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0일 선수들의 방역수칙 위반 술자리와 올림픽 노메달 사태로 시끄러웠던 야구계에 또 하나의 폭탄이 터졌다. 이른바 '두산 선수 A의 금지약물 복용 적발' 사건이다. 이를 최초로 전한 기자는 <야구부장의 크보 핵인싸>를 운영하는 스포츠조선의 박재호 기자였다. (링크) 이후 여러 언론에서 이를 받아쓰면서 보다 상세한 사건의 전말이 알려졌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게시판과 SNS에서 사람들이 생각보다 헤드라인만 보고 기사 전체 내용을 확인하지 않는 편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굳이 시간내어서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여러분이 이 글을 읽는 시간 동안 이번 사건의 기승전결을 이해하고 쓸데없는 억까질을 자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게다가 기존에 찾아볼 수 없었던 사례가 새로 튀어나왔으니 아카이빙해두자는 차원도 있다.

 

 대강의 타임라인을 정리해보자. 2021년 4월 두산 선수 A는 도핑테스트를 받았고, 6월 이 결과에서 특정한 물질이 검출되었음을 KADA(한국도핑방지위원회)에서 두산 구단과 해당 선수에게 통보했다. 7월 열린 제재위원회에서 A는 소명을 했으며, 8월 10일 이 사실이 박재호 기자의 <야구부장의 크보 핵인싸> 채널을 통해 보도되었다. 8월 17일 KADA에서는 두산 선수 A에 대해 '규정 위반 사실이 없음'을 통보하였다. 그러면 사실관계를 차근차근 짚어보자.

 

 

1. 두산 선수 A에게서 검출된 물질은 무엇인가?

-KADA(한국도핑방지위원회)에서 실시한 A의 도핑테스트결과 검출된 물질은 4-CPA(4-클로로페녹시아세트산)이다. 그렇다면 왜 문제인가? 4-CPA는 2006년부터 금지약물 성분으로 지정되어있는 각성제 매클로페녹세이트(Meclofenoxate)가 신체에 흡수될 경우 분해되어 생기는 물질이다. 엠스플뉴스에서는 <두산 도핑 적발 논란.. '4-CPA'는 무엇이고 왜 임시출전정지는 없었을까> (링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메클로페녹세이트 자체는 2006년부터 WADA의 금지약물 성분으로 지정돼 있었다. 최근 연구로 메클로페녹세이트가 음식이나 특정 매개체를 통해 신체에 흡수될 경우 4-CPA로 변환돼 소변으로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지자 WADA는 2021년 1월부터 4-CPA 성분까지 금지약물 목록으로 지정했다. KADA도 4-CPA를 경기 기간 외엔 사용할 수 있지만, 경기 기간 내엔 사용을 금지하는 목록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WADA에서 2021년 1월 4-CPA에 관해 언급한 내용은 '소변 검사에서 4-CPA 농도가 1000ng/ml를 초과하는 경우 매클로페녹세이트를 사용한 것으로 판단한다'이지, 4-CPA를 금지약물로 지정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즉, 4-CPA는 금지약물이 아니다. 4-CPA는 식물생장촉진제로 사용되는 성분이라 선수의 경기력 향상이나 마약 등의 효과와는 무관하다. WADA의 1000ng/ml 기준선은 4-CPA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서 일하는 (제초제를 사용한) 노동자들을 검사해본 결과 체내 농도가 15~800ng/ml이니, 스포츠선수에게서 그 이상의 4-CPA 농도가 나온다면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판단하고 매클로페녹세이트 사용으로 간주하겠다는 말이다.

 

 전례가 없던 일이다보니 언론들의 보도도 뒤죽박죽이다. 엠스플뉴스에서는 8월 10일 최초 보도에서 '매클로페녹세이트가 올해 1월 1일부터 금지약물 목록에 지정되었다'고 보도하였고, 스포츠경향은 기사에서 '검출된 물질은 클로로페네신'이라고 하는 등 잘못된 정보가 뒤섞여있어 사실관계를 알아내는 데 매우 혼란스럽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해서 읽어본다면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2. 그러면 왜 무혐의인가?

