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스토브리그부터 유난히 음주운전 문제로 KBO 리그가 시끄럽다. 트레이드 과정에서 음주운전 사고가 밝혀진 KT 강민국과 리그 지명 이전 음주운전 사실이 드러난 삼성 이학주부터, 경찰청 야구단 존속을 얘기하고도 정작 본인의 음주운전 사실을 숨김으로써 일말의 가능성조차 발로 걷어차버린 키움 임지열, 스프링캠프 탈락 때문에 술을 마셨다가 자기 1군 로스터 자리도 날려버린 LG 윤대영, 시즌 중에 음주운전을 하고도 구단에 알리지 않고 경기에 출장한 SK 강승호, 여기에 본인의 영구결번 논란을 한방에 종식시켜버린 삼성 박한이까지 이토록 단기간에 많은 선수들이 음주운전으로 파문을 일으킨 것은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SK 프런트가 고충을 호소한 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구단에서 사전예방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교육이 전부다. (몇몇 구단은 벌써 그러고 있는 모양이지만) 일일이 사람을 붙여서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 큰 성인의 사생활을 구단이 어떻게 하나하나 간섭하겠는가? 따라서 엄벌만이 이를 막을 수 있다는 일각의 주장은 타당해보인다.


몇몇 구단은 일부에서 제기되는 '엄벌'의 필요성을 '임의탈퇴' 제도로 대신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강승호와 윤대영이 임의탈퇴를 당했다. 과거로 더 거슬러올라가자면 그 솜방망이 처벌들 와중에도 삼성 김준희(2011년) KIA 손영민(2012년) 삼성 정형식(2014년) 등이 음주운전으로 임의탈퇴를 당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엄벌의 수단으로 임의탈퇴가 활용되는 것이 과연 적절할까? 그렇지 않다. 애초에 임의탈퇴 제도는 사고를 친 선수를 징계하라고 있는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임의탈퇴의 정의부터 알아보자.



임의탈퇴란 무엇인가?


KBO 규약 제31조에 따르면, 임의탈퇴의 대상은 다음과 같다.

1. 선수가 참가활동기간 또는 보류기간 중 선수계약의 해지를 소속구단에 신청하고 구단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선수계약이 해지된 경우

2. 선수가 선수계약의 존속 또는 갱신을 희망하지 않는다고 인정되어 구단이 선수계약을 해지한 경우

3. 제59조 제2항 제1호에 의하여 보류기간이 종료한 경우

4. 기타 KBO 규약에 의하여 임의탈퇴선수로 신분이 변경된 경우


1이나 2를 쉽게 말하면 은퇴하는 선수에 해당하겠다. 그러면 3번인 '제59조 제2항 제1호'는 뭘까? 제 59조 2항은 구단의 선수 보류기간의 효력을 정한 조항이다. 이 중 1번은 '총재가 보류선수 명단을 공시한 연도의 다음다음연도 1월 31일'이며, 나머지는 '보류선수가 임의탈퇴선수로 신분이 변경된 날'과 '구단이 보류권을 포기한 날'이다. 이 중 하나라도 도달하면 보류기간이 끝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4에 해당하는 '기타 KBO 규약에 의해 신분이 변경된 경우'는? 첫 번째는 제98조 웨이버거부다. 구단이 시즌 중에 선수의 계약을 포기하고자 할 경우 다른 구단에 선수의 계약을 양도할 기회를 줘야 하는데, 이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웨이버 공시' 절차다. 그런데 이 웨이버 공시는 선수가 거부할 수 있고, 만약 그렇게 한다면 선수 계약이 자동으로 해지되면서 선수는 임의탈퇴 선수로 신분이 변경된다. 두 번째는 FA 보상선수가 타 구단으로 이적을 거부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임의탈퇴가 될 뿐만 아니라 3시즌 동안 프로야구 활동이 금지된다.(제172조 제2항 제2호) 세 번째는 선수와 구단이 (FA선수의 계약을 규정한) 제17장을 위반한 선수 계약을 맺는 경우인데, 이에 대한 징계는 제176조에서 선수의 당해 연도 FA 신청자격을 박탈하고 1년간 임의탈퇴 공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쉽게 풀어서 정리해보자. 임의탈퇴되는 선수는 (1) 은퇴하거나 (2) 더 이상 야구를 하고 싶지 않거나 (3) 웨이버 공시를 거부하거나 (4) 보상선수로 지명됐는데도 이적을 거부하거나 (5) FA규정을 위반한 계약을 맺은 선수다. (3)~(5)까지의 임의탈퇴는 계약에 대한 징계고, (1)과 (2)는 구단과 선수 간의 합의 하에 계약을 중단하는 것이다. 선수가 계약이나 이적 문제와 관련되어 강제로 임의탈퇴 대상이 되는 게 아닌 이상, 구단이 일방적으로 선수를 임의탈퇴시킬 수는 없다. 상호 합의가 필요하다.



음주운전 관련 처벌규정은?


