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cucumber__52 (인스타그램)

(1) 2013년

2013년 준플레이오프의 상대는 두산이었다. 시리즈 전적 2승 2패로 맞이한 5차전까지 넥센의 경기력은 줄곧 형편없었다. 파트너인 두산이 잘하냐 못하냐에 따라서 승패가 갈렸을 뿐이지 사실상 4경기 내내 화가 나도록 경기를 못했다. 아무튼 그렇게 다가온 5차전...

 

응원팀이 처음으로 진출한 포스트시즌이었지만 표를 못 구해서 집에서만 보고 있다가 5차전 당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목동야구장으로 나섰다. 워낙 관중이 없어 1차전부터 암표상들이 표 판매에 실패해 티켓을 떨이에 팔았다는 웃지 못할 뉴스를 보고 5차전도 비슷한 상황이 아니려나 기대하면서 갔는데, 시리즈 최종전이라 그런지 암표상들은 순순히 나의 딜에 넘어가지 않았다.

 

경기 중간부터 들어가기는 살짝 애매한 가격이라 별 수 없이 목동구장 바깥에 서서 관중 함성으로 경기를 미리 짐작하고, DMB를 보며 결과를 확인하고 있었다. 나랑 비슷한 신세였던 사람들이 수 명 정도 더 있었는데 그들도 삼삼오오 모여 한 명이 DMB를 켜면 여러 명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경기를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유희관에게 7이닝 무실점으로 끌려가던 경기는 8회 잠깐의 찬스를 잡았으나 삼진과 병살로 무산되고, 9회 또다시 찾아온 기회도 연속 삼진으로 무산되는가 싶었는데...

 

결과는 뭐... 유명하니까 다들 알겠지?

갑자기 경기장 안에서 함성 소리가 울려퍼졌고,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 순간 서로 쳐다보면서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공격 이닝이니 분명 좋은 일이긴 하겠다 예감했고, 잠시 후 화면으로 결과를 확인하고 함께 소리지르면서 환호하고 뛰어다녔다. 나보다 어린 초등학생 팬부터 젊은 여성, 나이 지긋한 아저씨까지...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시큐리티 쪽에서 밖에서 보던 사람들을 슬쩍 들여보내줘서 남은 경기는 안에서 볼 수 있었다. (시큐리티인지 구단 관계자인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어느 윗분께서 열어주셔서 들어갔다. 공개적인 곳에서는 처음 얘기하는 듯...) 손승락의 4이닝 64구 투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터지지 않던 결승점.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다음 해엔 더 잘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있었고.

 

박병호는 내게 그런 선수였다. 같은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감각이 뭔지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 그러한 선수였다.

 

(2) 2021년

박병호와 관련된 몇몇 기억들은 지금도 또렷하다. 2018년 플레이오프 5차전 동점 홈런 때 나는 거실에 앉아서 초조하게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심정으로 마지막 이닝을 지켜보고 있었다. 박병호가 홈런을 치는 순간 야구 보면서 제일 많이 울어봤는데 (그냥 그때를 처음으로 쳐도 좋겠다) 그때 내가 어떻게 울었는지, 어떻게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경기를 보러 들어갔는지 아직도 잘 기억할 수 있다. 아마 이런 박병호에 대한 추억이 히어로즈 팬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있을 것이다.

 

박병호가 히어로즈에서 친 홈런이 300개가 넘으며 매 시즌 어떤 성적을 올렸는지 구체적으로 읊을 수도 있겠고, 또 유려한 문장으로 박병호로부터 시작된 히어로즈 전성기의 역사를 말할 수도 있겠으며, 혹은 최근의 하락세를 가지고 이번 무브를 합리화하는 소수의 쿨병 환자들에게 일침을 가할 수도 있겠으나... 그 무엇도 딱히 내키는 것이 없다.

 

그리하여 짧게나마 적어놓는다. 어떨 때는 원망도 했고, 어떨 때는 실망도 했으나, 당신은 우리의 기쁨이자 가장 큰 자부심이었노라고. 대체로 늘 그랬노라고. 그리고 그 모든 원망마저도 당신을 향한 애정이었다고.

Posted by 김에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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