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야구학회 추계 학술대회에 다녀왔다. 발언 내용을 정리해서 글을 써본다. 연사의 발언 내용은 검은색, 개인적인 코멘트는 파란색으로 정리했다. 따라서 검은색의 내용은 강연한 사람 개인의 의견이나 잘못된 사실이 있을 수 있으니, 100% 신뢰하는 건 곤란하다. 파란색의 내용은 나 개인의 의견이나, 발췌한 부분에 잘 안 나와있어서 기억나는 뉘앙스를 덧붙였다. 한국야구학회의 요청이 있을 경우 본 게시물은 수정, 비공개, 삭제될 수 있다.


주제별로 정리해서 쓸까 하다가 강연의 흐름대로 그냥 의식의 흐름 기법을 따르기로 했다. 불편하셔도 다소 양해 부탁드린다. 그리고 쓰다 보니 너무 길어서 두 편으로 잘라 올린다.




<한국 야구의 과거, 현재, 미래> -허구연 (KBO 야구발전위원장)


-9년 전에 비해 야구장이 160개에서 500개로 늘었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하다. 전국에 야구팀만 1만 5천 개가 있는데...

-익산에서 사회인야구/티볼 대회 하나 하는 데 3년이 걸렸다. (지자체 협조받기가 어렵다는 뉘앙스였던 걸로 기억)


-군사정권에서 프로야구를 만들었다고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고 MBC 사장 이진희가 기획해서 MBC가 주도하고 결재받은 것. 전두환 대통령은 기획서 올라올 때까지만 해도 자기가 축구를 좋아하니 당연히 축구일 줄 알았는데 막상 받아보니 야구라서 "이게 축구 아니고 야구가?" 라는 말을 했다고. MBC가 야구를 만들자 열받은 라이벌 KBS 사장이 주도해서 만든 게 프로축구. (이 일화는 나무위키 'K리그' 문서에 나와있다. 그리고 어차피 이진희가 전두환 정권 시절의 대표적인 나팔수 언론인이었는데 군사정권이 만든 게 아니라고 굳이 부정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할 따름.)


-70년대에도 프로화 전환 시도가 있었지만 잘 되지 않았음.


-프로야구는 아직도 '산업' 이 아니다. 내가 보기엔 '산업이 되려고 막 넘어가는 단계' 다. 자생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한다. 프로구단 사장, 단장들이 자기 팀 우승에만 신경쓰지 리그 전체가 어떻게 발전할 건지, 길게 갈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밑줄친 부분이 강연 핵심내용이었다)


-KBO 총재도 전형적인 포상자리였다. 정치인들 최측근이 자리잡고 연봉, 판공비 따내고 매스컴 주목받으면서 책임은 거의 안 지는 자리이니 오죽했겠는가.


-그 전까지는 한일전에 나가면 맨날 5할 아래로 했다. 지금 우리가 일본, 대만 외의 다른 팀 상대하듯 일본이 우리를 상대했는데, 대학 4학년 때 처음으로 한일전에서 4승 1무를 했다.


-잠실야구장 건립 과정에서 서울시는 돈 하나도 안 냈다. 김종필씨 형인 김종락씨가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유치해서 건립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매년 (LG와 두산에게 많은 돈 받아먹고) '얌체짓' 한다. 서울이 하니까 다른 지자체들도 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 정말 문제다. 야구계가 이걸 받아주면 안된다.


-이번 APBC 전에 일본야구관계자들이랑 만났다. 많이 엄살을 부리더라. '내가 보기엔 이번이 제일 약한데' 했는데 잘할 거라고 자꾸 그러더라. 잘하긴 뭘 잘해 7점 줬는데.


-한국 야구 역사가 바뀐 건 1985년 삼성 라이온즈의 베로비치 전지훈련이다. 


내가 2년 전에 피터 오말리 초청으로 베로비치를 다녀왔는데, 너무 충격이더라. 토미 라소다한테 뭐라뭐라 하면 "어이 미스터 허, 그 이론은 XX년 전에 바뀌었어!" 했다. 페르난도 발렌수엘라가 피칭 후 아이싱을 하는 것도 놀라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투수들은 공 던지고 나면 감독이 뜨뜻한 물에 들어가서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해서 그대로 그러고 있었다. 귀국해서 '아이싱을 해야 한다' 는 얘길 하니 다들 나를 또라이 취급하더라.


