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스럽게도 올해도 또 프로야구가 시작됐다.
이전에도 감히 썩 글을 잘 쓰는 편이라고 말할 수준은 아니다만, 밥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매일매일 야구 경기 보기도 힘들었고(그리고 그럴 만한 가치도 없었고), 글 쓸 시간은 더더욱 없었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니... 그래도 갖고 있는 재주 중에 그나마 쓸 만한 것이 끄적끄적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쓰는 것이었는데 다 까먹을까봐 무서워서 억지로라도 좀 써야겠다는 맘이 들었다.
물론 야구 관련 글을 계속 연재할 정도의 훌륭한 직관을 갖고 있지는 않고, 그나마 조금 있던 것은 야구를 뜸하게 보면서 다 팔아먹었고, 내가 멈춰 있던 동안 야구는 너무 빠르게 발전해서 이제는 따라가기도 벅찰 지경이며, 한때는 이름만 들으면 어느 팀 무슨 포지션 몇 번 지명까지 줄줄이 나오던 머릿속의 빅데이터는 우리 팀 선수 이름 외우기에도 급급한 수준으로 전락했다. 한때는 야구 스탯 보는 게 그렇게 재미있었는데, 스탯티즈 개편 이후로 한참 불편해진 UI와 대격변한 숫자들을 보니 의욕이 절로 사라지더라.
하지만 내가 몇 년 아니면 십수 년 뒤에 '그때 야구는 어떻더라~' 하고 추억팔이할 만한 재료는 결국 직접 정리한 자료가 최우선일 것이 경험상 확실하기에, 일단은 어설프게라도 조금씩 기록을 남겨두는 게 좋겠더라. 넋두리는 이제 그만 하고, 시작해보자.
1. 그 동안 있었던 무브들에 대한 짤막한 감상
-최주환 다년계약: 2년 동안 sWAR 0.53을 기록한 1루수를 다년계약한 것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차피 올해까지가 보장이고(옵션으로 붙은 +1년 두 개는 매우 쉬운 조건이겠지만) 이적 당시보다는 그래도 계약해야 할 이유가 더 늘었다고 느낀다. 물론 이 팀은 무슨 무브를 해도 '그럴 거면 박병호 서건창한테나 해주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겠다만...
-김재현 다년계약: 글쎄... 왜 했을까? 어떻게 합리화해보려 해도 백업 포수에게 6년 10억이라는 계약을 줘야 할 이유는 모르겠다.
-김휘집 트레이드: 김서준, 여동욱을 남긴 트레이드. 이 두 선수에게 큰 기대가 있지는 않지만... 유격수는 당연히 불가능하고, 장기적으로 결국 1루수로 가게 될 김휘집을 1,3라운드 지명권을 받고 넘겼다는 점에서 괜찮은 트레이드였다고 생각했는데, 요새 팀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면 그냥 김휘집을 남기고 1루수로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다.
-조상우 트레이드: 박한결, 최재영을 남긴 트레이드. 조상우가 여기 남았다고 해서 잘했으리란 보장도 없고, 어차피 내부FA로 잡았을 수도 없었을 테니 두 선수가 잘하든 못하든 개인적으로는 재평가할 여지가 없는(적정한 시점에 잘 넘긴) 트레이드라고 본다. 당연히 조상우와 함께 했던 영광의 순간들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사람새끼도 아니겠지만...
-푸이그-카디네스-로젠버그 계약: 1투수 2타자 시도는 괜찮았지만, 그게 푸이그일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카디네스는 삼성에 영입될 당시부터 마이너 프로필 보고 기대치가 있었던 터라 이렇게 망할 줄 몰랐다만, 후라도와 헤이수스를 버리고(헤이수스까지는 이해한다 쳐도 후라도까지 공짜로 넘긴 건 정말...) 선택한 선수가 푸이그라면... 으휴.
-송성문 다년계약 후 포스팅: 메이저리그를 안 갔더라면 만족했을 텐데, 걍 메이저리그 포스팅으로 어차피 파기될 계약 인심 썼다 느낌이라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특히 전력 공백+포스팅 수입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박찬호나 강백호를 찔러보지도 않고 그대로 스토브리그를 넘겼다는 점이 무척 한심했다.