-그렇다면 두산 선수 A는 매클로페녹세이트를 사용해서 4-CPA가 검출된 걸까?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사례가 있었다.

 

 불과 올해 5월에 있었던 사건이다. 다음 두 기사를 보자. <UFC fighter Rob Font cleared by USADA after adverse finding in drug test> (링크) <Cosmetic products cause UFC fighter to test positive> (링크) 해당 기사들에 따르면 UFC 선수 롭 폰트(Rob Font)는 도핑테스트에서 4-CPA가 일정 농도 이상 검출되었다. 폰트는 도핑테스트 결과에 대해 항소했고, 그 과정에서 화장품의 방부제로 자주 사용되는 클로로페네신 혹은 클로페네신(Chlorphenesin)이 포함된 스킨케어 제품이 체내에 흡수될 경우 클로로페네신이 4-CPA로 바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클로로페네신은 금지약물이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매클로페녹세이트뿐이다.

 

 KADA에서 자세한 사정을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두산 선수 A의 소명이 받아들여진 것은 위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4-CPA가 도핑테스트에서 검출될 수 있음을 입증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올바른 추측이다. A의 소명이 7월에 있었으니 8월 17일 무혐의 결과를 내기까지 약 2주에서 1달 이상의 시간이 걸렸는데, 이를 증명하는 추가 테스트를 하거나 샘플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소요된 시간일 것이다.

 

*추가: <선수 A는 어떻게, 도핑규정 위반 혐의를 벗었나> (링크)라는 스포츠동아의 보도에서 A의 에이전시 대표 B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B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기사에 나오는 X, Y, Z가 각각 매클로페녹세이트, 4-CPA, 클로로페네신이다.)

 

《…(전략) 이 성분은 최근 미국 종합격투기(UFC) 선수 롭 폰트의 사례로 논란이 된 바도 있다. 폰트는 도핑검사에서 1900ng/ml이 넘는 Y가 검출돼 미국반도핑위원회(USADA)의 조사를 받았지만, 소명을 통해 무혐의를 이끌어냈다. B는 “KADA의 청문회에서 A는 매일 사용하는 바디로션과 샤워 제품 등에 Z성분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구입 경로 및 증빙과 함께 확인해 상세히 소명했다. 물론 Z성분도 금지되는 물질이 전혀 아니다”고 설명했다.

 

B에 따르면, KADA도 A의 소명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고 법의독물학 전문가의 검토, 외국 실험사례 등을 통해 화장품 내 Z성분으로 인해 기준치 이상의 Y가 검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즉 A의 체내에서 Y가 발견된 것은 X를 복용한 결과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한마디로 A는 도핑 규정을 전혀 위반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3. 왜 임시출전정지를 하지 않았는가?

-KADA의 <2021 프로스포츠 도핑방지규정>을 보면, 임시출전정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링크)

 

제37조(임시출전정지)

