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총평
해냈다! 한국시리즈다!
2. 애플러
초반에 투스트라이크를 잡아놓고도 계속 실투를 던지며 연속 3안타로 먼저 실점했지만, 그 이후에는 2-3회를 6타자로 처리하며 6이닝 동안 단 1실점으로 틀어막는 효율적인 피칭을 선보였다. 볼넷 없이 피안타 7개, 탈삼진 2개, 투구수는 81구. 3일 휴식에도 불구하고 최소실점과 많은 이닝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으며 4차전 승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1회 3연속 안타도 장타는 없었고, 3회 김현수의 병살타 그리고 4회 2사 1,2루에서 유강남의 3루수 땅볼로 위기를 넘겼다.
3. 홍원기
의문의 성장형 운장. 2번 박준태, 선발 애플러, 7회 대타 이용규, 불펜 투입 시점이 모두 들어맞았다. 6회말 김휘집에게 번트를 시킨 것은 다소 의아한 선택이었지만, 그 동안 엉망이었던 불펜투수 등판시점 판단이 3차전부터는 제대로 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홍원기 감독의 운영능력에 대해서는 작년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그리고 올해 정규시즌까지 줄곧 의문을 갖고 있었으나, 막판이라도 이렇게 정상적인 수싸움을 하고 있으니 안심이 된다.
4. 초반 득점
켈리는 6안타 3사사구로 당초 예상대로 3일 쉬고 나온 여파가 있었으나, 1차전과는 달리 좌타자에게도 슬라이더를 적극적으로 구사하며 2실점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상대보다 더 많은 점수를 뽑는 능력. 1회 1사 1,3루에서 김혜성의 행운의 좌익선상 적시타로 동점을 뽑아낸 키움은 3회 투아웃 켈리의 4구 행잉슬라이더를 푸이그가 중앙담장을 넘기는 타구로 만들어내며 경기를 뒤집었다.
이후 경기는 잠시 소강 상태를 보였는데, 5회 홍창기 타석에서 2루수 김혜성의 약간 빠진 송구를 1루수 김태진이 멋지게 받아내며 아웃을 잡는 명장면도 있었다. 원래는 세이프 판정이 내려졌으나, 판독 과정에서 김태진의 발은 김혜성의 송구를 받고 떨어진 것으로 확인되어 판정이 아웃으로 뒤집혔다. 6회말 바뀐 투수 김진성을 상대로 이지영이 선두타자로 나서 좌익수 앞 안타를 치고 출루했으나, 김휘집의 포수 파울플라이(번트) 송성문의 유격수 플라이가 이어지며 추가득점에는 실패했다. (이날 송성문은 첫 두 타석에서 모두 초구를 치고 죽었는데, 켈리처럼 빨리 내려가야 하는 상황인 투수를 상대로 자신이 딱히 노리지도 않은 공에 휘둘러댄 건 정말 반성해야 한다.) 마지막 김준완 타석에는 이지영이 단독 도루를 시도하며 분위기를 바꾸려했으나 김준완이 삼진으로 물러났다.
5. 추가점
7회에는 최원태가 올라왔고, 최원태가 문성주-이상호-이형종을 삼자범퇴로 처리하며 키움의 공격 차례가 돌아왔다. 바뀐 투수 정우영을 상대로 박준태의 대타로 나선 이용규가 볼넷을, 이어서 이정후가 투수 땅볼 실책으로 출루를 얻어내며 무사 1,2루. 김혜성이 1루수 땅볼로 선행주자를 아웃시켰으나 뒤이어 나선 푸이그가 마침내 정우영에게서 유격수 옆으로 빠져나가는 적시타를 뽑아내며 3점째를, 다시 바뀐 투수 고우석을 상대로 김태진이 좌전 적시타를 쳐내며 4점째를 얻어내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8회초 최원태가 1사 1,3루 위기에 몰리자 내린 것은 아주 정확한 교체였다. 최원태는 통산 34타수 17안타(.500)로 채은성에게 무척 약했고, 채은성의 타격감이 어느 때보다도 올라와있었던 상황에서 둘을 맞부딪치게 하는 건 좋지 않았다. 다만 이때 김재웅이 아닌 김동혁 등판은 의외였는데, 김동혁이 바깥쪽 아래 코너에 직구를 꽂아넣어 채은성을 6-4-3 병살타로 잡아내며 감독이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입증해냈다. 9회 LG는 1사 이후 문보경이 좌중간 2루타를 치고 나갔으나 뒤이어 나온 문성주-김민성이 모두 삼진으로 물러나며 경기에서 패배했다.
6. 무엇이 달랐는가
유튜브 '야구부장' 채널에서 LG는 내심 키움이 올라오길 바랐다는 이야기도 봤는데, 팬인 내가 봐도 키움보다는 종합적인 전력의 짜임새에서 KT가 앞서보였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게다가 맞대결 전적도 10승 6패로 최종전 직전 8승 7패였던 KT보다 키움 상대로 더 좋은 기억이 많기도 하고.
그러나 다음 기사를 보자.
<PO는 준비에서 갈렸다. LG는 축제였고, 키움은 전쟁이었다. 포스트시즌은 축제가 맞다. 한 경기 패배가 엄청난 피로감을 안겨주므로 즐겨야 한다. 극한의 긴장감을 즐기려면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경기에 앞서 치르는 훈련 내용에 양 팀의 다른 준비 과정이 엿보였다. SSG가 놓치지 않아야 할 부분이다.