또 내가 내야수 출신이다. 2루수 수비를 할 때 예전엔 백핸드 캐치를 안하고 무조건 몸 가운데로 공이 오게 해서 잡았다. 백핸드 캐치를 하면 혼났다. 그리고 공을 잡으면 무조건 가운데에서 포구해서 (멈추고 디딤발 딛고) 던졌다. 그런데 캠프를 가서 스티브 색스가 수비하는 걸 보니까 백핸드 캐치를 한 다음 그 상태에서 몸을 그대로 (왼쪽으로) 돌려서 던지더라. 


지도자들이 그냥 "역기 들지마." "수영하지마." 이런 식으로 피칭 후에 아무 것도 못하게 하는 게 대세였다. 미국에 가서 웨이트를 알게 되었다.


삼성 라이온즈가 1984년 유두열에게 쓰리런 맞고 진 다음에 사장단 회의에서 이병철 회장이 "우승을 와이리 못하노" 해서 아주 난리가 났다고 한다. 그래서 비선팀에서 야구감사도 오고 그랬는데 나에게도 찾아오길래 "삼성은 절대 우승 못한다" 고 했다. 그러니까 삼성 이종기 사장이 나를 불러서 "아니 대체 왜 못한다는 거냐" 고 해서 "팀플레이도 안하고, 국대 출신이 많아서 자부심은 넘친다. 야구 못하는데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이런 얘기를 했다. 그러니까 원래 OB가 가기로 했던 베로비치를 삼성이 웃돈 주고 가게 되었다.


-80년대에 매년 미국을 갔는데 기자들 반응이 "너네도 프로야구를 한다고?" 했다. 외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게 한국전쟁 이런 거밖에 없는데 (국민소득 2만 불이나 되어야 한다는- 이 부분 뉘앙스 확실치 않다) 프로야구를 한국이 한다니까 놀란 거다. 88올림픽 이후에나 그나마 좀 대접이 달라졌다.


-야구장 시설을 보고 미국 가서 또 놀랐다. 베로비치에 7면으로 야구장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 있던 도원, 구덕, 대전, 대구구장은 솔직히 MLB캠프장 화장실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야구는 마스터플랜이 없다. MLB 사장, 단장들을 봐라. 다 젊고 쟁쟁한 (경영인이나 경제 등 말했던 듯) 출신이다. 커미셔너의 역할도 중요하다. MLB에서 고의4구 룰 개정하겠다는 이야기 한 것을 보라. 솔직히 고의4구 (4개 던질 거 하나 던져서 내보낸다고) 그거 바꾼다고 시간이 얼마나 줄겠나? 그런데 '시간을 줄여야 한다' 는 명제 자체는 다들 공감하고 있는 거다. KBO는 시즌 초만 되면 스피드 외치면서 경기 시간 줄여야 한다고 하지만 9월쯤 되면 선수들부터 어슬렁어슬렁 그라운드에 나가고 질질 늘어진다.


-한국 리그는 구단이 힘이 세고 KBO가 힘이 없는 게 문제다. 롯데, LG, 두산 이런 구단들 야구장 지을 때 돈도 안 내고 쓰고 있다. (그러면서 빅마켓이라고 이것저것 다 반대하고 혼자 먹으려 든다는 뉘앙스) 예전에 광주나 대전처럼 만 몇 천 명 들어가는 구장 쓰는 구단은 어떡하냐. MLB 탬파베이는 관중수 꼴찌지만 MLB에서 스몰마켓에 분담금을 주니까 어찌어찌 구단을 꾸려나간다.


-9, 10구단 창단할 때 발로 뛰었다. 그래서 기존 구단이 나를 별로 안 좋아한다. 모 구단에서 신생 구단 창단한다니까 '얼마나 가나 보자' 고 나한테 아파트 내기를 제안하더라. 곧 망할 거라는 그 구단은 몇 년째 PS 갔는데, 모 구단은 이번에 겨우 포스트시즌 갔다. 그 구단 구단주가 (실명 거론함) 이 얘기 듣고 열받아서 승리수당을 (더 걸었다로 알아들음) ... 그래서 선수들이 동기부여가 되지 않나. 작년에 모 구단이 (실명 거론함) 그 구단한테 1승밖에 못한 게 다 그래서인 거다. (승리수당 제도는 재작년 말에 폐지되었다. 아마 이렇게 눈에 불을 켜고 하다 보니까 계속 이기는 흐름이 되었다는 취지인 듯...)


-9년 전만 해도 선수협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야구계는 그나마 인기가 많아서 잘 나가는 편이다. 우리나라 체육단체장 대부분 돈 주고 욕먹는 자리라 다 안하려고 한다.


