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4~1105

두산 vs LG

1차전 4:0 (잠실) 플렉센 / 이민호

2차전 9:7 (잠실) 알칸타라 / 윌슨



감상


(1) 그야말로 두산의 야구력이 극에 달한 시리즈였다. 두산이 KT 역시 잡으리라 예상한다. (3승 1패 예측) 준플레이오프가 3차전까지 갔다면 두산의 불펜진이 더 약점을 드러내면서 설령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더라도 KT에게 밀리는 시리즈로 진행되었을 확률이 높아보였다. 그러나 최원준과 이승진이 크게 폭발하지 않고, 이영하가 막판 살아나면서 LG의 추격을 꺼뜨린 끝에 준플레이오프를 2:0으로 종료했다.


두산은 FA 디아스포라 이전 마지막 우승이라는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 동기부여가 바짝 되어있고, 그러한 각오를 뒷받침해줄 위닝 멘탈리티도 있다. 반면 KT는 첫 가을야구 진출이다. 황재균, 유한준, 이보근 등 가을야구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 있지만 포스트시즌에 처음 나서는 구단이 호성적을 거두기는 쉽지 않으리라 본다. 이러한 예상을 깨줄 변수가 있다면 소형준이다. 소형준이 얼마나 강심장이냐에 따라 두산과 KT의 운명이 갈릴 거 같다.


(2) 1차전 이민호는 두산 좌타 라인을 상대로 바깥쪽 직구와 몸쪽 슬라이더라는 배합을 어떻게 가져가냐가 키워드라고 봤다. 이게 먹힌 2회와 3회는 어느 정도 위기를 넘겼지만, 1회와 4회에는 허경민 상대 사구가 나오면서 경기를 그르치고 말았다. 1회 선두타자로 나온 허경민은 사구를 맞자마자 바로 이민호를 째려보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물론 아파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포스트시즌 기싸움을 위해 일부러 신인투수의 기를 죽여놓으려 했다는 게 더 바람직한 추측이다. 아니나다를까 그 다음 타자인 페르난데스에게 바로 행잉 슬라이더가 들어가며 선제 투런을 허용.


플렉센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없다. 처음에는 직구가 다소 높다고 봤는데 그 높은 직구마저 우월한 구속과 구위가 있으니 LG 타자들이 도통 치지를 못했다. 받쳐만 준다면 하이패스트볼만큼 좋은 선택지도 없다.


(3) 정규시즌이야 6회에서 3점차로 뒤지면 추격조를 기용하면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것도 용서될 수 있지만, 단 10%의 가능성이라도 포기할 수 없는 포스트시즌에서는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다. 가령 6회 0:3에서 이정용을 선택한 류중일의 선택이 그렇다. 임찬규, 정찬헌, 최동환 중에 어느 하나가 나오는 게 맞았다. 최성훈-송은범-김윤식이 분발해서 3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정용이 내준 볼넷과 오재원의 좌중간 적시타로 만들어진 1점은 이 날 경기의 최종 점수였다.


(4) 2차전은 4회 윌슨이 무너지면서 난타전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윌슨은 140 내외의 공을 던졌고 직구계열 공의 커맨드가 좋지 못해 변화구 위주의 승부를 가져갔다. 3이닝을 단 1실점으로 넘긴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결과론이지만 4회 시작부터 진해수나 정찬헌과 교대를 해줬어야 그나마 한국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아름답게 끝낼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4회 한번 주자가 나가자마자 윌슨의 약점인 주자 견제를 허경민과 박세혁이 파고들었고, 결국 두산 대량득점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말았다.


진해수를 무려 5타자나 상대하게 하며 방치한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선택. 아무리 감독이 '관중' 같은 별명이 붙었어도 이렇게 손을 안 쓰고 가만있을 수 있나? 재계약이 물건너가니 경기에 대한 의욕도 사라진 게 아니었나 싶다.


(5) 알칸타라는 목에 담 증세가 있어서 그런지 최종전보다는 컨디션이 안 좋았다. 이미 2회에 연속안타를 한번 허용했고 (김민성의 투수 라인드라이브로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만) 구속도 최종전보다는 3km/h 정도 낮았다.


김태형이 4회부터 이미 불펜을 준비했다는데 확실히 이유가 있었다. 4회에 라모스와 채은성의 백투백이 터지며 분위기를 만들었고, 5회가 되자마자 오지환의 안타에 이은 김현수의 (뒤늦은?) 투런이 터졌고 다시 바뀐 투수 이현승을 상대로 라모스가 대형홈런을 터뜨리며 흐름을 LG로 돌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현승을 빠르게 최원준으로 교체한 김태형의 판단은 류중일과 무척 대조적이었다.


