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률과 순위 대비 이렇게 야구에 관심이 안 가는 시즌은 처음인데, 와카딱 전력으로는 올라가봐야 부질없는 경기력만 보여주다가 가을단역으로 탈락한다는 교훈을 지난 2년간 너무 잘 얻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나야 2013, 2015, 2016년까지 보고 나서는 '다시는 포스트시즌 시리즈는 준플레이오프 이하로는 안 간다'는 다짐을 하고 철저히 실천 중인 사람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3년 연속 맛보는 와일드카드 시리즈의 불쾌하고 음습한 공기마저 감미롭게 여겨질 수 있다. 또 그런 팬들을 위해 '어떻게든 5위만 하자'는 전략으로 아득바득 버팅기고 있는 이 팀을 보면 진짜 이장석의 멱살을 잡고 질질 끌고 가서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 던져버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각설하고... 이 팀 후반기 승률은 .370(10승 17패)로 간신히 4할 승률에 턱걸이하고 있는 두산-한화-삼성(10승 15패)에도 뒤진 꼴찌다. 반면 후반기 승률 1위는 키움과 직접적으로 순위싸움을 하고 있는 KT다. (.679, 19승 9패) 전반기에 글 쓰면서 8~10경기 차이 시즌 끝까지 뒤집기 쉽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그건 착각이었음을 후반기가 시작하자마자 알게 되었다. 하도 못 이기다 보니 이번 3연승이 후반기 들어서 첫 3연승이다.
야구를 못 해서 포스트 올릴 맛도 안 났는데 (이래서 내가 뉴스레터 같은 걸 발행 안하는 거다) 다행히 며칠 쉬면서 그리고 야구와 먼 삶을 살면서 키보드 두드릴 기운을 조금 회복했다. 왜 못했는가? 무엇이 약점인가? 뭐가 달라서 이겼는가? 뭘 해야 와카딱의 운명을 피할 건가? 차례차례 정리해보자.
1. 후반기의 주요 포인트들
(1) 부상 - 문성현이 팔꿈치 부상(4주)으로 이탈했고, 최원태가 골반 통증, 그리고 이승호가 옆구리 통증으로 말소되었다. 이승호의 경우 '병원 진료 결과 큰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하지만 30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으니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정찬헌은 8월 3경기에서 8.1이닝 13실점(12자책)으로 부진했고, 한현희 역시 1군 복귀 첫 경기였던 20일 SSG전에서 연속타자홈런을 허용하며 다시 2군으로 돌아갔다. 순식간에 필승조 둘과 선발 셋이 비었다. 상위픽 선수들이 이런 말을 듣는 게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김선기와 윤정현이 동시에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현재 키움이 얼마나 위기에 처해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2) 보강 없음 - 피장타의 왕 김성진, 갈수록 제구 불안이 심화되고 있는 김태훈, 작년부터 서서히 한계가 드러난 양현, 복귀 첫 시즌인 이영준, 그 동안 1군에서 거의 보이지 않았던 하영민-문성현, 선발진에서 탈락하고 불펜으로 쫓겨난 이승호 등등 키움의 불펜진이 움직이는 시한폭탄이라는 점은 시즌 전에도 확실했다. 하지만 전반기에 불펜투수들이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팀에서는 '시즌 중 보강 없이 간다'는 선택을 해버렸고, 그 선택은 이렇게 후반기에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이 팀의 특성상 당연히 미드시즌 전력 추가가 없으리란 것을 예측하기는 쉬웠지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올해처럼 리그 최악의 타선과 물음표가 많은 불펜진을 두고도 1군 대타, 추격조 투수 수준의 트레이드도 없이 시즌 끝까지 보내겠다는 생각은 만용과 오만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박동원 트레이드로 공수 양면에서 마이너스가 생겼는데도 이를 메꿀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으니 어떤 반전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3) 이해할 수 없는 투수운용 - 전반기에 신인 투수들 몇 명의 멘탈을 깨먹는 대신 이닝책임제를 쏠쏠하게 써먹었다는 점에서 홍원기 감독의 투수운용은 분명 나쁘기만 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의 투수운용은 작년 와카 2차전을 생각나게 하는 한심한 수준으로까지 떨어졌으며, 후반기 들어 베테랑 불펜투수 한 명이 1이닝을 막기조차 버거운 상황이 여러 번 나왔는데도 방치하는 게 일상이다. 가령 8월 17일 KT전 7회 1-0 상황에서 올린 김선기를 8회 경기를 다 내줄 때까지 끌고 간 거나, 25일 NC전에서 양현이 5회부터 아웃카운트 5개를 연속으로 잡고 볼넷-안타-(폭투)-볼넷-만루홈런을 맞을 때까지 두고 봤던 것은 지금처럼 어느 때보다도 기민한 운영이 요구되는 환경에서 나와서는 안될 결정이었다.
