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그 중단은 찬성

 KBO 이사회에서 리그를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일단 이 결정 자체는 찬성합니다. 선수들의 안전을 생각해서입니다. 대다수의 말대로 매뉴얼에 따르면 대체선수를 기용해서 리그를 계속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리그를 진행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는 사정이 있을 경우' 리그를 중단할 수 있다는 내용도 분명히 매뉴얼에 포함되어있습니다.

 

 일별 코로나 확진자 수가 하루 1300명 가량을 찍고 있는 시기입니다. (현재 6일부터 코로나 확진자수 1212-1275-1316-1378-1324-1100-1150) 작년 9월, 리그에서 처음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을 때 코로나 확진 판정이 일일 평균 300여명씩 불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유행이 번지고 있고 변이바이러스까지 확산되고 있으며, 리그 구성원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선수들은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20-30대 남성입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2. KBO의 한심한 의사결정 구조

 하지만 리그를 중단하면 안됐다는 이야기도 일리는 있습니다. 작년 MLB도 배워간다며 자랑했던 코로나19 매뉴얼은 막상 리그 중단을 결정하면서 전혀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김태우 기자의 어제 트윗입니다. 비록 지워지긴 했지만 이사회에서 대다수 구단이 매뉴얼을 깨기로 할 경우 KBO가 얼마나 힘이 없는지를 잘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대기업 회장들의 펫스포츠로 자생이 불가능한 KBO리그에서 사무국이 이런 큰 결정을 독단적으로 내릴 수 있을 거라고 보지 않습니다. 지금 KBO는 매뉴얼이나 사무국의 판단보다 구단들의 셈법이 리그 진행에 더 영향을 줄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입니다. '두산 구단주 대행 출신 총재가 두산에 또 유리하게~' 같은 이야기해봐야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KBO리그 중단…‘구단 이기주의’가 ‘원칙과 약속’ 이겼다 [엠스플 이슈] (링크) 총재가 두산 출신 인사인 것도 영향이 없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진 대기업들이 이러한 두산의 행각을 눈 뜨고 관망하는 것 역시 큰 문제입니다. 두산이 정지택 총재의 선임을 주도할 때 SK와 LG가 호응한 선례도 있었습니다. <‘친박 인명사전’ 올랐던 ‘MB맨’ 정지택…야구계의 의심 “두산이 구단 매각 막고자 자기 사람 심은 것 아니냐” [엠스플 탐사] (링크)> KBO의 결정을 각 구단에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3. 모순점

 그러나 KBO 사무국 역시 비판받아야 할 이유가 많습니다. 우선 올스타전을 진행하기로 한 것입니다. 올스타전은 정규시즌과 아무런 관련도 없고, 올해 올림픽 때문에 참가하지 못하는 주요 선수들이 있을 뿐더러 코로나19 이슈가 심각한 것을 감안하면 전혀 열어야 하는 근거가 없는 경기입니다. 정규시즌 한 주 경기를 통째로 날렸는데 '올스타전 한 경기쯤은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마음가짐이 코로나19를 오히려 전국 각지로 확산시키는 최악의 한 수가 될 수 있습니다. 키움 히어로즈와 만25세 이하 라이징스타팀을 대상으로 대표팀이 벌이는 평가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표팀 선수들의 실전감각 정비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경기긴 하지만, 역시 '정규시즌도 멈췄는데 왜 이 경기를 해야 하는가?'로 적절한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7이닝 더블헤더와 연장전 승부치기를 검토하겠다는 내용도 문제입니다. 개인 타이틀이나 팀의 경기 운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대한 규정 변경을 리그 진행 도중에 추가로 도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비디오판독처럼 시급하게 팬들이 요구하는 문제라면 그럴 수 있지만, 차라리 리그 축소를 외쳤으면 외쳤지 위의 두 제도를 환영하는 팬들은 보기 힘들 겁니다. 144경기를 다 마치겠다는 선언을 했다면 그냥 10월 내내 8연전 편성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밀어붙여야 합니다.

 

 '1군 내 확진자 및 자가격리자 50% 이상 발생시 리그 중단' 이라는 내용을 매뉴얼에 추가한 것 역시 말이 안됩니다. 앞으로 확진자 발생시 구단의 리그 중단 요청을 막기 위해서 새로 내놓은 기준인 모양인데, 이미 리그를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만든 가이드라인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만약 이번에 NC나 두산에서 격리해야 하는 인원이 35% 나왔다면 매뉴얼에 추가됐을 내용은 '30% 이상'이었을 것이고, 45% 나왔다면 '40%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기준은 매뉴얼을 작성했을 때 나왔어야지 매뉴얼에는 '대체선수로 진행' 이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두 구단의 편의에 맞춘 숫자를 추가하는 걸 보니 KBO의 행정능력에 굉장한 의문이 듭니다.

