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키움 히어로즈

1. 총평

2승 2패, 여전히 나쁘지 않다!

 

물론 하위팀인 우리 입장에서는 가급적 빨리 SSG를 잡아내는 게 좋겠지만, 상위팀이고 상대전적에서도 뒤지는 팀을 그렇게 쉽게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 적은 없다. 2승 2패를 맞춰놨으니 이제 남은 3경기 중 2경기를 잡아내면 대업을 이룩한다. '지더라도 만족한다...' 이따위 소리는 이제 하지 않는다. 이런 개소리를 하면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하인 경기력을 보이면서 지는 게 이 팀의 특성인데, 작년 와카 1차전 끝나고 그런 얘길 써놨더라. 연봉 차이고 원정구장이고 전력이고 이제 그런 말 하나도 안 통한다. 우승하면 팬인 나보다 선수인 당신들이 더 좋다. 응원팀 우승과 삶은 무관하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옳았다...

 

 

2. 3차전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한 불펜 투수들의 구위와 수비집중력이 눈에 보이는 경기였다. 8회초 김휘집의 수비 실책과 라가레스의 역전 투런으로 끝나긴 했지만, 사실 이미 한유섬이 우익수 플라이로 아웃당할 때 X됐음을 실감했다... 유감이지만 이 팀 투수들에게 1점 리드를 막으라는 건 너무 가혹한 주문이다. 2018년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신재영이 올라왔을 때 그가 1점차를 지키리란 기대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지영의 1회 포일과 4회 주루사는 나와서는 안 되는 장면이었고 (물론 오태곤의 커트가 적절하기도 했다) 이전 타석에서 안타를 잘 쳐놓고 6회 2사 만루에서 김태진이 추가점을 내지 못한 게 아쉽기도 했다. 물론 5번으로 내려가서 박성한의 적선에 가까운 내야안타로 간신히 한국시리즈 무안타의 잔혹사를 끊은 김혜성이 더 책임이 크겠지만. (1루에 던질 각 안 나오니까 2루 주자 잡겠다고 3루에 바로 송구해버리는 스마트함에는 감탄했다. 김휘집이 이런 BQ 반만 따라갈 수 있어도 내년 풀타임 주전이다)

 

7회말과 8회말에도 계속 주자는 나갔지만 점수는 나지 않았다. 푸이그가 2루수 땅볼 쳐놓고 진루타 쳤다고 으쓱 하던데... 저기요? 니 뒤에 김혜성이거든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흩어졌다. (참은 건 아닌데 왜 흩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지영과 김태진을 믿었는데... 여기서 김태진이 또 어이없는 공에 헛스윙하면서 기회가 날아갔다.

 

9회에는 김혜성의 송구 정확도, 김태진의 포구능력, 푸이그의 탐욕송구, 맛이 간 김태훈이라는 폭탄들이 모두 터지면서 게임이 일방적으로 밀려버렸다. 그나마 서진용이 언터처블은 아니라는 걸 확인한 게 희망적이다. 이 경기를 보면서 다시는 김태진에게 1루수를 시키면 안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김태진이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다리를 찢어주고 있지만 그의 강습타구 수비에는 전혀 믿음이 안 가고, 그 이전에 1루수 경험도 거의 없는 야수한테 퓨처스 1경기 시켜놓고 1루수를 보라는 팀의 요구부터가 굉장한 무리수였다...)

 

 

사진: 키움 히어로즈

3. 4차전

'김혜성이 부상 투혼을 발휘하는데 어쩌라고? 모르지도 않았을 텐데 그런 상태인 선수를 4-4-5번으로 낸 네가 책임을 져라.' 하고 경기 후 감독 인터뷰에 비아냥거렸는데, 놀랍게도 전병우3(2번)-김태진4(5번)-이지영2(6번)-송성문5(7번)-신준우6(8번)이라는 라인업이 나왔다. 공격에서 아무리 허접해도 수비를 감안하면 김혜성을 뺄 수 있는 감독이 많지 않았을 텐데, 그의 결단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유연함을 올해 후반기 시작 때만 발휘해줬더라도 이렇게 개고생을 하면서 올라가지는 않았을 거다)

 

아무튼 김휘집-김혜성 아웃, 이정후 앞의 타격감이 오른 2번, 김태진-이지영의 중심타선 붙이기, 9번 송성문의 고립이라는 여러 가지 필요했던 사안들을 한번에 만족시킨 이 라인업은 대성공이었다. 2회와 3회 팀의 타선은 5번 김태진부터 8번 신준우까지 우안-투희번-1안-1안(스퀴즈 번트), 다시 우안-좌안-중2-우안으로 활발하게 돌아가며 순식간에 6점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동안 침묵하고 있었지만, 3회 2루타를 치고 나간 전병우를 불러들이는 이정후의 안타가 결승타가 됐다는 점도 긍정적인 측면이었다.