(4) 수비 붕괴 - 키움의 후반기 DER은 .643으로, 꼴찌 롯데(.635)를 제외하면 리그 9위로 압도적으로 낮다. 당장 플옵 경쟁을 하고 있는 (경쟁이라고 하기도 멋적다만) LG와 KT의 DER은 각각 .702와 .691로 리그에서 가장 탄탄한 수비를 보여주고 있으며, 나머지 6팀도 .660 아래의 DER을 기록하고 있는 팀은 단 하나도 없다.
단순히 실책 개수로만 봐도 후반기 키움의 실책은 26개로 SSG-NC와 함께 제일 많으며, 특히 키스톤을 이루고 있는 김휘집-김혜성 듀오에게서 실책이 쏟아져나오고 있다는 점이 아주 심각하다. 그렇다고 다른 선수들이라고 딱히 더 나은 수비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8월 2일 SSG전 9회 이재원 타석에서 김주형의 수비 실책은 글러브만 살짝 아래로 내렸어도 벌어지지 않았을 아주 기본을 망각한 플레이였으며, 김준완은 18일 두산전 7회 김대한 타석에서 좌중간 플라이를 잡았다 놓쳐 최원태의 멘탈을 박살내며 대패를 이끈 데 이어 24일 KIA전을 개판으로 만드는 데도 일조했다.
(5) 여전히 타격하지 않는 야구 - 후반기 키움의 타격 성적은 .263 .716으로 OPS만 보면 공동 6위니 준수해보이지만, 푸이그(123타석 .347 1.101)와 이정후(130타석 .336 .931) 그리고 김혜성(124타석 .333 .798) 3명에 의존하고 있는 극단적인 편중 현상이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현재 위 3명을 빼고 가장 자주 나온 키움 타자들 6명의 성적을 보면 다음과 같다.
송성문 123타석 .236 .317 .327
김휘집 109타석 .202 .306 .362
김준완 098타석 .190 .292 .262
이용규 091타석 .167 .341 .181
이지영 091타석 .289 .297 .378
김태진 080타석 .278 .350 .306
나의 주장은 줄곧 1번 김혜성 - 2번 이정후 - 3번 푸이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만약 그러지 않을 거라면 그나마 나은 라인업은 1번에 그 동안 리드오프로 검증이 된 베테랑 이용규 혹은 후반기 타격감을 어느 정도 끌어올린 김태진을 두는 것이다. 김태진 같은 타입을 선호하지 않긴 하지만 이 허접한 라인업에서 그나마 후반기에 준수한 출루율을 보여주고 있는 건 김태진뿐이다.
그러나 몇 번의 9번 외도를 제외하면 후반기 최악의 타자 중 하나인 김준완이 꼬박꼬박 1번으로 나오고 있고, 때로는 이용규까지 2번으로 붙어서 등장하고 있으니 이게 정상적인 라인업인지 모르겠다. 주전 9명 중 후반기에 제일 못 치는 타자 2명을 1,2번에 두고도 점수가 나길 바랄 수 있을까? 어제나 그제처럼 어쩌다 한두 번은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끌고 갈 테이블세터는 아니다. 최근 열흘 정도로 한정한다면 김준완의 타격이 준수했다고 반박하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같은 기간 김태진-송성문-김혜성 3명 모두 김준완보다 더 타격이 좋다. (8월 18일부터 송성문 .895 김태진 .868 김혜성 .770 김준완 .740) 김준완의 타격 능력은 박준태보다도 떨어지며, 따라서 박준태가 2020시즌 보여줬던 아름다운 한 달도 김준완은 구현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2. 8/25~8/26 NC전
(1) 25일 경기에서는 만루홈런 포함 8실점을 했지만 이겼는데, 히어로즈 역사상 이 조건으로 이겼던 경기는 당일 경기를 제외하고 2번 있었다. 첫 번째는 2009년 7월 7일 대전 한화전(12-10)이요, 두 번째는 2019년 5월 2일 문학 SK전(10-8)이다. 2010년 이후 만루홈런+8실점을 하고도 이긴 경기는 총 24경기였는데 (역시 당일 경기 제외) 이 중 히어로즈는 2017년 6월 22일 대전 한화전과 2020년 7월 17일 문학 SK전의 상대팀이었다. (두 경기는 김혜성과 김하성이 각각 만루홈런을 쳤고, 졌다.)
