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이후 팀별 드래프트의 수확을 알아보고자 쓰는 글. 여러 카테고리로 나눠보고 싶었는데, 너무 많아지는 느낌이 들어서 드래프트 순위를 제외하면 고졸/대졸, 포지션 정도로만 분류했다. 굳이 시작을 2009년으로 잡은 이유는 히어로즈 창단 및 가입으로 마지막 8구단 체제가 정립된 이후 최초로 실시된 드래프트이기 때문이다. 히어로즈는 현대의 선수단과 프런트를 승계했으니, 나중에 1차 지명 1명/2차 지명 9명이라는 2009년의 틀이 최초로 정립된 2003년 드래프트까지 더 조사해볼 생각도 있다.
모든 WAR은 2009년부터 2019년 전반기까지의 기록이다.
우선 팀별, 라운드별로 알아보자. NC는 2012, KT는 2014년부터의 누적이다. '우선'은 신생팀 우선지명으로 뽑힌 선수들, '특별'은 신생팀 특별지명으로 2-3라운드 사이에 뽑힌 선수들이다.
신생팀 2팀을 제외한다면 지명된 선수들이 가장 많은 WAR을 생산해낸 팀은 두산이고, 그 다음이 키움과 삼성이다. KIA-LG-SK는 50승대로 비슷한 편이다. 반면 한화 출신 선수들은 21.1승, 롯데 출신 선수들은 12.5승만을 팀에 기여하는 데 그쳤다. 한화가 지난 해를 빼고는 줄곧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롯데가 지난 10시즌 동안 5번이나 ('09-'12, '17) 가을야구를 하긴 했지만 작년부터 (혹은 가을야구를 했던 '17년부터)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팜이 튼튼하지 않은 팀이 계속 전력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KBO리그의 특성을 얘기할 때 흔히들 '리빌딩이 필요없는 리그' '외국인 잘 뽑고 FA 한둘 사고 한두 명 적당히 터져줘서 운빨만 맞으면~' 같은 말을 한다. 장거리 달리기인 프로야구 정규시즌의 특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소리다. 트레이드로 선수 수급이 어려운 KBO리그의 특성상 가장 중요한 건 신인을 잘 뽑아 육성하는 것이다. 항상 어느 정도의 전력을 유지하고 있지 않으면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
지명 라운드별로 선수들의 WAR을 나눠보았다. 1군에 그냥 올라오기만 하면 의미가 없기 때문에, 1군에서 적어도 통산 WAR 1 이상을 기록한 선수들을 '1승 이상'으로 따로 분류하였다. 앞으로 글에서 '1승 이상'이란 단어가 사용된다면 계속 이 뜻이다.
당연하겠지만, 높은 라운드에서 뽑힌 선수일수록 대체로 리그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 와중에 9라운더들의 분전이 눈에 띈다. (한동민, 권희동, 김지용 등) 스카우터들의 눈은 꽤 정확하다. 하위 라운드에서 뽑힌 선수들이 반전을 보여주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다.
다음은 학교, 포지션별로 분류해보았다. 해외리그에서 뛰었다가 돌아온 선수들은 '해외' 한선태처럼 독립리그에서 뛰다 드래프트된 선수들은 '독립'으로 분류했는데, 합해봐야 20명밖에 안 되어서 따로 쓰진 않는다. 드래프트 당시의 포지션과 현재 포지션이 다른 선수도 있는데, 투->타 혹은 타->투 전환을 한 경우에만 포지션을 바꿔주었다.
1명당 WAR 순서를 따지면 고졸 내야수 > 대졸 외야수 > 대졸 투수 > 고졸 투수 > 고졸 외야수 > 고졸 포수 > 대졸 포수 > 대졸 내야수 순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뽑으면 되는 것일까...?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알아보았다. 학교, 포지션별로 선수들을 분류하고 그 중에 '망픽'을 골랐다.
'망픽'의 기준은 뭘까? WAR이 0보다 낮은 선수? 오랜 연차인 선수들이야 그렇겠지만 신인이 나타나서 한 자리를 계산이 서줄 정도로만 뛰어도 WAR이 -가 나오는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그러므로 마이너스를 '망픽'으로 분류하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아예 통크게 '1군에 올라온 적 없음'으로 가자.
