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 3대장' 을 기억하시는가. 2014년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켈빈 에레라 - 웨이드 데이비스 - 그렉 홀랜드 라인업을 지칭할 때 흔히 쓰던 말이다. 비록 이들은 우승을 이뤄낸 후 뿔뿔이 흩어졌지만 이들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불펜 승리조를 다시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2016년 뉴욕 양키스가 앤드류 밀러와 4년 계약을 맺고 아롤디스 채프먼을 트레이드로 데려오면서 베탄시스-밀러-채프먼으로 이어지는 '불펜 3대장' 이 새롭게 탄생하나 싶었지만, 이 조합은 겨우 반 년만에 밀러와 채프먼의 트레이드로 해체되었다. 1
그런데 로열스와 양키스보다도 몇 년 전 이미 이 꿈의 '3대장' 을 가진 팀이 있었다. 바로 2011년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다. 에릭 오플래허티 - 자니 벤터스 - 크레이그 킴브럴의 '오벤트럴Oventrel' 조합은 그 해 MLB 최강의 소방수들이었다.
벤터스는 2003년 드래프트 30라운드에서 애틀랜타의 부름을 받았다. 2005년 싱글A에서 토미존 수술을 받을 때만 해도, 그는 앞으로 자신이 두 번의 수술을 더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했으리라. 아마도 평범한 고졸 투수가 으레 겪을 수 있는 통과의례로 여기지 않았을까. 2006시즌을 통째로 쉰 벤터스는 2007년 상위싱글A, 2008년 더블A, 2009년 트리플A를 거치며 차례차례 단계를 밟아 올라가다 마침내 2010년 4월 17일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6회, 4점을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한 그의 첫 경기 성적은 3이닝 1피안타 1볼넷 2탈삼진. 콜로라도의 레전드 토드 헬튼에게 안타를 하나 맞긴 했지만, 간판 타자 카를로스 곤살레스와 트로이 툴로위츠키를 삼진과 땅볼로 처리한 좋은 데뷔전이었다.
2010년이 끝나자 받아든 그의 성적표는 79경기 출전, 24홀드, 평균자책점 1.95. 신인왕 8위는 훌륭한 보너스였다. 그리고 대망의 2011년- 이미 지난 2년간 134경기에 등판하며 자신의 기량을 증명했던 오플래허티와, 차기 마무리로 각광받던 킴브럴과 함께 오벤트럴의 전설은 시작된다.
오플래허티 78경기 2승 4패 32홀드 0.98 / 73.2이닝 59H 2HR 21BB 67K
벤터스 85경기 6승 2패 35홀드 5세이브 1.84 / 88이닝 53H 2HR 43BB 96K
킴브럴 79경기 4승 3패 46세이브 2.10 / 77이닝 48H 3HR 32BB 127K
단일 시즌 70경기 이상 던진 불펜투수 중 유일하게 0점대를 기록한 오플래허티와, 빌리 와그너 은퇴 이후 새롭게 마무리 자리를 이어받아 신인 최다세이브와 구원왕을 거머쥔 킴브럴의 사이를 잇는 든든한 셋업맨이 바로 자니 벤터스였다.
벤터스의 주무기는 95마일 이상의 하드 싱커였다. 그가 던지는 싱커는 72%라는 경이적인 땅볼 비율의 비결이었다. 너클커브 또한 압도적인 구질이었는데, 그의 너클커브는 헛스윙율 71.53%의 문자 그대로 '언터처블' 한 공이었다. 2좌타자 상대 슬래시라인은 .127 / .225 / .177로, 시즌 내내 그를 상대로 장타를 때려낸 좌타자는 더스틴 애클리(홈런)와 루카스 두다(2루타) 단 두 명에 불과했다. 벤터스는 생애 최초로 올스타에 올랐다. 그러나 팀은 '오벤트럴' 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지 못했다. 8월 24일 시점에서 카디널스에게 10.5경기차로 앞서고 있었으나, 한 달 동안 승률 4할도 찍지 못하는 부진으로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 패배와 함께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했다.
