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을 마치고 KBO 실행위와 이사회에서는 2차 드래프트 제도를 개선해 퓨처스리그 FA 제도를 시행하기로 결의하였다.
2차 드래프트에 대해서는 선수 육성을 열심히 한 구단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제도라는 비판도 많았다. 그러나 2017년 말에 이루어진 4회차 드래프트부터는 규정을 대거 손질하여 1-2년차 자동보호, 팀당 유출 한도 4명 등 지나친 유망주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개정이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최근 두 번의 2차 드래프트를 보면 유망주 육성에 집중한 구단이 보는 손해가 크지 않으면서도 리그 선수 순환 및 권익 보장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4회차(2017년 11월) 2차 드래프트에서는 조현우(롯데 → KT), 유민상(KT → KIA), 박진우(두산 → NC), 이병규(LG → 롯데) 같은 선수들이 이적 후 성과를 보였으며, 이성곤(두산 → 삼성)이나 허도환(한화 → SK) 같은 선수들도 다시 각각 트레이드를 통해 한화와 KT로 이적하며 팀에 쏠쏠한 보탬이 되주었다. 5회차(2019년 11월) 2차 드래프트에서도 김대유(KT → LG), 이해창(KT → 한화), 노성호(NC → 삼성), 이보근(키움 → KT), 홍성민(롯데 → NC), 김기환(삼성 → NC) 같은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기존 팀에서였다면 잉여전력에 불과했을 선수들이지만, 새 팀으로 이적하면서 다른 방식의 지도를 받거나 잘해야 하는 동기를 부여받고 팬들에게 자기 이름 석 자를 뚜렷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퓨처스리그 FA 제도는 대상이 되는 선수들이 극히 적다. 기존 2차 드래프트에서는 40인 보호명단+1-2년차 자동보호를 제외하고 200명 가까이 되는 선수들이 격년마다 지명 대상이 되었던 반면, 퓨처스리그 FA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선수들은 KBO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20명 안팎에 불과하다고 한다.
어제 직접 퓨처스리그 FA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선수들을 확인해보니 총 23명이었다. 물론 이 명단도 정확한 것은 아니고 약간의 변동사항이 있다. 차재용 같은 경우 이미 방출되었으니 제외고, 류원석은 퓨처스리그에서 뛴 시즌이 5시즌에 불과해 자격요건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백승민도 계산을 잘못했는데 아마 대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 외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요건미달사항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자격 요건이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인데, 그 자격 요건은 굉장히 복잡하다. 우선 KBO리그 등록일이 60일 이하인 시즌이 통산 7시즌 이상인 선수가 대상인데 (부상자명단 및 경조휴가 등록일수 제외) 자격공시 당해연도에 145일 이상 등록된 선수와 기존 FA계약선수를 제외한다. 군복무기간은 산입하지 않고, 군복무 및 전역 혹은 임의탈퇴 등으로 현역선수 등록가능일이 100일 미만인 시즌도 제외된다. 그러면 실질적으로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9년 이상을 퓨처스리그에서 뛴 선수들이나 간신히 자격을 갖출 수 있다는 말인데, 이미 이 정도 되는 선수들이면 구단에 남았을 확률보다는 진작 방출당해서 야구교실 열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을 확률이 더 높다.
게다가 이적이 자유롭지도 않다. 영입 의사를 밝힌 구단은 퓨처스리그 FA 선수를 영입하면서 직전 시즌 연봉의 100%를 초과해서 연봉을 줄 수 없고 계약금도 지급할 수 없으며, 직전 시즌 연봉의 100%를 원소속구단에 보상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이 수준의 선수마저 유출되면 보상금을 받아먹겠다는 구단들의 계산이 너무나 괘씸하다.