-2차 드래프트로 안치홍-추재현-박진형-배동현 영입: 이형종이나 최주환이 없었다면 좀더 기뻤을 테지만, 다른 팀 실패한 다년계약 선수를 치워주면서 4억을 주고 받아온다는 발상부터가... 잔여계약이 2년 11억 수준이라니 실질적으로 안치홍에 투자하는 돈은 최대가 2년 15억이지만, 20대 후반부터 이미 내리막이었던 수비력을 감안하면 사실상 풀타임 지명타자가 그의 역할인데 과연 본전을 뽑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무조건 부정적인 것도 안 좋으니 일단 한 시즌 완주하고 나서 평가를 다시 내려야겠지만. 배동현이나 박진형은 그냥 40인 외의 선수로 긁어보기엔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추재현은 굳이 다시 데려왔어야 하나.
-서건창 재영입: 그래 추억여행으로는 좋은데, 다 망해놓고 박병호 육성군 코치로 영입한 거랑 더해서 어떻게든 추억팔이로 쓰레기 같은 그간의 행적 덮어보려는 티가 나서 괘씸할 뿐이다...
2. 개막 시리즈 감상
0328~0329
vs 한화(대전)
9:10 패 / 4:10 패
1차전 알칸타라 / 에르난데스
2차전 하영민 / 왕옌청
타선은 그럭저럭 잘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안치홍의 첫날 2루타 2개+3볼넷(=5출루)이 인상적이었고, 바빕신의 가호가 다소 있었다만 첫날 3안타를 친 브룩스나 짧게짧게 밀어치며 정교한 컨택을 보여준 김건희, 연장 11회 경기를 이 쪽으로 가져올 수도 있었던 박찬혁의(+그리고 멋진 11회말 페라자 타석에서의 다이빙 캐치까지) 2루타, 일요일 데뷔 첫 타석에서 좌중간 2타점 2루타를 친 최재영, 첫 날에 한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1안타 1볼넷+3볼넷을 합작한 임지열과 이형종까지 크게 나쁜 선수는 없었다. 굳이 흠을 잡자면 토요일은 1안타 1볼넷으로 1번 타자 역할을 그나마 수행했다만 이튿날엔 완전히 침묵한 이주형과... 첫 날 병살타 두 개를 친 최주환, 이틀 내내 9타수 1안타로 혈막을 한 어준서?
반면 투수운용이 많이 아쉬웠다. 투수교체는 정말 어려운 영역이고 외부에서 알 수 없는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만, 이해할 수 있는 범주에 들어가는 교체가 있고 아닌 교체가 있다. 알칸타라나 하영민을 빨리 내린 건 전자였고, 배동현 8회 등판이나 오석주의 세 번째 이닝 기용은 후자였다. 알칸타라를 6회 1사 87구 만에 강판한 결정은 김성진이 병살타를 잡으면서 무작정 비판할 수 없는 (혹은 보기에 따라 아주 좋은) 판단이 되었지만, 김재웅이 8회말 2사에 주자를 두 명 깔자 배동현으로 교체한 결정은 결과적으로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물론 개막 시리즈에 4-5선발 후보가 불펜으로 등판하는 전례가 없지는 않다만, 접전 상황에서의 등판은 무척 보기 드물다. 차라리 마무리로 쓰겠다고 공언한 박정훈이나, 불펜 보직이 확실시되는 유토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둘 중에 하나였다면 감독의 기용 실패보다는 투수의 함량 미달을 지적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여담이지만, 유토는 작대기 직구에 변화구도 보잘것없던데 저런 선수가 어떻게 시범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냈는지 이해가 안된다. 역시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일 뿐인가... 아니면 내가 한 경기로 너무 실망해서 과하게 깎아내리는 걸까)
하영민은 던지는 내내 공을 난사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제구가 안됐기 때문에, 하영민을 강판시킨 결정 자체는 십분 이해가 간다. 더 놔뒀다면 틀림없이 다음 이닝까지 가기도 전에 추가 실점을 하면서 경기를 터뜨렸을 게 뻔하니. 하지만 이왕 선발을 빠르게 내렸다면, 개막 시리즈 일요일에 굳이 불펜을 길게 끌고 갈 이유도 없지 않았나. 구위로 상대를 압도하는 유형의 투수가 아닌 오석주에게 주말 동안 최고의 컨디션을 보인 문현빈이 나오는 6회를 세 번째 이닝으로 맡긴 건 어떻게 봐도 나쁜 판단이었다. 선택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키움의 불펜진이 함량 미달이라 누가 나와도 믿음이 안 가긴 한다만, 불펜에게 제 역량 이상의 긴 이닝을 요구한다면 오히려 불펜을 더 많이 투입해야 하는 고초를 겪어야 할 수도 있다.
