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최고의 이슈메이커를 뽑으라고 하면 역시 김성근만한 인물이 없을 것이다. 하위권 팀을 포스트시즌에 보내는 마법을 부리고, SK 왕조를 세운 사람. 그리고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전 감독이자 현재 한화 이글스의 감독. 프로야구 최고의 감독 논쟁을 할 때마다 항상 빠지지 않는 인물이 그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과거들은 이제 과거로서 남겨두어야 할 것 같다. 올해 한화 이글스 감독을 하면서 그가 보여주고 있는 극단적 운영은 야구팬 대부분을 질리게 하고 있다. 서두가 길었는데, 제목대로 왜 '김성근의 야구' 를 지양해야 하는지 써보겠다.
-1 : 아군과 적군의 이분법, 배타적 태도
'그라운드는 전쟁터다' 김성근이 가장 자주 내뱉은 말 중의 하나다. 이만수 당시 SK 2군 감독이 한 코치가 휴식일을 이용해 아버지의 기일에 다녀오는 것을 허락하자, '전쟁 중인 장수가 어찌 전장을 이탈해 개인의 사사로움을 취하려 하느냐' 하고 화를 낸 사람이 바로 김성근이다. 그런가 하면 2008년에 조영민이 상대 타자 정성훈을 맞히고 사과하는 제스처를 취하자 '선배라도 그라운드에서는 적인데 어떻게 예의를 차릴 수가 있는가' 1 라며 다음 날 120구 벌투를 지시하고 2군으로 내려버리기도 했다. SK 시절 상대 투수의 투구폼을 지적하기도 했고 (리오스) 한국시리즈에서는 두산과 빈볼을 주고 받기도 했는데, 이 역시 따지고 보면 김성근 감독의 배타적 태도가 큰 요인이다. 물론 경기를 하는 상대방은 경쟁자지만, 단순한 적이 아니라 그라운드의 동업자라는 의식 역시 가져야 한다. 야구장에서 뛰고 있는 상대팀은 2밟아버리고 무너뜨려야 할 적이 아니라 선의의 경쟁을 통해 극복해야 할 라이벌이다.
-2 : 이중적 태도, 비매너, 언론플레이와 무책임한 발언
올 시즌 롯데와의 빈볼 시비가 터지자 '상대 벤치에 대한 언급은 신중해야 한다' '야구는 전쟁이 아니다' 라는 말을 한 사람 역시 김성근이다. 과거 LG 봉중근의 선발 기용 여부에 대해 왈가왈부하거나, 삼성과 류중일 감독에 대해 매번 폄하하는 발언을 한 사람과 동일인이라고는 선뜻 믿기 어렵다. 그러나 그게 바로 김성근이다. '사인 훔치기는 당하는 쪽이 바보다' 라고 하면서도 2009년 한국시리즈가 끝나자 'KIA에서 사인 훔치기를 했다' 라는 발언으로 상대 팀을 깎아내리는가 하면, 통상 선발투수가 갑작스럽게 강판되면 같은 쪽 팔로 던지는 선수가 올라오는 것이 관례임에도 불구하고 좌완 이승호 내리고 우완 카도쿠라, 우완 송은범 내리고 좌완 고효준 등의 위장선발 운용을 한 예도 있다. 3(올해 SK에서는 김광현이 등판하지 못하자 박희수가 선발로 등판하는 비상상황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게 맞다. 김용희 감독이 바보라서 여태 선발로 등판한 적이 없었던 박희수를 갑작스레 내보낸 것이 아니다.)
김성근은 한국프로야구에서 가장 언론플레이를 열심히 시도하는 감독이라고 평가받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자신을 억압받는 구세주로 포지셔닝하고, 이와 대조되게 현 야구계는 경직되고 구시대적인, 시대에 뒤떨어지고 발전이 없는 곳으로 평가하는 것이 그의 일관적인 언론플레이 방식이다. 그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마치 예수처럼 추앙받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과연 '인천 예수' 라는 별명이 허투루 지어진 것은 아닌가 보다. 단 그가 절대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될 수 없는 인물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사실 그가 핍박받는 피해자의 위치에 있었던 것도 과거의 일이다. 김성근의 제자 조범현, 김기태 등이 감독을 지내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는 야구계의 주류에 더 가까우면 가까웠지 전혀 비주류라고 칭할 수 없는 사람이다.
모 인터넷방송에서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 올라왔는데, 정확한 출처는 기억이 안 난다) 모 언론매체의 기자가 '김성근 감독은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새벽 4시에도 기자에게 전화를 해서 항의를 하는 인물' 이라는 폭로를 한 적이 있다. 사실이라면 기자들이 왜 그렇게 그에게 학을 떼는지도 짐작이 간다. 인터뷰를 통해 언론의 흔들기에 놀아나지 않고 꿋꿋이 제 갈 길을 가는 감독이라는 포지셔닝을 하면서도, 동시에 그 언론 기사들의 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 기자들과 사이가 좋을 수가 없다.