지난 24일 PO 1차전이 열린 잠실구장. LG의 훈련 분위기는 매우 경쾌했다. 타자들은 홈런더비 하듯 장타를 뿜어댔고, 야수들도 놀이하듯 펑고를 받았다. 자신감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지만, 상기된 인상도 엿보였다. 준PO 때부터 정규시즌과는 전혀 다른 컨셉으로 훈련한 키움과는 달랐다. 2차전을 앞두고는 잠실구장 분위기가 더 밝아졌다. 1차전을 승리로 장식한 덕(?)에 목소리를 높여 대화해야 할 정도로 음악 소리가 커졌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홈런더비가 펼쳐졌다. 포스트시즌의 중압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LG의 밝은 분위기는 PO 기간 내내 이어졌다. 3차전 역전패로 주도권을 빼앗겼을 때는 돌아오는 법을 잊은 것처럼 보였다.
반면 키움은 큰 스윙을 경계했다. 이용규 이정후 등은 큰 타구를 만들어냈지만, 타격훈련의 중점은 ‘감각과 타이밍’에 맞춰져 있었다. 준PO 때부터 스윙 폭을 좁히고 팀배팅 위주로 전환한 게 눈에 띄었는데, PO에서는 조금 더 세밀하게 다듬었다. 훈련 때 배팅볼과 피칭머신을 번갈아가며 대응했는데 “피칭머신은 상대 선발 투수의 결정구를 가정해 눈과 몸의 감각을 익히기 위한 용도”라는 설명이 따랐다. 전력 열세를 훈련으로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포스트시즌은 장타에 의한 다득점을 쉽게 볼 수 없다. 볼넷도 많지 않다. 가뭄에 콩나듯 생긴 기회를 살려 득점으로 연결해야만 한다. 준PO는 투수 체력으로 갈린 싸움이지만, PO는 디테일의 차이로 희비가 나뉘었다.>
출처: 준비에서 갈린 키움-LG 희비, 랜더스도 예외는 아니다[SS 포커스] (스포츠서울 장강훈) (링크)
'3구 안에 친다' 는 전략으로 준플레이오프를 준비한 김준완, 가을야구라는 무대에 입장하자 '용규놀이' 대신 초구를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한 이용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키움 타자들은 대체로 짧게짧게 자신이 칠 수 있는 공을 중앙으로 보내는 데 집중했고, 이지영-박준태-김태진 같은 다른 선수들도 동일한 접근법을 택해 소득을 얻었다. 반면 LG 타자들은 1차전 키움의 4실책에 힘입은 6득점을 제외하면 시리즈에서 지속적으로 적시타를 만들어내는 데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상위팀의 유리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홈에서 1승 1패의 결과를 거두자 여유를 잃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류지현 감독은 마지막 등판 이후 한 달 동안 실전피칭이 없었던 플럿코를 2차전에 빠르게 강판하는 데 실패했고, 급기야 경기 종료 후에는 빨리 플레이오프를 끝내고 한국시리즈로 올라가야 하는 입장에서 '5차전'을 언급하며 메시지 관리에도 소홀했다. 3차전이 끝난 후 '해줘야 할 선수들이 못해줬다' 4차전 종료 후 '큰 경기 부담감'을 이야기한 것도 감독으로서 적절한 인터뷰 스킬은 아니었다. 선수들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4차전 첫 번째 대타로 이상호를 내세운 게 맞았는지, 정우영을 좌타라인 상대로 계속 끌고 가는 게 맞았는지, 고우석의 투입이 너무 늦지 않았는지 말하는 것이 먼저 아니었을까.
가을야구를 잘 준비한 키움의 제1공신으로는 주장 이용규와 그의 리더십을 빼놓을 수 없겠다. 이용규는 정규시즌에는 작년과는 다르게 최악의 성적을 보였으나 (326타석 .199 .326 .221) 준플레이오프에서는 5경기 16타석에서 11타수 4안타, 플레이오프에서는 4경기 12타석 9타수 2안타에 더해 희생번트 5개를 성공하며 공격의 첨병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단순히 그라운드에서만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게 아니라, 선수들이 풀어지기 쉬운 상황에서 자극하는 역할도 하고, 후배들이 마음껏 뛸 수 있도록 격려하기도 하며 경기 외적으로도 주장의 소임을 100% 다하고 있다는 게 팬으로서 매우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7. 한국시리즈
2014-2019에 이어 세 번째 도전이다. 리그 최고의 선발과 셋업-마무리, 그리고 200안타 2루수-40홈런 유격수-MVP 1루수를 필두로 한 화려한 타선의 2014 넥센도 실패했고, 불펜 전원 필승조와 균형 잡힌 최고 타선의 2019 키움도 실패한 도전이다. 그때보다도 더 어려우면 어려웠지 쉬울 리 없는 미션이지만, 지금까지 해온 대로만 한다면 결과는 뒤로 밀어두고 만족할 수 있다. (4-0은 제발 당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상대 선발인 김광현-폰트-모리만도는 리그 최강의 원투쓰리고, 주전 포수와 감독의 불펜운영능력에 약점이 있다 하나 경험이 풍부하고 공격력과 수비력이 모두 뛰어난 선수들이 포진한 야수진도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상대다. 이들의 대관식이 절대 쉽지 않으리란 걸 체감하게 해주자. 영웅의 시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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