 

 자가진단키트로 선수단의 전수검사를 진행하겠다는 이야기 역시 어이가 없습니다. 그냥 리그 쉬는 김에 개인이 보건소 가서 개별적으로 확인하면 될 일입니다. 정확도도 떨어지는 키트를 굳이 활용하겠다는 건 KBO 총재들이 연이어 MB-박근혜 정권 딸랑이짓 하던 인사들이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보입니다.

 

 

4. 두산-NC의 무책임한 태도

 

최악의 사과문

 두산과 NC는 코로나19 선수 발생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유지하다가 리그 중단 결정이 내려지고 나서야 공식 사과를 내놓았습니다. (NC는 해당 기사에서 구단 관계자 명의로 사과의 표현을 한 적은 있지만 구단 차원의 공식 사과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두 구단의 사과문이 모두 부실하지만 심지어 두산의 사과문은 NC의 사과문과 비교해도 무엇이 부족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기본 내용마저도 제대로 담겨있지 않습니다.

 

 두산은 작년에도 무관중 경기 시기에 선수 두 명이 유흥주점에 출입해 징계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 확진으로 KIA마저 주전포수가 격리되며 피해를 본 만큼, 양 구단은 개개인의 방역수칙 준수 여부가 확인되지 않더라도 확진 판정이 내려지는 즉시 사과문을 발표하는 것이 적절했습니다.

 

 가장 기가 막히는 부분은 두산과 NC가 엔트리 부족을 이유로 앞장서서 리그 중단을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리그 중단 논의로 번진 'NC발' 코로나19 사태(링크)> (*정세영 기자의 '뭐니볼TV'에 따르면 두 구단이 먼저 리그 중단을 요청한 게 아니라 8개 구단의 의견을 수렴한 후 최종으로 두 구단의 입장을 들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럴 거면 시즌 전 매뉴얼에 합의는 왜 했습니까? 이번 리그 중단 여부를 놓고 두 구단의 의견은 묻지 않는 것이 맞았다고 봅니다.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팀에게 이런 중요한 사안에 발언권을 줘서는 안됐습니다. 상식적으로 1군 엔트리 절반을 못 쓰는 상황에 어떤 구단이 '그렇게 하십시오' 하겠습니까?

 

(*수정: 야구부장, 뭐니볼TV 등 복수의 소스에 의하면 두산과 NC가 리그 중단을 앞장서서 요청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먼저 리그 중단에 대한 의견을 나머지 8개 구단에 대해 물어본 이후 두산과 NC의 사정을 청취한 정도라고 합니다.)

 

 

5. 확진자 신상공개는 안될 말

 확진자 신상을 공개하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리그 중단의 책임을 그 선수까지 짊어질 게 뻔할 상황에서 개인을 불구덩이에 내던질 수는 없습니다. 일단 두산과 NC의 확진선수가 무증상이라는 보도가 있으며 <스포츠서울 - 리그중단 최대피해(?) KT... 오히려 반대 목소리 냈다 (링크)> 해당 선수들이 방역조치를 부실하게 해서 걸렸는지, 아니면 팀 동료의 잘못인지, 혹은 구단 관계자들은 최선을 다했음에도 알 수 없는 경로로 코로나 확진이 되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책임소재가 분명하면 모르되 분명하지 않다면 두고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추가: 현재는 NC 선수단에서 4명이 코로나 방역수칙을 어기고 호텔방에서 술을 마셨다는 사실이 공개되었습니다. 코로나에 걸린 건 죄가 아니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방역수칙을 위반한 건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이는 리그 차원에서 징계해야 마땅합니다.)

 

 두산 선수들이 '지난 주말부터 이상 증세가 있었다'는 얘기를 한 것으로 왜 미리 말하지 않았냐며 비난을 받고 있지만, 코로나19의 증상으로 흔히 지목되었던 고열이나 미각 상실 등의 증세가 없었다면 일반인이라도 '그냥 컨디션이 안 좋구나' 하며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놓고 잘못이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도 하루 코로나 확진자의 30% 가량은 감염경로를 파악할 수 없다는 기사가 있더군요. <연합뉴스 - 전국서 신규 집단감염 속출…감염경로 '조사중' 30.7% 최고치 (링크)> 저는 아래의 단장 인터뷰가 굉장히 인상깊었습니다.