(출처 : Kevin C. Cox / Getty Images)
이 기간 벤터스의 인대는 끊임없이 소모되고 있었다. 2010-2011 두 시즌 동안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을 합해 벤터스의 투구 이닝은 176.1이닝에 달했는데, 그보다 많이 던진 투수는 내셔널스의 타일러 클리파드(179.1)밖에 없었다. 2012년에도 벤터스는 66경기에 출전해 58.2이닝을 투구하며 3.22의 준수한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나, 10월 6일 카디널스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그의 마지막 메이저리그 투구 무대였다.
그 해 7월 이미 벤터스는 팔꿈치 부상으로 DL에 오르며 피로누적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2013시즌 시범경기에 결국 걱정은 현실로 찾아오고 말았다. 수술을 피하고자 혈소판을 인대에 주사하는 자가혈 치료술(Platelet-rich plasma)을 시행했지만 이 방법은 실패였고, 그는 두 번째 토미존 수술을 해야만 했다.
벤터스는 2013시즌 전체를 날렸다. 2014시즌 8월, 라이브피칭 도중 그는 이전에 느꼈던 익숙한 느낌을 다시 받았다. 다시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벤터스가 두 번째 수술과 세 번째 수술 사이에 던질 수 있었던 공은 겨우 일곱 개였다. 시즌이 끝난 후 그는 브레이브스에서 방출당했고, 2015년 탬파베이 레이스와 2년짜리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2016시즌 후반기 복귀를 목표로 한 채로.
2016년 6월 4일, 비록 싱글A였지만 마침내 벤터스는 마운드에 섰다. 그리고 5번의 등판 이후 다시 통증을 느꼈다. 네 번째 토미존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나, 의사와 논의한 결과 다행히 다른 방식의 수술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것은 복귀도 훨씬 빨랐다. 2017년 벤터스는 루키부터 트리플A까지 네 개의 다른 마이너리그 팀에서 23.2이닝을 던졌다.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벤터스는 다시 레이스에 합류했다. 그리고 4월 25일 볼티모어와의 경기에서, 6회말 6-4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 5번 타자 크리스 데이비스를 상대로 등판해 그를 3루수 땅볼로 잡아냈다. 2028일 만의 메이저리그 복귀였다.
토미존 수술을 3번 받고 마운드에 돌아올 수 있었던 투수는 얼마나 될까? MLB에는 호세 리호와 제이슨 이슬링하우젠이 흔히 언급되지만, 이들의 수술 한 번은 팔꿈치 내측측부인대(UCL)가 아닌 굴곡건(flexor tendon)과 관련된 수술이었다고 한다. 결국, 토미존을 세 번 받고 마운드에 다시 선 투수는 현재로서는 벤터스가 유일한 셈이다. 3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장래가 촉망되던 올스타 투수는 이제 가난한 언더독 구단의 평범한 구원투수가 되었고, 그가 최고의 전성기를 보낼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둘째는 이제 다섯 번째 생일이 막 지났다.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있을 때 아이들을 다시 보고 싶다던 바람은 이루어졌다. 다음엔 무엇일까. 2월 초 태어난 그의 셋째가 야구란 스포츠를 이해할 때까지 공을 던지는 것? 어쩌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하지는 말자. 1이닝은 세 번의 아웃카운트로 끝나지만, 벤터스의 시간은 세 번의 수술로도 끝나지 않았으니까. 야구는, 끝날 때까진 결코 끝난 게 아니다.
참고 기사 / 칼럼 / 포스팅 및 링크
MLB닷컴 <Venters hoping to make historic comeback> (링크)
팬그래프 <Jonny Venters Is Pitching> (링크)
Bravesblog <벤터스를 돌아보며> 2011년 10월 19일 포스팅 (링크)
- 켈빈 에레라는 로열스에 잔류했다. 웨이드 데이비스는 시카고 컵스를 거쳐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뛰고 있다. 그렉 홀랜드는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뛴 다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마무리가 되었다. [본문으로]
- 200구 이상 기준. 2017시즌의 경우 '오벤트럴' 의 킴브렐이 커브 헛스윙률 54.92%로 1위였다. 50%를 넘은 투수는 아로디스 비즈카이노, 코디 앨런, 데이빗 로버트슨 등 총 4명. [본문으로]
- KBO의 경우 이동현, 권오준, 조정훈 등 세 명이 있다.이동현의 경우 두 번째 수술은 TJS가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나무위키에 있으나, 신문 기사를 뒤져봐도 확인할 수 없는 출처인 고로 그냥 명기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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