KBO리그에서 음주운전은 제151조 '품위손상행위'로 처벌하도록 규정[각주:1]하고 있으며, 그 제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단순적발시 50경기 출장정지 및 제재금 300만원, 봉사활동 80시간 (2) 음주측정거부 및 음주운전 확정시 70경기 / 500만원 / 120시간, (3) 접촉사고 발생시 90경기 / 500만원 / 180시간, (4) 인사사고 발생시 120경기 / 1000만원 / 240시간. 덤으로 2회 발생시 가중처벌되며, 3회 이상 발생시 3년 이상의 유기실격 처분을 당한다.


그러니까 사실 윤대영, 강승호가 50경기 / 90경기 출장정지를 받고 LG, SK 두 구단이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더라도 문제가 될 일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두 구단은 두 선수를 임의탈퇴한다고 밝혔다. 왜? '윤창호법' 등으로 음주운전에 대한 규탄 여론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이 시기에,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은 두 선수를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데 구단과 팬들이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여기서 팬들은 현재 KBO리그의 음주운전 처벌 수위가 너무 약하며, 최소 1년 이상의 자격 정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규약 개정의 필요성


앞서 말했듯이, 임의탈퇴는 선수와 구단 사이의 계약을 합의 하에 종료하거나 혹은 정당한 방식으로 이행되지 않은 계약에 대한 제재로써 사용되는 제도다. 그러므로 구단들이 이를 징계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겉보기에는 그럴싸해도 실제로는 제대로 된 방법이 아니다. 게다가 잘못한 선수의 합의가 필요한 제도를 징계에 사용한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너 몇 대 맞을래?" 하고 물어보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임의탈퇴는 어쨌든 1년 후 복귀를 전제로 한 조치다. 그리고 리그에는 이미 임의탈퇴를 대신할 만한 규약이 있다. 제35조의 '실격선수'다. 이 조항에 따르면 품위손상행위를 정의한 제14장에 따라 소정의 실격사유가 인정되는 선수를 총재가 실격처분할 수 있다. 그 동안엔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 위주로 이러한 징계가 내려졌으나, '음주운전도 살인이다' 같은 주장을 살펴볼 때 음주운전 선수에 대해 이러한 조치가 내려진다고 반대할 사람이 있을 거 같지는 않다.


더군다나 임의탈퇴는 구단들의 편법에도 여러 번 동원된 역사가 있다. 부상선수 재활을 위한 로스터 비우기(SK 이승호, 엄정욱) 등록선수 늘리기(한화 조정원, 채기영)는 물론, 소속 선수의 범죄를 은폐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NC 김정수) 구단들이 제멋대로 쓰고 있는 제도 중 하나다. 지금이라도 이를 바로잡아, 본래의 취지에 맞는 방향으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KBO에서 이미 처벌을 받은 선수를 구단이 다시 한번 징계한다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구단은 선수 기용에 관한 이해당사자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냉정히 따져서 강승호와 윤대영은 팀에서 차지하는 입지가 큰 선수가 아니다. 이들을 임의탈퇴해서 팀 분위기를 바로세우고 소속 선수의 잘못에 대해 강력히 대응하는 팀이라는 이미지를 얻는 이득이 전력의 손실보다 크다. 그러나 간판급 투수, 타자라면? 가령 저 둘 대신 최정이나 김현수, 혹은 키움의 이정후나 두산의 김재환이 음주운전 사고로 걸렸다고 가정해보자. 그래도 구단이 이들을 임의탈퇴할 수 있겠는가? 절대 그러지 못하리라고 확신한다. 팬들이 원하는 처벌수위가 10인데 KBO에서 3을 부어놓으면 구단이 나머지 7을 채우는 이러한 방식은 결코 올바르지 않다.


과거 2016년 KT 오정복(15경기 출장정지)나 NC 테임즈(잔여경기래봐야 7경기+포스트시즌 1경기 출장정지) 등의 사례에서, KBO와 구단은 지나치게 가벼운 징계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제는 음주운전 선수에게 최소한 1년 이상의 출장정지 조치를 내려야 합당하다는 데는 모두들 어느 정도 동의하는 듯 하며, LG와 SK의 행보는 그러한 점에서 분명 과거보단 발전이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취지에 안 맞는 제도로 충분하지 않은 수위의 징계를 땜질하는 현재의 방식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제151조의 개정이 필요하다. 특정 선수의 음주운전이 적발된다면 1년 이상의 유기실격 처분을 내리도록 규정을 바꿔야 한다. 또한, 출장정지 등의 징계 처분에서 구단의 역할을 최소화해야한다. 과거 학교폭력 사건을 일으킨 히어로즈 안우진의 50경기 출장정지는 '아마추어 선수를 KBO가 처벌할 수 없다'는 규정의 빈틈 사이에서, 어떻게든 이 선수를 올해 써먹겠다는 구단의 의지가 엿보이는 눈가리고 아웅 식 조치의 절정이었다. 이해당사자의 개입을 막아야만 정의가 바로 선다. '클린 베이스볼'을 내건 지금의 KBO리그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규정조차도 '클린'하지 못하다.

  1. 놀랍게도, MLB에서는 사무국 차원에서 이러한 제재를 받지 않는다. 단지 법으로 정해놓은 제재만 받으며 음주운전 관련 교육을 받은 후 멀쩡하게 리그에 복귀한다. 추신수가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았다는 말, 들어본 적 있나? [본문으로]
Posted by 김에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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