① 도핑방지위원회는 선수의 시료에서 특정약물 또는 특정방법을 제외한 금지약물이나 금지방법에 관한 비정상분석결과 또는 비정상수첩결과가 접수되는 경우, 제35조에 따른 혐의 통지 시 해당 선수에게 의무적으로 임시출전정지를 부과하여야 한다.
② 특정약물, 특정방법에 따른 비정상분석결과 또는 제9조 제1호 이외의 위반혐의에 대해서는 도핑방지위원회에서 선택적으로 임시출전정지를 부과할 수 있다. 선택적 임시출전정지는 제재위원회의 결정 이전에는 언제든지 취소될 수 있다.
③ 임시출전정지는 도핑방지위원회가 선수 또는 선수지원요원에게 이를 통지한 날 또는 통지한 것으로 간주되는 날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④ 도핑방지위원회가 임시출전정지를 부과하지 않는 경우, 선수 또는 선수지원요원은 자발적으로 임시출전정지를 수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선수 또는 선수지원요원은 언제든지 임시출전정지 수용 의사를 철회할 수 있으나, 철회 시에는 이미 이행한 임시출전정지도 인정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특정약물'이란 무엇인가? 그냥 보기에 이해가 잘 가지 않는 표현이다. 그래서 찾아보았다. 세계도핑방지기구(WADA)의 금지목록 국제표준(링크) 3쪽에서는 다음과 같이 특정약물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특정약물(Specified Substances)은 선수들이 경기력 향상 목적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약물 및 방법을 의미한다. 가령 선수들이 경기력 향상을 위해 자주 써먹었던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금지목록에서 S1 - 동화작용제로 분류하고 있다)는 비특정약물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4-CPA는 금지약물이 아니며, 일정 농도 이상의 4-CPA 검출로 복용 여부를 의심할 수 있는 매클로페녹시테이트는 특정약물이다. (S6 - 흥분제 / B로 분류하고 있다) 따라서 4-CPA가 검출된 A는 임시출전정지를 받을 이유가 없으며, 만약 매클로페녹시테이트가 '직접' 검출되었어도 제37조 2항에 따라 KADA에서 꼭 의무적으로 임시출전정지를 부과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이전에 도핑테스트에서 적발되었던 다른 선수들의 사례는 어떠한가? KADA가 관장하기 시작한 2016시즌 이후의 사례만 놓고 보자. 2016년 적발된 롯데 아두치는 특정약물인 옥시코돈(금지목록에서 S7 - 마약으로 분류하고 있다)을 복용했기 때문에 KADA에서 임시출전정지를 부과하지 않았으나, 제37조 4항에 따라 구단에서 자발적으로 임시출전정지 조치를 했다. 삼성 최경철은 2017년 5월 2일 72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는데, 4월 7일부터 이미 임시출전정지 상태였다. 그가 복용한 약물은 비특정약물인 스타노조롤로, 경기력 향상과 직결되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다. 따라서 이는 삼성 구단의 조치와 상관없이 KADA에서 의무적으로 부과한 임시출전정지인 것이다.

 

 

4. 왜 실명공개가 되지 않는가?

-무혐의니까... <2021 프로스포츠 도핑방지규정> 제72조 5항을 보자.

 

⑤ 제재위원회 또는 항소기구의 결정에 따라 위반이 없었음이 확정된 경우에는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일반에 공개할 수 없다.

 

 해당 선수가 동의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전혀 없다. 지금까지 약물복용으로 적발되었던 선수들의 이름을 되짚어보자. 2017년 10월 임석진은 KADA에서 최종결정이 나온 후 이름이 공개됐다. 2017년 4월 최경철의 케이스는 삼성 구단이 최종 판결 전까지 이름을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었으나 엠스플뉴스에서 이를 기사화하며 밝혀졌다. 2016년 7월 아두치는 롯데 구단이 하루 전 먼저 도핑테스트에 금지약물이 검출된 사실을 공개했다. 세 선수의 사례를 각각 살펴보면 본인의 잘못이 없지만 금지약물이 체내에서 나왔거나(임석진) 경기력 향상 목적으로 약물을 먹은 게 너무 확실하거나(최경철) TUE를 받아놓았다면 징계를 피했겠지만 어쨌든 안 그랬으니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는(아두치) 상황인데, 두산 선수 A의 경우에는 어느 쪽에도 해당사항이 없으니 이름을 밝히라고 요구할 이유도 없다.

 

 

5. 금지약물 소지만 해도 72경기 출장정지를 받은 사례가 있는데 억울하다?

