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차전 리뷰
벼랑 끝에서 한현희가 팀을 구했다. 한현희 특유의 움직임 좋은 직구와, 피해가지 않는 깡이 가장 이상적으로 발현된 예. 준플레이오프 2차전 등판에서는 힘만 앞세운 나머지 제구가 이리저리 퍼졌으나, 3차전에서는 구속이 다소 줄었지만 효율적이고 공격적인 피칭으로 SK 타자들을 돌려세웠다. 로맥과 강승호에게 홈런 한 방씩을 맞긴 했으나 세금으로 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
이러한 한현희의 활약에 주효상도 힘을 보탰다. 2회 적시타는 타구 속도가 빨랐고 마지막 순간 박정권의 몸 안 쪽으로 휘어들어가면서 잡을 수 없는 공이 됐다. 4차전 이승호가 흔들리자 몸쪽을 버리고 철저히 우타자 바깥쪽을 체인지업으로 노린 볼배합 역시 수준급이었다. 5볼넷을 내주고도 무실점을 만든 원동력은 주효상의 과감한 선택.
4차전 8이닝을 2피안타 7볼넷 9K 무실점으로 합작한 이승호와 안우진은 분명 미래 넥센의 좌우 원투펀치감이다. 이승호는 우타자 바깥쪽을 공략하는 체인지업과 좌타자 바깥쪽을 공략하는 슬라이더의 움직임이 좋아 구속이 조금만 올라도 향후 좋은 성적을 올릴 것이다. 안우진은 150 가까이 찍히는 직구과 140 초반의 슬라이더 조합으로 언터처블한 위력을 선보였다. 슬라이더가 종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다소 커터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이던데, 이 공으로 몸쪽 높은 코스를 선택해 여러 번 삼진을 잡았다.
이보근은 본인의 말대로라면 직구가 좋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를 3차전에서는 낮은 코스 스플리터 투구로 극복했으나 4차전에는 결국 한동민의 타격감을 살려줄지도 모르는 투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3차전 무사 2루 한동민-최정-로맥을 상대로 한 KKK는 분명 감격적이었으나, 5차전 투입 시점이 고민된다.
김혜성은 4차전엔 침묵했으나 3차전 3타수 2안타 1볼넷으로 1번 자리에서 절정의 타격감을 과시했다. 이제 문제는 수비. 좌우 수비범위는 넓으나 정면 강습타구에 실책을 여러 번 저지르는 아쉬움이 있었다. 마지막 1경기 또한 수비에서 갈릴 가능성이 높고, 야간 야외경기니 좀더 집중력을 발휘해주면 좋겠다. 로맥의 병살 방지 태클과 이재원의 주로 방해 홈블로킹 수비에도 불구하고 부상이 없어서 다행.
3차전에는 감독의 깔끔하고 과감한 투수교체도 빛을 발했다. 6회초 1사 만루에서 오주원을 내 정의윤을 5-4-3 병살타로 잡은 것은 기대도 못했던 대목. 안우진을 1이닝 13구로 끊어 4차전을 준비한 수도 성공적이었다.
4차전은 모든 선수의 혈이 막혔지만 샌즈의 괴물같은 활약으로 잡을 수 있었다. 샌즈는 팀 5안타 중 4안타를 쳐내고, 선제 투런을 쏘며 사실상 타선을 혼자 이끌었다. 1차전에서 홈런 맞은 코스로 그대로 다시 들어오는 문승원의 공을 (분명 그때를 의식하며 되갚고 싶었을 것이다) 좌측 담장으로 넘겨버리는 홈런은 이번 시리즈에서 가장 인상적인 한 방이었다.
6회말 1사 1,3루 임병욱의 번트가 포수 앞에 떨어졌지만 3루 주자 서건창을 런다운으로 몰아가는 과정에서 3루수 나주환이 미끄러지고 송구를 주자 등짝에 꽂으며 쐐기점이 되는 점수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포수 허도환에게 책임을 묻는 기사가 있고 그 기사 베댓이 3루 커버를 가지 않은 유격수 김성현을 탓하는 내용이던데, 내 생각엔 이건 그냥 나주환 잘못이다. 김성현이 타자가 번트를 대자마자 2루 커버를 하러 뛰었다는 건 이미 번트 수비 때 약속된 포메이션이었을 것이다. 아니었으면 뭐... 김성현은 프로 자격 없는 거고. (그나저나 3루 주자가 들어가는데 태연하게 주루방해하고 있는 김택형을 지적하는 내용은 왜 없는지.)
중심타선은 여전히 부진하지만, 김하성이 적시타 하나를 날렸고 박병호가 타이밍을 어느 정도 맞춰가면서 인플레이 타구를 만드는 장면이 나왔다. 5차전을 기대해도 될지.
5차전 프리뷰
4이닝을 던진 안우진과 출전하지 못하는 해커를 제외하고 이길 방법을 찾아야 한다. 1차전 이후 5일 휴식한 브리검이 이번엔 제구력을 되찾아 명예회복을 할 수 있을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김광현을 이번에도 좌타자들이 공략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송성문(4타수 무안타) 임병욱(7타수 무안타) 김규민(5타수 무안타) 등이 고척에서 영 힘을 못 써 걱정이다. 좌타자들이 테이블세터를 구성할 확률이 높으니 이들이 5차전에서 감을 찾아야 한다.그나마 6타수 1안타에도 불구하고 볼넷을 두 개 골라낸 서건창에게 기대를 걸어봐야 할까. 어쩌면 김민성이 다시 선발로 나올지도 모르는 일.
로맥과 강승호의 기세를 어느 정도 꺾어놓았으나 여전히 1번 김강민이 미친 타격감을 보이고 있고, 한동민에게 4차전 마지막 타석 홈런을 허용한 점이 찝찝하다. 김강민이야말로 현재 우리 투수진이 JOB 정신을 발휘해야 할 타자다. 한동민의 경우 아직 완벽히 제 페이스는 아닐 테니, 브리검이 초장에 슬라이더나 커터 위주로 공략하면 잡힐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박병호. 이제는 감독과 팬들의 믿음에 보답할 때가 되었다.
늘 중요한 경기와 탈락 직전에 몰린 경기에서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여주던 팀이 3-4차전을 악착같이 잡아내 시리즈를 다시 문학으로 되돌려놓았다. 물론 대단하지만 누가 이기든 한 경기만 잡으면 되는 상황에서 이제 '이만하면 잘했다' 따위의 수식어는 의미가 없어졌다. 반드시 김광현을 끌어내리고 잠실로 가자.
에이스의 기운이 우리와 함께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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