 

A단장, B단장 모두 리그 강행론이 담고 있는 ‘확진자가 발생한 NC와 두산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시각도 경계했다. 이들은 “방역수칙 위반 여부는 일단 차치하고, 확진이 곧 유죄가 되어서는 안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감염경로 미확인 비율이 30%를 넘는 가운데 ‘걸렸으니 제 잘못’이라는 태도는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라며 “야구가 그런 의식 확산을 가속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입을 모았다. A단장은 개인적 의견을 전제로 “우리 팀이 좋은 결과를 냈을 때 ‘그때 거둔 몇 승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단장들은 왜 비난 여론 알고도 ‘중단’을 건의했을까 (링크) 스포츠경향 이용균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KBO가 감염경로를 확인하고 만약 선수단 방역조치에 미흡함이 있었다면 구단에 책임을 묻고, 구단은 다시 방역조치를 소홀히 한 선수들을 징계하는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작년 두산 선수들의 유흥주점 출입 때는 구두 경고로 끝냈지만, 이번엔 반드시 리그 차원에서 제재금이라도 부과해야 합니다.

 

 사실 보이는 방역도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올라와서 침을 뱉고, 덕아웃이나 구단직캠을 통해 단체로 모여있을 때 마스크를 안 쓴 선수/코칭스태프가 수두룩하게 확인되고 있는데도 징계조치 한번 제대로 내리지 않은 것이 KBO의 현실입니다. '나 하나쯤이야' '이거 잠깐쯤이야' 하는 마음을 내버리고 자신의 생활공간 외에는 계속 마스크를 착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6. 언론의 파상공세

 흥미로운 점은 언론들이 연일 두산과 NC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논조로 기사를 쓰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프로야구 사상 보기 힘들 정도의 집중공격입니다. 대충 포털 사이트 들어가서 인기순으로만 정렬해도 얼마든지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리그 중단 결정, 결국 피해 준 팀만 피해 안 본다 (링크) 엑스포츠뉴스 조은혜
NC-두산 놀이터 전락한 KBO, 공정 논할 자격 없다[SC직언직설] (링크) 스포츠조선 박상경
'내로남불' NC-두산 잘못, 왜 다른 구단까지 책임져야 하나[SC직언직설] (링크) 스포츠조선 박상경
NC와 두산은 흉흉한 소문에 대한 진실부터 밝혀라 (링크) MK스포츠 정철우
염치 없는 두산-NC, 그들만의 '엿가락 매뉴얼'을 바라나 (링크) OSEN 조형래
밀접접촉자 공개→격리→경기 진행…비겁한 두산-NC 민폐의 모순 (링크) OSEN 조형래
40년 한국 프로야구 사상 초유 리그 중단 담합 ‘취재 후기’ (링크) KBS 김도환
‘리그중단’ 목적 달성한 두산·NC, 동시에 사과문 발표 [엠스플 이슈] (링크) 엠스플뉴스 배지헌
17명 빠진 OB도, 18명 빠진 마이애미도 ‘리그 중단’ 소리는 안 했다 [배지헌의 브러시백] (링크) 엠스플뉴스 배지헌
2팀 때문에 8팀이 '연대 책임'... '형평' 사라지고 '편의'만 남았다 (링크) 스타뉴스 김동영
설마가 사람 잡으니 매뉴얼 손질…원칙 어긴 KBO리그 중단, 씁쓸한 뒷맛 (링크) 스포츠동아 최익래

 

 평소 스포츠 언론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헤드라인이 많습니다. 아마 언론에서는 속사정을 파악하고 있지만 오피셜로는 차마 내놓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그나마 구단에 좀 호의적인 기사를 찾아보자면

 

5명만 이탈? NC·두산 초토화 가능성…리그 강행 의미 있나 (링크) 스포티비뉴스 김민경
[SC초점]곳곳에서 마스크 안쓴 선수들. 당신들은 방역 수칙 잘 지켰습니까 (링크) 스포츠조선 권인하

 

정도가 있었습니다. 물론 스포츠조선 권인하 기자의 부인은 두산 베어스 홍보팀 김지영 과장이라는 점을 봐서 저 기사를 순수하게 긍정하긴 힘들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기자 개개인이 겪었던 방역으로 인한 피로감이 두산과 NC 양 구단의 대처에 대한 분노로 나타난 것일까 추측도 해봅니다.

Posted by 김에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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