여기에 조건 둘을 더 달기로 하였다. 하나는 올 시즌을 기준으로 6년차 이상(2014년 혹은 그 이전 지명)만 '망픽'으로 분류하기로 하는 것이다. 가령 작년에 지명된 선수가 올해 1군에 안 올라왔다고 '망픽'으로 치는 행위는 말이 안된다. 어느 정도 싹수가 보이는 신인은 콜업 없이 바로 군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므로, 여유 기간을 적당히 두어야 맞다. 그리고 실제로 지명 후 5년이 넘었는데 1군 등록 없이 구단에 붙어있는 선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SK 최진호가 9년차, 한화 윤승열이 8년차로 이 분야의 원투펀치를 달리고 있다.)
다른 조건 하나는 유형별 상위 5인의 WAR을 빼서 나머지 선수들의 평균을 내,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라도 안 찰 정도의 조건을 구해보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표본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드래프트된 선수들이 대상이고, 결과는 다음과 같다. 전자는 '망픽' 확률이고, 후자는 상위 5명의 WAR을 빼고 새로 계산한 1인당 WAR이다.
고졸 투수 - 151명 중 46명 (30.5%) / 1인당 0.82
고졸 포수 - 21명 중 9명 (42.9%) / 1인당 -0.13
고졸 내야수 - 73명 중 27명 (37.0%) / 1인당 0.63
고졸 외야수 - 39명 중 18명 (46.2%) / 1인당 -0.13
대졸 투수 - 92명 중 31명 (33.7%) / 1인당 0.39
대졸 포수 - 26명 중 6명 (23.1%) / 1인당 -0.21
대졸 내야수 - 56명 중 18명 (32.1%) / 1인당 -0.12
대졸 외야수 - 39명 중 17명 (43.6%) / 1인당 0.18
포수는 아주 길러내기 어려운 포지션이었다. 표본이 적어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상위 5인을 빼자 WAR이 훅훅 낮아진다. (가령 '09-'14 고졸 포수 드래프티들의 합산 WAR 14.72는 유강남-박동원 둘을 빼면 오히려 마이너스로 떨어지며, 대졸 포수의 합산 WAR 4.02도 박세혁 한 명을 빼면 마이너스로 떨어진다.) 그리고 외야수를 뽑는 건 대체로 바보짓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외야수는 투수, 내야수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 선수들이 가기 마련이므로, 아주 확실한 장점이 있지 않다면 드래프트할 이유가 없다.
정리해보자면, '망픽' 비율과 WAR을 고려해봤을 때 오래 살아남아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유리한 순서는 고졸 내야수-고졸 투수-대졸 외야수-대졸 투수 등의 순이다. 물론 이 '09-'14 표본에는 '90년생 4대 유격수'라 불리던 선수들이 대거 포함되어있고 이들이 모두 프로에서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약간의 왜곡이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보아야겠다.
다음은 팀별로 정리해보았다.
KIA는 조사 기간인 11시즌의 드래프트에서 대졸 선수를 49명 지명했다. 2위인 삼성, 롯데(41명)에 비해서도 거의 연평균 1명씩을 더 뽑았고, 30명도 지명하지 않은 LG-두산에 비하면 두 배에 가깝다. 특히 2013년에는 9명, 2014-2015년에는 각각 7-8명을 대졸 선수로 뽑았다. 이 기간 뽑힌 선수들이 손동욱, 고장혁, 고영창, 박준표, 강한울, 박준태, 이민우, 문경찬, 이종석, 이준영, 황인준, 김명찬, 김호령 등이다. KIA의 대졸 픽에 의문을 가졌던 사람도 많지만, 이들이 대부분 팀의 미래로 떠오르고 있으니 꼭 나쁘게 볼 필요만은 없겠다. 2012년에도 박지훈-임준섭-홍성민을 드래프트하기도 했고.
