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녕, 서건창

 스몰마켓 팀을 응원하면 어쩔 수 없이 이별에 익숙해져야 한다. 데이빗 프라이스나 에반 롱고리아 같은 시대를 풍미할 선수들을 만나도 '저 선수들은 잠시 이 팀에 있는 것이며, 언젠가는 떠날 거다'라고 계속 되새김질을 해야 언젠가 찾아올 헤어짐에 조금이나마 덤덤할 수 있다. 몇 년이 지나고 나면 그렇게 핵심 전력이 유출되더라도 할 수 있는 선에서 끊임없이 정상을 향해 도전하는 팀을 보면서 자조할 수 있는 여유라도 생기는 것이다.

 

 쿨병이라고 욕해도 좋다. 그런 마음으로 히어로즈 역시 봐왔다. '히어로즈 팬이 될 거다!' 라고 선언한 게 딱 십년 전 이맘때였다. 생존을 위해 간판 선수들을 팔았고, 프로야구의 근간을 뒤흔드는 미꾸라지 취급받아도 아득바득 살아남아있는 팀을 보면서 마음이 움직였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팀이었다는 것도 한몫 했다.) 그리고 별 기대없이 맞은 오프시즌에서 이택근이 돌아왔고, 김병현이 합류했다. 그게 구단주가 선언한 히어로즈 2기의 시작이었다. 10년 동안 가을야구에 나서는 선수들을 보는 건 어느덧 익숙한 광경이 되었고, 그 동안 전력에서 다소 비중이 줄어든 선수들을 내보내거나 FA로 선수들을 떠나보내는 일은 있어도 핵심선수들을 트레이드하는 일은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줄 알았다면 너무 성급한 기대였을까.

 

 OPS .700을 겨우 넘고 수비도 예전같지 않은 2루수를 트레이드했다는 걸 혹자는 팀의 체질개선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으나, 그 이름이 서건창이라면 의미가 많이 달라진다. 서건창은 2012시즌 신인왕, 2014시즌 MVP를 수상하며 신고선수 신화를 썼고, 팀 팬덤의 토대를 다지고 주장으로 헌신하며 좋은 시기에나 안 좋은 시기에나 함께 해오던 이름이었다. 강정호와 박병호가 없을 때도, 박병호가 돌아오고 김하성과 이정후가 새로운 미래로 떠오를 때도 서건창은 언제나 2루에 굳건하게 서있었다. 이런 선수를 보냈는데 어떻게 전력의 득실만 놓고 말을 할 수 있겠나.

 

 올 시즌 시작 전 서건창이 스스로 연봉을 삭감할 때 떠날 수도 있겠다는 짐작을 했지만, 적어도 그 이별은 겨울에나 찾아올 줄 알았다. FA 이적이든 사인 앤 트레이드든 익숙한 방식일 거라 생각했는데, 시즌 중 트레이드는 굉장히 당혹스럽다. 속사정을 보니 한현희와 안우진의 징계로 선발에 구멍이 뚫린 키움을 보고 LG에서 서건창 트레이드를 논의해왔고, 단 몇 시간 만에 정찬헌 카드로 그렇게 딜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만약 이 둘이 원정숙소를 빠져나가 방역수칙 위반으로 징계받는 일이 없었다면, 가을야구를 노리는 팀 입장에서 서건창을 이렇게 쉽게 트레이드하는 일 또한 없었으리라. 혹 서건창을 트레이드할 수도 있다 치자. 무슨 우승도전을 위한 마지막 카드 보강의 반대급부로 보낸 것도 아니고, 올 시즌 사고친 놈 둘의 뒷수습 때문에 이러한 거래를 해야 했다는 사실에 더욱더 분통이 터진다.

 

 평소에도 '카드만 맞는다면, 미래를 노린다면' 핵심선수도 트레이드할 수 있다는 말을 농반진반으로 해왔던지라 이런 일이 벌어져도 그다지 상처받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역시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팀을 응원할 때와 살고 있는 동네 앞에 있는 팀을 응원하는 마음이 같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서건창이 2012시즌 깜짝스타로 등장해 2014시즌 200안타 기록을 깰 수 있을지 숨죽여 지켜보고 응원하고 안타 하나하나를 세던 그 시절의 감동을 어떻게 잊겠으며, 그 특유의 타격폼과 중요한 순간마다 터지던 날카로운 타구들을 어찌 또 잊겠는가. 앞으로도 야구를 계속 보겠지만 서건창이 없는 히어로즈가 예전의 히어로즈와 같을 수는 없다. 한동안은 그의 빈자리가 계속 떠오를 거 같고, 그러다 가끔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그를 추억하지 않을까. 차차 이 아픔도 무뎌지고 가라앉길 바랄 뿐이다.

 

 서건창 정도의 커리어를 가진 선수에게 모자란 건 우승반지 외에 없다. 이제 이 팀과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LG에서라도 꼭 우승할 기회가 있길 바란다. 30년 가까이 우승이 없었던 팀에서 우승의 주역이 된다는 드라마가 흔하지는 않다. 잠실에서도 사랑받는 2루수가 되길 기원하는 마음이다.