(2) 앞서 말한 황당한 양현 밀고 가기에도 불구하고 8회 5점을 묶어서 내며 역전에 성공했는데, 이는 타선의 집중력도 돋보였지만 상대 강인권 대행의 안이한 운영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이용찬이 몸을 풀고 있었는데도 8회 2사 푸이그 타석에 김시훈을 내보냈고, 이후 9회에도 밀어내기로 추가점이 나올 때까지 김시훈을 방치한 걸 보면 결국 25일 경기는 양팀 돌이 감독 자리에 앉아 머리의 단단함을 대결한 경기라고 평할 수 있겠다.
(3) 26일 경기는 생소한 상대 선발 더모디를 상대로 4회 대량득점을 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후 박승주가 손아섭-박건우-양의지-마티니라는 상대 중심타선을 상대로 출루를 허용하지 않았다. 김성진 또한 6회 무사 만루 위기를 무실점으로 넘긴 데 이어 7회까지 틀어막으면서 사실상 이 두 투수가 승리의 디딤돌이 되었다.
(4) 이전과는 달리 타선의 적절한 득점과 탄탄한 불펜이라는 승리 공식이 오랜만에 나온 건 긍정적이지만, 이 1경기만으로 모든 게 달라질 거라 낙관할 수는 없다. 홍원기 감독은 멘붕했는지 '분위기 반전을 위해 할 수 없는 게 없다'라는 망언마저 하던데, 글쎄... 김준완-이용규를 테이블세터로 쓰면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송신영 코치도 불펜진 사고의 책임을 지고 2군에 내려갔는데, 애초에 불펜이 순항할 때도 송신영 덕분이란 생각 안했듯이 지금도 불펜이 무너진다고 송신영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차라리 송신영은 1군에 가만 놔두고 전반기 하던 대로 김재웅을 셋업맨으로 쓰되 더 자주, 더 많이 기용하는 편이 이기는 데는 도움될 거다.
3. 와카의 운명 피하기
김혜성이 '4위? 2위로 PO 간다' 라고 한 인터뷰가 떴는데 아무리 봐도 4위? 이 위로 PO 간다 로 보여서 몹시 서글펐다. (아무래도 3위가 보통 이기고 플옵 가니까...) 전력의 7-8할을 만들어야 할 프런트의 시간은 7월 31일부로 끝났다. 나머지 2-3할을 움직여서 와카의 운명을 탈출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선 너무 당연하게도... LG나 KT 중의 한 팀의 상승세가 꺾여야 한다. 이 팀이 아무리 잘해도 현재 전력차로는 두 팀을 뒤집기가 어렵다. 두 번째... 김준완-이용규 같은 생산성 최악의 테이블세터 두는 짓을 그만해야 한다. 1-2번에는 순서 상관없이 김혜성, 거기에 김태진 혹은 이용규가 붙어야 한다. 세 번째... 현재 불펜에이스인 김재웅의 4-5아웃 세이브 또한 불사해야 하며, 5회 이후에는 가급적 주자 둘 이상이 루상에 깔리는 순간 빠르게 투수를 교체해야 한다. 아웃카운트 하나만 더 잡겠다는 기우제식 운영은 역전패로 이어질 뿐이다.
물론 팀의 근본적인 전력이 여전한데 이렇게 한다고 이기겠냐는 냉소적인 물음도 있을 수 있고, 옳은 의견이다. 하지만 홍원기가 위에 말한 옵션들 중에 조금이라도 실천했다면 이렇게 감독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지는 않았을 거다. 팬들도 바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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