SK에서 경질당한 이후 김성근과 아들 김정준은 주기적으로 방송 매체와 기사 등을 통해 한국프로야구 하향평준화 설을 주장해왔다. 우리나라 최고의 전력분석팀이라는 김정준의 칼럼에는 '선두타자 볼넷이 늘어났다' '전체적으로 수비의 수준이 낮아졌다' 같은 확인할 수 없는 (심지어 틀린) 인상비평들만 가득했다. (김정준의 칼럼에 대한 비판글은 다음과 같다.) 김성근과 김정준이 주장한 것들은 결국 자신들이 없는, 그리고 삼성과 류중일 감독이 주도해나가는 프로야구판을 깎아내리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4
SK 감독 재임 당시 롯데를 '모래알 같은 팀' 이라고 혹평하며 로이스터식 야구를 비판한 것은 워낙 유명하니까 더 언급하지 않겠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비판 사례가 워낙 많으니 사소한 얘기들은 잠시 접어두자.
-3 : 선수를 혹사하면서도 한계를 운운하는 그의 야구
SK 시절의 김성근은 적절히 불펜 B조를 운용해서 A조 투수들의 과부하를 덜기 위해 노력하던 감독이었다. (사실 이 부분에서도 전병두 등 이견이 많지만) 그러나 올해 한화에서는 전혀 답이 없다. 김기현-정대훈-이동걸이 올라왔어야 할 시점에 권혁과 박정진을 너무 많이 올렸다. 안영명을 일주일에 세 번 선발로 내보내는가 하면 3일 연투한 송창식을 하루 쉬고 선발로 등판해 117구를 던지게 했고, 김민우는 구원등판 다음날 선발등판이라는 1980년대에서나 볼 법한 상황에 직면해있다. 7월 이후 권혁의 직구는 왜 구위가 떨어졌는가? 김성근 감독이 지적한 '팔 각도가 내려가서 그렇다' 라는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삼척동자도 알 만한 사실 아닌가? 나이 마흔 박정진이 연투를 하기 어렵다고 하자 정신자세를 운운하는 그의 야구관은 '네가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라는 한국 사회 기성 세대의 18번 레퍼토리와 비슷하다. 박정진은 한대화 시절 5연투도 해본 투수다. 자기가 연투가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를 리가 있나.
불행하게도 김성근의 '한계까지 정신력으로 밀어붙인다' 는 야구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너무 소름끼치게 닮아있다. 올해 김성근과 일본 군국주의를 비교한 칼럼이 큰 비난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성근의 출신성분이 일본이라 그를 비하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사실 그 칼럼은 김성근 야구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은 것이었다. 김성근의 야구는 구 일본군의 비이성적인 정신력 강조와, '하면 된다' 를 표방하던 한국의 박정희 시절 유신시대를 연상시킨다. 그 '하면 된다' 는 의식 때문에 대기업들이 그렇게도 그를 초빙해서 수많은 특강에 강연자로 앉혔는지도 모르고.
-결론
감독은 신이 아니다. 따라서 김성근도 야신이 될 수 없다. 그는 신이 아니라 결점투성이의 인간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도태될 뿐이다. 한화의 바로 전임 감독이었던 김응룡이 현대 야구에 적응하지 못하고 경쟁에서 떨어져나갔듯이, 이제는 김성근이 그런 자세를 보이고 있다.
김성근은 SK 와이번스와 고양 원더스를 거치며, '야신' 이라는 호칭을 들으며 자신이 옳다는 무오류적 사상과 독선에 빠졌다. 그는 모든 비판에 귀를 막고, 거짓말과 변명으로 일관한다. 프로생활 내내 직구-슬라이더를 던지면서 타자를 제압했던 투수인 권혁에게 '힘을 빼고 커브를 던져야' 라는 말도 안 되는 주문을 하는가 하면, '송창식의 선발 예고는 실수' 라는 설득력 없는 거짓으로 한화 팬을 포함한 수많은 야구팬을 기만했다.
김성근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백마 타고 온 초인' 하나가 우리를 구원해줄 거라는 메시아 사상은 이제 폐기처분할 때가 되었다. 더 이상 야구판은 감독 하나의 역량으로 고착되어온 구도를 뒤집을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하지 않다. 작년 한국시리즈가 STC로 대표되는 재활 시스템을 정착시켜 감독을 지원해온 삼성과, 트레이닝 및 벌크업을 통해 중장거리 타자를 대량 육성해 리그를 휩쓴 넥센의 대결이었다는 점은 한국프로야구판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팀 성적을 크게 끌어올리려면 감독 하나의 개인적인 능력에 기댈 것이 아니라 과학적 시스템의 도입과 프런트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류중일과 염경엽이 매번 찬양만 듣던 감독은 결코 아니다. 불펜 운용이나 경기 중의 작전 구사 등의 측면을 보면 이 둘은 김성근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1위에 오르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고, 좋은 리더가 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김성근은 두 측면에서 모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상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김성근이 경질되거나 축출된다고 '노력' 과 '한계' 를 강조하는, 김성근의 야구를 너무도 닮은 한국 사회가 급격한 변화를 맞는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선수가 소모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프로야구는 전쟁이 아니라는 두 사실을 명확히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김성근을 이상적인 리더로 칭할 수 없음을 이미 깨닫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김성근을, 그리고 그의 야구관을 지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5947 [본문으로]
- http://sports.news.nate.com/view/20080416n04211 [본문으로]
-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717087 [본문으로]
-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mbsIdx=401043&cpage=&mbsW=search&select=stt&opt=1&keywor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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