 

덧붙임: <트레이드 당일, 서건창이 고양으로 간 이유>(링크)

 

2012시즌 신인왕 수상
프로야구 최초 200안타를 달성하고 심재학 코치와 포옹하는 장면 (2014.10.17)
서건창 하면 항상 생각나는 만화가 최훈의 그림

 

--서건창 이야기는 여기까지니, 다음에 이어질 트레이드 관련 글을 읽고 싶지 않은 분은 그만 보셔도 됩니다.

 

 

(2) 정찬헌

 우선 괜찮은 선발투수를 데려올 수 있게 해준 한현희와 안우진 두 투수에게 큰 감사를 표하고 싶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곳으로 끌고 가고 싶은 마음뿐인데,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범죄를 저지르기에는 사회적 체면과 앞으로의 미래가 걸려있어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하겠다.

 

 LG에서 트레이드 대가로 영입한 정찬헌은 누가 봐도 서건창이 FA로 이적했을 때 받아올 26번째 선수보다는 더 좋은 선수임이 분명하다. LG에서 암흑기와 좋은 시절을 모두 겪었고, 선발-중간계투-마무리 경험도 모두 있다. 물론 허리 수술 때문에 5일 간격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돌 수 없다는 건 결격사유긴 하지만, 애초에 풀타임이 가능한 선수라면 LG에서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현희와 안우진이 징계로 빠지고 브리검이 가족 문제로 미국에 돌아가 선발 세 자리에 구멍이 났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이 공백이 하나라도 채워지리란 보장이 없다. 일단 실적이 있는 이승호가 한 자리를 메꾸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두 자리가 남는다. 김정인-김동혁-김선기 같은 선수들이 이를 안정감있게 메우길 바라는 건 어려운 일이다.

 

 정찬헌은 작년 19경기 110.1이닝에서 ERA 3.51을 기록해 어느 정도 검증된 선발투수다. 올해도 약간의 부침이 있었으나 12경기 58이닝 ERA 4.03은 그렇게 나쁜 기록이 아니다. 투심(28.4%)-스플리터(24.8%)-커브(23.8%) 세 구종을 모두 능숙하게 구사하고, 제구가 뛰어나진 않지만 이닝당 내주는 볼넷도 많지 않다. (작년 110.1이닝에서 31볼넷, 올해 58이닝에서 12볼넷) 약간의 관리만 해준다면 최원태와 비슷한 수준의 선발투수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주1회 등판을 하다가 주2회 등판 순서가 걸리면 잠깐 로테이션에서 빼주면 된다- 어디서 많이 본 활용법이 아닌가? 2019시즌 안우진과 이승호가 이런 식으로 등판하지 않았던가. 이 팀에서 경험해본 적 없는 기용방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어린 투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낫지 않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으나, 올해 김정인의 성장이 더디고 조영건과 장재영은 1군에서 도무지 쓸 수 없는 상태인데 내년에도 이런 상황이 호전되리란 법이 없다. 정찬헌 정도의 투수라면 앞에서 썼듯이 2019시즌 이승호-안우진 기용의 전례를 따라도, 작년 LG가 이민호를 붙였듯이 어린 투수와 파트너를 만들어 1+1식으로 1군에서 던지게 해도 모두 도움이 된다. 아무리 눈 씻고 봐도 1군에서 100이닝 이상을 ERA 4.00 내외로 막을 수 있는 투수를 지금의 히어로즈 팜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정찬헌은 올해나 내년 중에 한 해라도 등록일수 145일을 채우면 2022시즌이 끝나고 FA가 되고, 둘 다 아니라면 2023시즌이 끝나고 FA가 된다. 그러나 컨트롤기간이 짧은 게 크게 흠은 아니다. 어차피 한현희와 박동원이 FA가 되는 내년, 이정후가 해외진출 자격을 얻는 내후년 안에 우승 못하면 그 다음에는 아무런 영광도 없이 하위권 직행이다. 정찬헌을 1년 쓰나 10년 쓰나는 다가오는 미래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

 

 경기 외적으로 보면 LG에서 투수조장을 하면서 후배들의 멘토 역할로 도움을 많이 주었으니, 키움에서도 이 방면으로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동안 팀에서 중심을 잡아줄 중고참급 선수가 꾸준히 유출되었고, 이것 때문에 김상수 트레이드를 많이 비판했는데 커리어가 괜찮은 90년생 투수가 온다는 점은 향후 신인급의 육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리라 본다.

 

 

(3) 리그 중단

 KBO 실행위원회에서 급작스럽게 후반기 연장전 없음과 3전 2선승제 준플/플옵이라는 내용을 발표했다. 최대 9연전 편성 가능 빼고 도무지 맘에 드는 게 없는데, 참 짜증스럽다. 연장전 폐지 같은 중대사안을 시즌 도중에 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나?

 

 두 놈의 원정숙소 무단이탈 사실이 밝혀진 게 16일, 한현희가 대표팀에서 사퇴한 게 17일, 안우진과 함께 징계를 받은 게 23일인데 키움 히어로즈 구단은 16일 황당하기 짝이 없는 입장문(링크)을 올려놓고는 아직까지 일언반구도 없다. 세상에 팬들이 보는 입장문/사과문을 이런 식으로 평어체로 쓰는 곳이 어딨냐? 한화가 자체징계를 내린 게 26일인데 대체 그 다음 사흘 동안 무얼 하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또 누군가 사고를 쳐서 은폐하기 바빠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인지? 도덕성이 없으면 기민하게라도 좀 움직여야 할 거 아닌가.

Posted by 김에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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