결국 2차 드래프트 제도가 이렇게 개악된 건 (KBO리그의 대부분의 의사결정이 그 따위로 흘러가는 이유와 동일한데) KBO리그 구단 수뇌부들이 경쟁하고자 하는 의사가 전혀 없는 것이 그 원인이다. 대부분 모기업에서 예산 따와서 그냥 적당히 잘하는 구단 되고, 어쩌다 우승하면 좋다 그런 마인드지 우승을 위해서 진지하게 도전해보겠다 하는 열망이 하나도 없다. 2차 드래프트 없앴으니 이제 격년마다 40인 명단 짜면서 고민 안해도 된다. 선수들 분류해서 될 거 같은 놈은 기회 주고, 조금이라도 재주 있는 놈은 백업이든 2군 주전이든 내내 처박아두고, 깜냥 안 되는 놈은 1-2년 안에 방출하면 그만이다. 트레이드는 나가는 선수 아까워서 하기 싫고, 외국인선수는 돈 많이 드니까 모두가 공정한 금액 안에서 경쟁할 수 있게 샐러리캡 만들고, 국내선수들도 연봉규모 제한해야 되니까 샐러리캡 만든다. 퓨처스리그 FA? 어차피 선수협이 만들어달랬으니까 만들어준 거고 지들이 꼬우면 뭐 어쩔 거냐, 딱 그런 마인드 아닌가. <KBO "퓨쳐스 FA, 선수협에서 강력히 요청했던 제도" / MHN스포츠 박연준> (링크)
어느 스포츠 언론에서는 퓨처스리그 FA로 요한 산타나가 나올 수 있다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말장난을 하는데 <KBO 제도 변화, 퓨처스리그 FA로 요한 산타나 나올 수 있다 / 스포츠서울 윤세호> (링크) 그래도 희망을 좀 주려고 이런 소리를 하는지, 정말 진지하게 그렇게 믿어서 이런 소리를 하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기사에서 언급한 김건국, 강동연, 이동원, 류원석, 국해성 등은 만 나이로 이미 28~33세다. 제2의 요한 산타나는커녕 오히려 신체능력이 퇴화하기 시작하거나 한참 떨어질 나이다. 요한 산타나는 룰5 드래프트로 이적할 때 만 20세였다. 댄 어글라? 만 25세. 조시 해밀턴? 역시 만 25세. 호세 바티스타? 만 23세.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 나이 유망주 풀었는데 다른 팀 가서 저렇게 활약하면 난리난다.
물론 산타나 정도의 선수가 룰5 드래프트로 이적하고 난 뒤에 활약을 펼치기 시작할 때 미국 현지에서라고 난리가 안 났겠냐만, KBO리그는 애당초 팬들부터 '우리는 육성을 잘했는데 왜 페널티를 받아야 하느냐' 라는 말을 하면서 41번째(실질적으로 61번째) 선수 유출되는 것조차 앓는 소리를 하니 경쟁이 어쩌고 기회비용이 어쩌고 이런 말이 성립되겠는가. 그 정도로 소중한 선수면 당연히 1군에서 백업으로라도 기회를 주면 되는 것이고, 그러다 터지면 선수 좋고 팬 좋고 구단 좋고 셋이 모두 좋은 일이고, 안 되면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른 유망주들을 육성하는 데 집중하면 될 일 아닌가. 올해 만약 2차 드래프트가 열렸어도 40인 보호명단 제외된 선수 중에 1군 주전급으로 발돋움했을 만한 선수가 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 정도 선수가 풀렸다면 선수 보는 눈이 없거나 선수 키울 능력이 없는 구단이 문제지 2차 드래프트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KBO 구단들 어차피 다 비슷비슷하고, 40명+1-2년차에서 다 빠지면서도 다른 팀 1군 가서 특출나게 잘할 만한 선수 전혀 없다. 평소에는 선수 풀이 좁아서 어쩌고 하면서 왜 자기네 노망주들은 딴 데 가면 무조건 터질 거라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매번 팬들도 공범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힘도 없는 선수협에 대고 아무 것도 안하냐고 (동등한 협상주체가 아니니 해도 무시당하는 게 현실이다) 두들겨패봐야 남는 거 아무 것도 없다.
기타 기사 참조
<[오피셜]2군 선수도 자유롭게 새 팀 찾는다. KBO 퓨처스리그 FA 제도 신설-2차 드래프트 폐지 / 스포츠조선 권인하> (링크)
<퓨처스 FA 제도 도입했지만 보상금에 연봉제한까지 / 스포츠경향 이용균> (링크)
<장타 외야수-158㎞ 투수 나오나…두산, 퓨처스FA도 최대 유출? [SC 핫포커스] / 스포츠조선 이종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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