대주자 투입에서도 게시판이나 SNS에서 왈가왈부가 많던데, 임지열이나 이형종이 타석에서의 기여도가 그리 높지 않고 주루나 수비는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 어려운 선수라는 점을 생각하면 완전 이해 못할 교체는 아니지 않나 싶다. 첫 날 김건희 대주자 교체(8회 최재영)나 다음 날 최주환 대주자 교체(김태진) 정도가 '아니, 잘 치고 있는 주전 포수를 뭐하러 빼?' '아니, 저 점수차에 왜 대주자를?' 싶은 교체였는데, 근육 경련이나 경직이 있었다고 하니 할 말은 없고.(욕먹기 싫어서 변명하는 거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의심하게 되지만)
한화 타자들의 방망이가 매서웠으나(특히 페라자와 문현빈) 한 경기쯤은 가져올 수도 있었는데, 그걸 잡고 못 잡고가 강팀과 약팀의 차이겠다. 노시환과 강백호가 한참 헤맸던 점을 고려하면 개막전은 못 이길 경기까진 아니었는데.(직구 타이밍 안 맞는 노시환을 응급처치로 돌려놨으니 이제 화요일 KT전에서는 어떻게 타격하는지 보는 것도 나름 재미겠다) 심우준에게 토요일 동점 쓰리런과 일요일 점수의 시작이 되는 2루타(도 하영민의 높게 들어간 슬라이더의 덕을 제대로 보았다)를 맞은 건 아무래도 예상할 수 없었던 재해에 가까웠으니 넘어가더라도.
아직 확신을 줄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박한결이나 최재영의 1군 첫 2루 수비는 괜찮아서 조만간 유격수로도 보고 싶다. 나는 어준서를 둘러싼 SNS 논란이나 온갖 썰들을 다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늘 2회에 삼자범퇴로 넘어갈 수 있었던 이닝을 평범한 땅볼로 놓쳐서 터뜨리고 그것도 모자라 6회에 또 평범한 땅볼을 뒤로 빠뜨려서 관짝에 못을 박았던 그의 플레이를 떠올리면, 1군 말소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저히 화요일 선발 유격수로는 보고 싶지 않다.(그 난리를 치는 걸 보고도 문책성 교체 한번 안한 것도 참 징하다...) 사실 근본적으로 이 팀의 문제는 특출난 재능이 있지도 않은 선수들이 얇은 선수단 뎁스 때문에 자꾸 무리하게 1군에 올라와서 경기도 박살내고 멘탈도 박살나서 못 크고 있다는 점인데(박준현을 불펜으로 쓰네 마네 하는 소리도 그렇고) 그렇게 따지면 어준서도 이재상이나 이승원을 잇는 피해자일 수 있고, 그 다음이 박한결이나 최재영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만... 갑자기 한화 불펜으로 올라왔던 정우주의 강속구나, 김도빈의 휙휙 움직이는 체인지업, 원종혁의 구속 156km/h(9라운더라매...) 이런 걸 떠올리니 깝깝해서 글은 이만 마무리하고 맥주나 한 캔 까러 가야겠다.
아무튼, 모두에게 시간이 필요하다. 재활하고 있는 안우진이나, 이제 막 뽑아놓은 박준현이나, 심지어 초보 감독인 설종진마저도... 굳이 기다리지 않아도 될 시간을 만든 프런트가 한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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