-이번 사건에 '금지약물 양성이 나온 건 무혐의고 소지만 해도 72경기 출장정지냐' 같은 비아냥을 엄청 많이 봤는데, 1~2번만 봐도 '금지약물 양성이 나왔다'는 주장부터가 우선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송승준은 지난 6월 적발 당시 언론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링크)

 

《송승준이 금지 약물과 관련된 건 지난 3월 처음 알려졌습니다. 한 매체에서 현역 선수가 이로운에게 금지 약물을 구매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송승준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송승준은 입장문을 내고 '2017년 3월 이로운이 약을 가져와 영양제라며 권유하고 건넸는데, 당시 개인 트레이너에게 문의해보니 금지 약물이라는 걸 알게 됐다. 다음날 곧바로 금지 약물을 돌려줬고, 이여상을 크게 질책했다'고 밝혔습니다.

송승준은 입장문 내용을 재차 강조하며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식약처가 저를 조사했지만, 구매나 유통에 대한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KADA에서 실시한 도핑테스트에서도 모두 음성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KADA도 구매, 복용에 대해선 언급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단지 약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돌려줬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구매 의혹'이 든다며 최고 수준의 72경기 징계를 내린 건 억울했습니다. 제 주장은 믿지를 않고, 이로운의 진술에만 의존해 징계를 내린 건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송승준이 교묘하게 언플을 하고 있지만, 그의 말은 모조리 반박이 가능하다. 첫째, <2021 프로스포츠 도핑방지규정>에서는 도핑방지규정위반의 사례로 제9조 제6호에서 '선수 또는 선수지원요원이 금지약물 또는 금지방법을 정당한 사유 없이 보유하는 경우'를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많은 약쟁이들이 '지인이 나에게 준 거다' '영양제나 다이어트 보조제인 줄 알고 먹었다'라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일삼아왔으며, 또 도핑테스트를 피하기 위해 엄청나게 머리를 굴려댔던 예들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에 금지약물 소지를 복용과 동일하게 보고 징계를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제49조(금지약물 사용 및 보유에 대한 기본 제재)에 따른 송승준의 징계는 본인이 금지약물 소지를 인정한 이상 당연한 것이다.

 

 둘째, '최고 수준의 72경기 징계'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도핑방지규정 제49조를 보면 정규시즌 50% 출장정지는 그냥 금지약물을 복용하거나 소지한 선수에 대한 기본적인 제재다. 오히려 식약처 조사 결과 구매나 유통에 대한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정도로 징계가 끝난 것이다. 만약 송승준이 부정거래를 시도했다면(제9조 제7호 위반) 최대 영구제명까지 당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프로스포츠 도핑방지규정에서 규정하는 정규시즌 50% 출전정지는 사실 굉장히 관대한 수준의 징계다. 다른 종목 같은 경우 도핑테스트에서 복용이나 소지가 적발되면 2년에서 4년의 징계가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송승준에게 약을 줬다는 상대가 이여상이라 그 발언의 신뢰도가 무척 떨어지고, 이제 1군에서 기용되는 빈도도 줄어 은퇴할 일만 남은 커리어 막판의 투수가 금지약물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하지만 송승준이 했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다음날에 약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여상을 구단과 협회에 신고해야 했다.

 

 

6. 결론

-두산 선수 A가 약물 칵테일의 왕을 뒷배로 두고 있어서 알고 보니 유죄였다... 이런 망상도 가능하겠지만 이 정도까지 넘어가면 그냥 원한질의 무의식적 발사에 불과하지 않을까? 다른 구단에서 도핑 사건 터지면 즐겁고 재밌나? 야구판이 흔들흔들하는데 싫어하는 구단 씹고 뜯을 거리 생기면 즐겁기야 하겠지만, 안수정등(岸樹井藤)의 우를 범해서야 되겠나.

 

 모든 커뮤니티에서 동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우기면 그게 진실같고 맘은 편하겠지만, 세상은 뇌 속의 망상과 다르다. 빨리 깨어나서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두산 베어스는 지금까지 리그에 한 짓만으로도 이미 욕먹을 거리가 많은데, 거기에 굳이 방역당국과 KADA마저 조종하는 일루미나티나 프리메이슨의 이미지를 덧씌울 필요가 없다. 안 그래도 음모론이 넘쳐나는 세상인데 야구에서까지 쓸데없는 소리를 봐야 하나.

Posted by 김에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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