 

반면 7회말 2사 만루 풀카운트에 임지열을 상대로 한 박종훈의 무릎 아래 공이 스트라이크가 된 판정은 상당히 불만스러웠고, 7회말 신준우 타석의 김웅빈 대타나 8회말 전병우 타석의 김혜성 대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김웅빈 대타는 이날 최악의 판단. 여기에 SSG 타선은 6회부터 9회까지 4이닝 동안 계속 만루를 만들었고, 후반 이닝을 김휘집-김혜성-김태진이라는 공포의 수비 조합을 등 뒤로 하고 있는 투수들과 함께 보는 것은 심장 건강에 무척 해로웠다.

 

데일리 MVP를 이승호가 받았는데, 1회 영점이 잡히지 않으면서 추신수에게 볼넷을 허용하고 최정에게 바빕타를 맞아 실점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 믿음이 없었으나 (내 기대치는 2~3이닝 2실점이었다) 그 이후 놀랍게도 예전의 임팩트를 다시 찾으면서 4이닝 1실점이라는 대박을 터뜨렸다. 칼같은 제구와 우타자 몸쪽으로 팍팍 꽂히는 패스트볼은 정말 이게 지난 2년간 불펜에서 골골대던 그 이승호가 맞는지 의심스러웠을 정도. 조금 더 길게 끌고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올해 불펜으로 풀타임 뛰던 선수에게는 4이닝도 힘에 부쳤을 터. 6-7차전 길게 던질 수 있는 투수를 하나 얻었다는 것만 해도 대성과다. 뒤이어 올라온 양현은 1이닝을 9구로 깔끔하게 삭제했는데, 지금까지와는 확실히 다르게 스트라이크존 낮은 보더라인을 타고 제구가 잘 되는 모습이었다. 이영준이 흔들리자 6회 투아웃을 김선기로 끊은 거까지는 깔끔했다.

 

그러나 좌완 상대 특출한 무기가 없는 김선기에게 대타 전의산-1번 추신수까지 연이어 상대하게 한 판단은 무리수. 칼같이 빠른 투수교체를 가져가던 감독이 잠시 머뭇거린 게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다. 김재웅으로 7-8회, 최원태로 8-9회를 끊어가기로 계획했다던 입장에서는 김선기가 아웃카운트를 조금만 더 잡아준다면 두 선수의 소화 이닝과 피로도를 줄일 수 있으니 바로 내리기가 애매했을 거다.

 

김재웅이 김강민을 유격수 플라이로 잡고, 최정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은 다음 다시 한유섬을 유격수 플라이로 처리했는데, 8회 올라왔을 때는 두 번째 이닝이라 그런지 구속도 떨어지고 제구도 흔들리는 게 보여서 안타까웠다. SSG 타자들이 큰 점수차로 리드당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타석에 임해서 그런지 내야플라이가 유독 많이 나오는 날이었는데, 이들이 조금만 평정을 되찾고 스윙했더라면 키움의 허약한 불펜진이 결코 고비를 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1) 먼저 리드 (2) 꾸준한 추가점으로 압박 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경기였다.

 

8회말 2사 만루 위기를 최원태가 추신수의 좌익수 플라이로 넘기고 (문학이었다면 꽤 아슬아슬했다) 추가점 없이 다시 돌입한 9회. 김강민 중견수 플라이-최정 볼넷-한유섬 3루수 플라이까지는 생각하던 이상적인 그림이었다. 하지만 라가레스에게 투스트라이크를 잡아놓고도 투심을 빼다가 2루수 옆으로 빠지는 안타. (변화구를 왜 안 던지나 했는데 유튜브 보니까 본인도 거기서 슬라이더 던졌어야 하는 걸 알더라; 다음에는 꼭 실천해주길 바란다) 이후 제사장의 마운드 방문으로 사기를 올렸지만 박성한 타석에서 투수 땅볼 실책.