-야구발전위원장이 되면서 구단을 늘리자, 선수들의 취업의 길을 열자 등 다섯 가지 목표를 세웠다. 9구단 만들 때 박완수 창원시장이랑 운영권, 광고권 구단에 주는 조건으로 사인했다. 이런 조건으로 계속 나가야 지자체들이 지금처럼 버팅기는 게 바뀐다. 4개 정도 기업이랑 접촉했는데 경직된 제조업체 쪽보다는 문화가 유한 IT 기업이 들어오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스포츠 관해서는 염태영 수원시장이 제일 잘하고 있다. 반면 서울은 전혀 아니다. 박원순 시장이랑 대화해봤는데 솔직히 잘 모른다. 서울이 맨날 이렇게 (전술한 내용) 하니까 광주, 대구도 따라하지 않나. 새 구장 만들 때 구단에 돈 안 내게 하겠다고 약속하라 그랬는데 KIA가 300억 삼성이 500억 냈다.


-미닛메이드파크 건설비가 2880억이다. 고척돔이랑 같다. (다들 경악) 근데 고척돔에 띠 모양 광고판 있나? 없다. 물 줄줄 새고 난리다. 그 많은 돈을 썼는데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영화계는 1인 시위도 하고 그러더라. 우리나라 체육계는 학연, 지연으로 똘똘 뭉쳤다. 행정력을 갖추기 힘든 구조다. 허점이 많은 집단이니 최순실 같은 사람이 비집고 들어오는 거다.


-MLB닷컴 같은 통합 플랫폼이 필요하다. 근데 이런 것도 빅마켓 구단이 반대해서 안된다. 기록 문제 얼마 전에 불거졌다. 한국리그는 돈이 되는 분야는 다 놓치다가 뒷북만 친다. 여러분한테 1년에 천원 내고 모바일로 야구 중계 보라고 하면 그걸 안 보겠느냐? 그러다가 다음 해에 3천원으로 오르면 그렇다고 안 보겠느냐? 이기고 지는 건 선수단이랑 감독이 생각할 일이고, (KBO랑 구단엔) 유능하고 열정있는 전문가들이 들어가서 산업화에 힘써야 한다.


-요새 코치 초봉 4500... (졸다가 뭔 내용인지 까먹었다.)



Q&A

Q1: 아마추어 지도자들의 지도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게 리그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A: 그걸로 30분은 말할 수 있다. 엘리트 스포츠가 국가에 이바지하는 게 대체 뭔가? 99%가 이거만 하다 실패하는 시스템이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일정 수준의 소양을 갖춰서 나가야 한단 거다. 고교선수쯤 되면 뛰는 거만 봐도 얘는 프로 못 가겠구나 하고 안다. 근데 학부모들이랑 얘기해보면 다 류현진 추신수 꿈꾸고 있다.


-야구 인기가 워낙 좋다 보니 자질 미달인 지도자들도 있다. 미국에서 리틀야구 하다 온 초3한테 슬라이딩 연습을 백번 시켜서 발목이 나가게 한 지도자가 있단 얘기를 들었다. (쫓아갈 뻔 했단 발언)


-우리나라 학생야구는 학생야구가 아니다. 고등학교는 메이저리그 AAA고, 중학교는 AA, 초등학교는 A 이런 느낌이다. 다들 야구만 하고 있지 않나. 게다가 한달에 50-80만원씩 내는 온실야구를 한다. 학부모들 입김을 피하기가 힘들다. 예전 최희섭, 이대호처럼 헝그리정신으로 내가 성공해서 우리 가족을... 이런 선수가 더 이상 나올 수가 없다. 돈이 없으면 애초에 야구를 안 시킨다. 재능있지만 돈 없는 친구들은 거기서 가로막히는 거다.


Q2: 궁극적으로 프로구단이 구장을 소유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하지 않나?


A: 우리나라 환경에서 그렇게 하기가 아주 힘들다. 예전에 롯데 코치 할 때 야구장에 칠을 하자고 했더니 그러려면 시에 승인을 받아야 한단다. 정삼흠 선수 LG 있을 때 얘긴데 잔디에서 (제자리) 뛰고 있으니까 관리인이 와서 "정 선수 뛰지 마세요! 잔디 망가져요" 했다고 한다. 요새 청와대에 청원 넣고 하지 않나. 외부에서만 얘기할 게 아니라 중앙이나 지자체에 적극적으로 청원, 민원을 넣어서 (이런 환경이 바뀔 수 있도록) 직접적인 의사 표현을 하셔야 한다.



-다음 편으로 이어진다.

Posted by 김에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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