맨날 이렇게 (전술한 내용) 하니까 광주, 대구도 따라하지 않나. 새 구장 만들 때 구단에 돈 안 내게 하겠다고 약속하라 그랬는데 KIA가 300억 삼성이 500억 냈다.
-미닛메이드파크 건설비가 2880억이다. 고척돔이랑 같다. (다들 경악) 근데 고척돔에 띠 모양 광고판 있나? 없다. 물 줄줄 새고 난리다. 그 많은 돈을 썼는데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영화계는 1인 시위도 하고 그러더라. 우리나라 체육계는 학연, 지연으로 똘똘 뭉쳤다. 행정력을 갖추기 힘든 구조다. 허점이 많은 집단이니 최순실 같은 사람이 비집고 들어오는 거다.
-MLB닷컴 같은 통합 플랫폼이 필요하다. 근데 이런 것도 빅마켓 구단이 반대해서 안된다. 기록 문제 얼마 전에 불거졌다. 한국리그는 돈이 되는 분야는 다 놓치다가 뒷북만 친다. 여러분한테 1년에 천원 내고 모바일로 야구 중계 보라고 하면 그걸 안 보겠느냐? 그러다가 다음 해에 3천원으로 오르면 그렇다고 안 보겠느냐? 이기고 지는 건 선수단이랑 감독이 생각할 일이고, (KBO랑 구단엔) 유능하고 열정있는 전문가들이 들어가서 산업화에 힘써야 한다.
-요새 코치 초봉 4500... (졸다가 뭔 내용인지 까먹었다.)
Q&A
Q1: 아마추어 지도자들의 지도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게 리그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A: 그걸로 30분은 말할 수 있다. 엘리트 스포츠가 국가에 이바지하는 게 대체 뭔가? 99%가 이거만 하다 실패하는 시스템이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일정 수준의 소양을 갖춰서 나가야 한단 거다. 고교선수쯤 되면 뛰는 거만 봐도 얘는 프로 못 가겠구나 하고 안다. 근데 학부모들이랑 얘기해보면 다 류현진 추신수 꿈꾸고 있다.
-야구 인기가 워낙 좋다 보니 자질 미달인 지도자들도 있다. 미국에서 리틀야구 하다 온 초3한테 슬라이딩 연습을 백번 시켜서 발목이 나가게 한 지도자가 있단 얘기를 들었다. (쫓아갈 뻔 했단 발언)
-우리나라 학생야구는 학생야구가 아니다. 고등학교는 메이저리그 AAA고, 중학교는 AA, 초등학교는 A 이런 느낌이다. 다들 야구만 하고 있지 않나. 게다가 한달에 50-80만원씩 내는 온실야구를 한다. 학부모들 입김을 피하기가 힘들다. 예전 최희섭, 이대호처럼 헝그리정신으로 내가 성공해서 우리 가족을... 이런 선수가 더 이상 나올 수가 없다. 돈이 없으면 애초에 야구를 안 시킨다. 재능있지만 돈 없는 친구들은 거기서 가로막히는 거다.
Q2: 궁극적으로 프로구단이 구장을 소유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하지 않나?
A: 우리나라 환경에서 그렇게 하기가 아주 힘들다. 예전에 롯데 코치 할 때 야구장에 칠을 하자고 했더니 그러려면 시에 승인을 받아야 한단다. 정삼흠 선수 LG 있을 때 얘긴데 잔디에서 (제자리) 뛰고 있으니까 관리인이 와서 "정 선수 뛰지 마세요! 잔디 망가져요" 했다고 한다. 요새 청와대에 청원 넣고 하지 않나. 외부에서만 얘기할 게 아니라 중앙이나 지자체에 적극적으로 청원, 민원을 넣어서 (이런 환경이 바뀔 수 있도록) 직접적인 의사 표현을 하셔야 한다.
-다음 편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