 

여기서 정말 끝난 줄 알았다. 이미 영점이 풀려서 슬라이더는 존 상단으로 날아가기 일쑤였고 (그 와중에 체인지업을 바깥쪽 아래 로케이션에 딱딱 꽂아넣는 건 정말 대단했다. 정규시즌 중에 좀 하지 자식아...) 실책한 패턴으로 볼 때 이미 멘탈은 날아갔을 테고... 그러나 놀랍게도 헛스윙 삼진으로 경기 종료! 이게 내가 욕하던 그 가을쫄보 최원태가 맞단 말인가? 포스트시즌에 병살을 잡고도 동공이 규모 7짜리 지진처럼 흔들려서 조기강판을 당하던 그 최원태란 말인가?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출처: 키움 히어로즈

4. 영웅, 우승도전

위에서도 썼지만 우승하면 네가 좋지 내가 좋냐, 그러니 우승해라... 연봉 많이 오르고 포스트시즌 보너스도 늘고... 이것도 진심인데, 이번 가을야구를 보면 정말 변화무쌍하다. '가장 중요한 상황에 쓴다'고 공언했지만 준플레이오프 때는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 피칭으로 일관하다가 플레이오프 2차전부터 필승조가 되어서 나타난 최원태, 후반기부터 플레이오프까지 '얘를 대체 왜 쓰지?' 하다가 한국시리즈 4차전에 대박을 친 이승호, 준플레이오프에선 셋업을 하다가 플레이오프부터 두 번째 투수로 전직해서 잘 하고 있는 양현, 준플레이오프 3차전 3실책의 악몽을 극복하고 다시 크게 활약한 신준우... 여기에 노구(?)를 이끌고 전 경기에서 마스크를 쓰면서 공격까지 이끌고 있는 이지영, 한국시리즈 4할의 사나이 김태진, 정규시즌 1홈런이지만 포스트시즌 2홈런으로 확실히 눈도장을 찍은 임지열까지...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고, 또 이전에 부진했어도 다음에 만회할 기회가 생긴다는 점이 이 팀 야구의 매력인 것 같다. 누군가 빠져도 대체자가 늘 나타난다는 것도. 그러나 언제까지 잇몸으로 버틸 수만은 없다. 시즌을 멱살잡고 끌어온 선수들에게 다소 과한 바람이지만, 이정후가 4안타 푸이그가 2홈런 안우진이 8이닝 1실점 해주고 5차전 이기는 게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다.

 

특히 이정후-푸이그... 네들이 못 치니까 득점은 해도해도 모자라고, 불펜투수들은 죽어라 견디고 있다. 2019년 조상우가 포스트시즌에서 8경기 9이닝 던졌다. 그때 146구인가 투구했는데, 김재웅은 현재 8경기 10이닝 160구 던졌다. 한국시리즈에서만 47-22-30구... 최원태는 8경기 9.1이닝 159구다. 김동혁도 8경기 7.1이닝, 양현이 7경기 6이닝 투구했다. 3년 전에는 6이닝 이상 던진 PS 불펜이 조상우 포함해서 오주원-김상수-안우진-한현희까지 다섯이었다. 지금은 넷이고, 김재웅-최원태-김동혁에 대한 의존도는 3년 전의 조상우보다도 훨씬 높다.

 

안우진의 물집 컨디션이 얼마나 괜찮아졌는지, 애플러가 다음 등판에는 더 잘 던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즉, 뻔뻔스럽고 미안하게도 또 불펜 삼총사의 최소실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무리한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면, 타선의 대폭발이 필요하다. 이제 한두 점 찔끔찔끔 낸다고 이길 수는 없다. 무조건 다득점이 살 길이다. 시즌에 비해서 별로 구속 증가 효과가 없는 SSG 불펜진, 4차전부터 다시 정신을 놓기 시작한 김원형 감독 등 여러 변수가 있지만 아무튼 타선이 반드시 해줘야 한다.

 

무엇이 두려워 앞으로 나가지 못하겠는가. 무엇이 아쉬워 지난 경기를 돌아보겠는가. 두 번만 이기면 정상에 설 수 있는 순간이 온다. 잃을 것은 무관의 치욕뿐이요, 얻을 것은 무한한 영광뿐이라.

Posted by 김에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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