보다시피 지난 11년간 최고의 드래프트 성과는 안치홍이다. 팀에 28.67승을 안겨주었다. 이 뒤로 고졸 내야수 픽인 박찬호가 뒤를 이을 것으로 보이며, 황대인-최원준-류승현 등도 기대되는 선수들이다. 반면 고졸 외야와 대졸 야수 픽은 대체로 전멸이다. KIA의 대졸 내야수 픽 중 WAR이 가장 높은 건 황정립이지만, 당연히 KIA 팬이라면 홍재호(-0.75) 윤해진(-0.07) 고장혁(-1.28) 강한울(-0.86) 등의 이름이 더 익숙하리라.
(한선태는 '독립 투수' 로 분류했으나, 1명이라서 좌상단에 따로 기재하지 않음)
LG 최고의 드래프트 상품은 2009년 1차 지명이었던 오지환이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같은 기간 내에 키움에 이어 두 번째로 고졸 투수를 많이 지명했다. 2009년 한희-최동환-강지광-최성민, 2010년 이승현-유경국-이성진-배민관, 2011년 임찬규-이우찬-정다흰-송윤준, 2012년 김웅-신동훈, 2013년 배재준-이윤학-백남원 등이다. 이들이 대부분 데뷔에 성공했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크게 성장한 투수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
2010년 김창혁, 2011년 유강남 이후 매년 꾸준히 고졸 포수를 지명해 팜에 쌓아두고 있다는 것도 LG의 특징이다. 비록 제대로 된 1군 경험을 갖춘 선수는 없지만, 이들이 그 동안 들인 시간에 부응하는 능력을 보여준다면 새로운 포수왕국으로 거듭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기간의 외야수 드래프트는 별 재미를 못 봤는데, (이천웅과 채은성은 모두 신고선수 출신이다) 그나마 2016년 3라운더인 대졸 외야수 홍창기 정도가 향후 기대해볼 만한 선수다.
최대 흉작은 2013년 드래프트. 뽑은 선수 중 6명이 1군에 올라오지 못했으며, 팀에 유일하게 남은 선수는 배재준뿐이다.
LG와 마찬가지로 SK도 2013년 드래프트가 최악의 농사였다. 아무리 하드한 야구팬이라도 이 해 1라운더였던 이경재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데뷔에 성공한 김정빈과 최민재는 입지가 탄탄하지 못하며, 김정후는 방출로 이제 아무리 잘해도 SK와는 상관없는 인연이 되었다.
SK 역시 고졸 투수를 쏠쏠하게 잘 뽑았는데, 2009년 김태훈, 2010년 박종훈, 2011년 서진용-임정우 등이 그 대상이다. 이후로는 2014년 1차인 이건욱과 7라운더인 이승진 정도가 중간에서 주목할 만한 세대. 최근에도 정동윤-이원준-김정우-조성훈-백승건 등 고졸 투수에 대거 상위픽을 사용했으나,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고졸 내야수도 최근 5년간 10명을 드래프트했으나, 무한경쟁체제에 더 가깝다. 시즌 후의 40인 로스터 정리가 꽤나 어려운 숙제로 다가올 것이다.
대졸로는 최고의 9라운더 외야수 한동민이 있고, 투수에서는 박현준, 여건욱, 문광은, 문승원, 박민호, 김주한, 김성민 등이 뽑혔다. 팀에 남아있는 3명은 물론이요, 나머지 4명도 트레이드로 선순환에 기여했으니 잘 드래프트했다고 평해도 될 듯.
신생팀을 제외한다면 조사기간 11년간의 드래프트에서 최고의 수확을 거둔 팀은 2009년 두산 베어스였다. 허경민-박건우-정수빈-유희관은 모두 팀의 핵심으로 성장했다. 기대받았던 1차 지명 성영훈이 프로에 별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게 아쉽지만, '09년 드래프티들이 남긴 66승의 누적 WAR은 최고 수준이다.
고졸 투수 중 최고의 아웃풋인 이재학이 이적하긴 했지만 두산은 전 포지션에서 수확이 괜찮은 편이다. 특히 이영하, 최원준, 박치국, 김명신, 곽빈 등 꾸준히 두각을 드러내는 영건들이 많아 앞으로가 기대되는 팀이다.
