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스포츠조선)


22 vs 75. 박용택 은퇴투어를 두고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찬반을 투표한 결과 나온 수치다. 참담하다. 그것은 내가 LG팬이기 때문도 아니고, 박용택을 특별히 좋아하기 때문도 아니다. 리그의 소중한 유산을 다루는 팬들의 자세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그의 은퇴투어를 반대하는 의견이 왜 이리 많을까? 혹자는 경력의 미비함을 논하기도 하고, 누구는 국가대표 경력이나 전국구 스타라는 상징성이 없이 그저 LG의 원클럽맨일뿐인 그의 스타성 부족을 논하기도 하며, 또 누구는 2009년 타격왕 수상에 대해 비판하기도 한다.


성적 측면에서 살펴보자. 그의 WAR*(58.06)은 통산 12위로 한 시대를 풍미한 타자들이었던 심정수, 장성호, 김기태, 송지만 등보다 높다. 통산 안타(2478)은 당연히 1위며, 별다른 일이 없다면 KBO리그에서 유일하게 2500안타를 달성하고 은퇴하는 타자가 될 것이다. 2루타(436) 3위, 도루(312) 11위, 타점(1179) 7위, 득점(1254) 3위, 유일한 200홈런-300도루 달성자. 아직도 모자란가.


박용택은 물론 전국구의 이미지는 아니다. LG 트윈스 한 팀에서만 뛰었고, 우승반지를 끼고 한국시리즈 정상에 선 적도 없다. 2006년 WBC 한 차례에 선발됐을 뿐, 국가대표로 나서서 특출난 활약을 한 경험도 없다. 그러나 한 개인의 위대함을 논할 때 우승 경력이 꼭 중요한가. LG 트윈스의 암흑기를 함께 버티고 헤쳐나온 고단함도 충분히 고려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국가대표 경력을 논하는 데서는 기가 찬다. KBO리그의 레전드를 기념하는 자리에 국가대항전 성적이 꼭 중요할까. 같은 논리라면 국가대표에서 딱히 활약이 없는 박병호나 최정도 은퇴투어를 할 수 없을까?


2009년 타격왕 수상에 대해 비난하는 말도 있지만, 타격왕 경쟁 중인 선수는 경기에 꼭 출전해야 한다' 라고 특별히 정해놓은 법이라도 있었는가. 누구나 본능적으로 위험을 회피하기 마련이다. 2014년 유한준은 3할 타율 유지를 위해 출전 빈도를 조절해달라고 감독에게 요청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유한준도 무작정 비난받아야 마땅할까? 설령 잘못이라 치더라도, 박용택은 이미 그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는 발언을 몇 차례 했다. 사람은 실수에서 배우고 앞으로 나아간다. 잘못했다고 한 사안에 대해 흠을 잡고 끌어내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 나아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또 그러한 문화를 정착시키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박용택이 이룬 성취는 LG팬만이 즐길 수 있는 것일까? KBO리그는 10개 구단이 각각 다른 리그에서 싸우는 게 아니라, 한 곳에서 우승을 위한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장소다. 누군가는 2009년 나지완의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이나 2017년 양현종의 한국시리즈 완봉승을 보고 전율을 느낄 수 있으며, 누군가는 '바람의 손자' 이정후의 대를 이은 활약이나 강백호의 홈런쇼를 보면서 감동을 받는다. 이런 감정은 단순히 응원팀의 선수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야구를 보는 모든 이들이 만끽할 수 있는 감정이요, 앞으로 프로야구를 향유하게 될 젊은 세대의 눈을 잡아끄는 쾌락이기도 하다. 그래서 박용택의 2478안타는 LG의 기록만이 아니라 모두의 기록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KBO리그가 시작한 지도 39번째 시즌을 맞았다. MLB가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었고 (오늘날과 같은 양대리그 체제가 확립된 건 1901년) NPB의 전신인 일본직업야구연맹(JBL)이 1936년 성립된 걸 감안하면, KBO리그는 아직 막 걸음마를 뗀 아기나 유치원생에 비교해도 지나치지는 않다. 명예의 전당도 없고 은퇴투어도 이제 막 시작인 곳에서, 처음부터 모든 기준을 높게 잡고 깐깐하게 굴 필요는 없다. 


박용택의 은퇴투어 무산은 분명히 앞으로 생산성없는 자격 논쟁을 불러오리라. 선수 개개인의 자격을 논하면서 쟤도 안 되고 얘도 안된다는 방식으로는, 모두에게 상처가 남을 뿐이다. 이승엽 이후 아무도 은퇴투어를 할 수 없는 리그보다는, 차라리 누군가 1년에 한 번씩 은퇴투어를 하는 리그가 더 바람직하다.


각자의 열의와 정성을 소모적인 싸움으로 낭비하기보다, 리그의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아름답게 꾸며갈지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KBO리그는 더 많은 이야기와 감동이 필요하다. 우리가 차곡차곡 쌓아야 할 것은 오지환 병역 논란이나 박용택 은퇴투어 논란 따위의 무의미한 싸움박질이 아니라, 후대에 남는 유산이다. 박용택은 분명히 그 한 페이지를 장식할 가치가 있는 선수라고 믿는다.

Posted by 김에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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