(6) 저번 와카전 끝내기도 그렇고, 이번 가을야구에 새롭게 주목할 만한 대상은 신민재였다. 신민재가 최원준을 상대로 11구 승부를 펼치며 볼넷을 얻어냈고, 뒤이어 이승진이 홍창기에게 볼넷-오지환에게 2루타를 맞으며 경기는 1점차까지 좁혀졌다.


이 장면에서는 박세혁의 바깥쪽 일변도 볼배합이 좀 아쉬웠다. 상대 타선의 기세가 올라오고 있으니 피해가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가 가나, 바깥쪽으로만 주구장창 던지면서 올해 리그 상위급 타자로 올라선 오지환에게 안타를 안 맞길 바라는 게 이상한 일. 실제로 그 다음 김현수에게 스탠딩 삼진을 이끌어낸 공은 스트라이크존으로 낮게 들어간 공이 아니었던가. 정교한 코너웍을 기대할 수 없는 투수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다.


(7) 7회 정찬헌을 요행으로 밀어붙이는 무리수가 간신히 1,2루 잔루로 끝난 이후, 라모스의 볼넷에 이어 2-0 카운트에서 채은성의 병살타. 뻔한 얘기지만 홈런 하나 치고 나서 마음이 급해진 것일 테다. 만약 3볼까지 갔다면 그 이후 승부는 알 수 없었을 텐데, 그 타격만 보면 오히려 박치국보다 나이가 많은 채은성이 쫓기는 신인급 같았다.


이어서 8회 1사 1루에 고우석을 투입하는 승부수는 그나마 예전 포핏띵장의 명성이 허명이 아니란 걸 보여준 단 한번의 수. 그러나 8회말 유강남 대타 박용택은 어마어마한 스노우볼로 돌아왔다.


(8) 만약 과감한 승부수를 던질 거였다면, 유강남이 아닌 1번 홍창기에서 대타가 나왔어야 했다. 홍창기가 LG 공격의 첨병이긴 하나 준플 2경기에서 9타석 1볼넷을 얻어내는 부진을 보였는데, 홍창기 -> 대타 박용택 -> 대수비 구본혁 (후 신민재와 포지션 스위치) 정도라면 자연스러운 흐름이 됐을 것이다. 물론 홍창기가 LG 외야에서 가장 수비가 나은 선수긴 하지만, 주전포수 유강남을 빼는 것만큼 위험부담이 크진 않다. 더군다나 이성우가 시즌 후반 수비집중력을 잃는 듯한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왔다. 게다가 150km/h를 던지는 이영하를 상대로 양석환도 아니고 나이 마흔 둘의 박용택?


딴 소리지만 이천웅의 주루플레이에서도 주루방해 어필이 없었던 게 아쉽다. 이천웅이 2루로 뛸 때 오재원은 공이 뒤로 빠진 순간 드러누워서 방해했는데, 만일 이러한 방해를 받지 않고 이천웅이 바로 뛰었다면 3루가 비어있었기 때문에 이영하가 백업을 하러 들어왔어도 3루에서 세이프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얄미운 행동이긴 하지만 이런 디테일 하나하나가 한 점 한 점의 차이를 가르는 것이고, 두산은 아직까지 이런 플레이를 제일 잘하는 구단이다.


(9) 9회 허경민이 굳이 번트를 댈 필요가 있나 했는데, 2루수 구본혁이 공을 한번 놓치고 이어서 구본혁의 송구를 포수 이성우가 받으면서도 멀뚱멀뚱하다가 바로 뒤로 지나가는 주자 이유찬을 체크하지 못해 한 점을 실점했다. 이유찬은 멈추라는 김민재 코치의 사인을 보고 멈칫하다가 그냥 뛰었던데, 그냥 죽었다면 역적이었겠지만 단기전에서 이러한 도박이 성공하면 영웅이 된다. 8회에는 제구가 흔들렸던 이영하가 결국 9회 감을 잡으면서 삼진 두 개를 곁들인 삼자범퇴로 LG의 추격을 봉쇄하며 승부를 마무리지었다. 단기전에서 선발 스태미너의 마무리를 잘 써먹는 김태형의 믿음의 야구가 또 한번 적중했다.


(10) 박용택의 커리어에 결국 한국시리즈는 단 1번뿐이었고, 마지막 시즌의 아름다운 이별은 미완으로 남게 됐다. 그는 분명 KBO 역사에 남을 훌륭한 선수지만, 그런 이에게 우승 한번 선물하지 못한 동료 선수들과 팬들의 마음은 얼마나 쓰라리겠는가. 남일 같지가 않아서 무척 슬펐다. 히어로즈의 간판들이 아직 치고 달릴 수 있는 힘이 남아있을 때,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광경을 꼭 보고 싶다.

Posted by 김에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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