조사기간 삼성과 KIA 다음으로 망픽이 많이 나온 팀은 롯데였다. 특히 2011년이 절정이었는데, 이 드랲에서 뽑힌 선수 중에 1군에 제일 많이 얼굴을 비친 게 올 시즌 외야수로 간간히 나오는 허일이니 실로 절망적이다.
2010년부터 포수를 9명 드래프트했으나 1군에 누구도 정착할 기미가 없다. 2012년 6라운더인 김준태는 군필임에도 불구하고 2017년 드래프티인 나종덕보다도 더 심각한 수비를 보여주고 있다. 외부수혈은 선택이 아닌 필수일 수밖에 없다. 내야수에서는 오태곤, 신본기, 이창진, 전병우, 강로한, 한동희, 고승민 등이 눈길을 끈다.
조사 기간 중에서도 최근 5년간 가장 쏠쏠한 픽을 자랑하는 팀은 삼성이다. 왕조 시대의 영향으로 매년 하위픽을 집은 탓인지 망픽이 제일 많지만, 그 이후에는 '15년부터 '19년까지 벌써 각 해마다 1명 이상이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나마 재미를 못 보던 분야는 대졸 투수였으나, 임현준이 1군 불펜으로 꾸준히 나오고 최채흥이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재목으로 크고 있다.
반면 그 동안의 야수 픽은 아쉽다. 대졸 외야에서 배영섭, 오정복, 김헌곤이 나왔으나 2012년 구자욱 이후 고졸 내야수는 사실상 전멸이다. 박계범과 공민규가 1군을 들락날락하지만 부족하다. 대졸 내야수의 경우 경찰청에서 화력을 과시한 이성규가 기대를 걸어볼 만 하다.
매년 꾸준히 드래프트에서 좋은 자원을 건지고 있는 팀으로 키움이 있다. 특히 2009년 드래프트는 현대의 2006년 신인지명과 함께 한 동안 팀을 꾸려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신인지명이다. 이후에도 1라운드에서 계속 좋은 자원을 건지고 있으며, 2014년 3라운드에서 뽑은 김하성은 어느새 팀의 대들보가 되었다.
수확이 괜찮았던 고졸 픽과 달리 대졸 픽은 대체로 결과가 좋지 못했다. 고종욱과 김대우 정도가 팀의 주요 전력으로 몇 년간 활약했을 뿐이다.
11년간 롯데 다음으로 드래프트를 못한 구단은 한화. 충청팜의 빈약함을 변명거리로 삼더라도 전면드래프트 기간에도 수확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09~'14년 드래프트된 선수들이 다른 팀에서는 거의 주축으로 자리잡은 반면, 한화에서는 장민재와 하주석만 확고한 주전이라는 것도 아쉽다.
NC의 창단 드래프트였던 2012년 신인지명은 NC가 강팀으로 거듭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주전 외야수 2명과 내야수 2명이 이 트레이드에서 나왔으며, 백업 내야수로 바꿔온 트레이드카드(신재영)와 전천후 투수(이민호)까지 건졌다. 전체 신인지명의 45%가 전멸한 2013년에도 장현식, 손정욱, 임정호, 권희동 등 팀에 보탬이 된 자원을 많이 데려왔다. 이후의 드래프트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성공적인 첫 걸음을 뗀 셈이다.
그에 비하면 KT의 첫 드래프트인 2014년은 아쉬움이 있다. 심재민과 고영표는 괜찮은 성적을 보였으나 국가대표에 차출되어 군 면제를 받을 운명은 아니었는지 아쉽게 국방의 의무를 향하러 가야 했으며, 류희운-문상철-조현우-안상빈 등도 아직 선택을 받은 이유를 증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나마 김민혁이 요새 1번 타자로 자리잡은 게 이 해 드래프트의 운명을 바꿀 키가 될지도.
역시 이후의 드래프트를 평가하기엔 아직 이른 팀이다. 경찰청을 제대하는 조병욱-한승지 그리고 2017년 지명되어 빠르게 기량을 끌어올리고 있는 이정현과 이종혁, 첫 해부터 KBO를 평정한 강백호와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이 된 김민 등이 눈여겨볼 인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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