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키움 히어로즈

1. 패턴

2번 전병우DH-5번 김태진1B-9번 김혜성2B이라는 파격적인 라인업을 이어간 5차전, 1회 전병우의 볼넷-이정후의 2루타 이후 김태진의 2타점 적시타로 먼저 2점을 득점했다. 2회에도 김광현을 무사 만루로 흔들고 김준완의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더했다. 6회 송성문의 볼넷-신준우의 희생번트 이후 김혜성의 안타로 (뇌주루가 있었지만 상대 실책으로 2루에서 살기까지 하며) 4점째까지 무난하게 득점. 하지만 안우진이 6이닝 무실점으로 막고 내려간 마운드가 흔들렸다. 7회말 양현은 선두타자 안타에도 불구하고 이후 3타자를 모두 범타처리하며 물러났지만, 8회말 1사 최지훈의 타석에 신준우의 유격수 실책이 나온 후 김재웅이 최정에게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투런 홈런을 맞으며 4-2까지 점수 차가 좁혀졌다. 9회말 최원태가 선두타자 박성한을 상대했으나 아쉬운 볼 판정 끝에 볼넷으로 내보냈고, 이어서 최주환의 안타 이후 대타 김강민의 역전 끝내기 스리런이 터지며 그대로 패배.

 

6차전 역시 후반기 내내 기용하던 1번 김준완을 포기하고 1번 임지열DH-2번 전병우1B라는 또 하나의 파격을 실행했으나, 다시 실책이 발목을 잡았다. 3회 임지열의 선제 투런으로 폰트에게 실점을 안기며 앞서나갔으나, 3회말 최지훈의 우중간 안타 때 푸이그가 3루 다이렉트 송구로 최지훈에게 2루를 허용하며 1사 2,3루가 되었다. 애플러가 최정을 인사이드 커브로 (반대투구였지만 전혀 손쓸 수 없는 코스였다) 잡으며 위기를 넘기는 듯 했으나 한유섬의 1루수 땅볼 때 전병우의 토스가 높게 들어가 2루 주자까지 포수가 백업을 위해 비운 홈플레이트를 밟으며 동점. 김휘집의 포구 실책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실점이 늘어나진 않았으나, 5회초 출루를 위해 기용한 박준태 대타로 수비포지션이 김혜성SS-김태진2B-박준태LF로 바뀐 것은 다른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6회초 이정후가 다시 앞서나가는 솔로 홈런을 터뜨렸지만, 리드를 지키기 위해 올라온 투수 요키시가 맞붙은 첫 타자 라가레스는 2루수 김태진의 실책으로 살아나갔고, 이후 박성한의 타석 때 이지영의 포일로 2루까지 진루. 최주환의 희생번트 이후 김성현의 좌중간 2타점 2루타가 터지며 경기는 또 다시 SSG가 앞서나갔고, 그대로 시리즈까지 끝나버렸다.

 

우세를 장담하기 어려운 매치업에서 안우진과 애플러 두 선발투수가 역투했고 자신의 임무를 달성했으며, 전력상 앞서는 상대팀을 상대로 매번 리드를 잡았으나 그때마다 번번히 수비실책으로 경기가 터진 점은 정말 가을야구 히어로즈의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그나마 예전과의 차이라면 강정호-김하성은 그럴 줄 몰랐던 놈들이 그랬던 거고, 김휘집-신준우는 그럴 줄 알았지만 넘어가주길 바랐는데 결국 저질렀다는 정도일까. 2019년 포스트시즌에서 히어로즈 수비진은 11경기 11실책을 했는데,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는 총 15경기에서 22실책을 했다. (김휘집 5실책, 신준우 4실책) 전반기 선두 SSG와 다퉈도 될 정도로 막강했던 수비능력은(DER 기준) 후반기에는 시즌 전체에서 독보적인 꼴찌를 한 롯데 수비진과 별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붕괴했으니, 포스트시즌에 잘 넘어갔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으리라.

 

여기에 시즌 내내 보강이 없었던 불펜진은 막판에는 윤정현과 김선기가 셋업맨 자리에서 등판할 정도로 붕괴했으나, 가을야구에는 드디어 플레이오프부터 정신을 차린 최원태가 김재웅-김동혁의 필승조에 합류하며 승리공식을 만드는 듯 했다. 그러나 2019 조상우를 뛰어넘는 무리한 등판일정에 김재웅과 최원태의 어깨는 피로를 견디지 못했고, 결국 5차전 최정에게 걸리는 행잉슬라이더와 김강민의 방망이에 걸리는 0-2 카운트에서의 높은 슬라이더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2. 한 해의 끝

2014년이 끝나고 나서는 안타까우면서도 내년에 다시 이 자리에 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2019년이 끝나고 나서는 이 화려한 멤버로도 안 되는가 하는 참담함이 있었다. 올해는... 그냥 지긋지긋하다. 준우승이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 양키스의 前 구단주였던 조지 스타인브레너의 명언 몇 개만 인용해보자.

 

-살아있는 것 다음으로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하는 것이다. (Winning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my life, after breathing. Breathing first, winning next.)

-2등은 그냥 첫 번째 패배자다. (Second place is really the first loser.)

-난 지는 걸 증오한다. 정말로 증오한다. (I hate to lose. Hate, hate, hate to lose.)

 

물론 시즌 전 5강 예상에도 없었던 팀이 정규시즌 3등으로 페넌트레이스를 끝내고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시즌을 끝낸 일은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좋은 일이다. 자랑스럽다, 잘 싸웠다고 자축하는 주변의 반응이나, 언론의 찬사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고. 나도 시즌 전 기대치에 비하면 이 팀이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올해도 결국 무관의 사슬을 끊어내지 못한 건 지겹다.

 

마지막 무대에 들어섰으면 결국은 승리해야 역사에 남는다. KBO 최다 우승팀이 KIA 타이거즈인 건 야구를 보는 팬이라면 누구나 안다. 그러면 최다 준우승팀은 어디일까? 아마 삼성인지 두산인지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거다. MLB 최다 우승팀이 양키스인 건 MLB를 조금이라도 본 팬이라면 대부분 안다. 그렇다면 최다 준우승팀은? 다저스? 자이언츠? 카디널스? 역시 어디인지 자신있게 바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다.

 

지난 10시즌간 9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올라왔다. 같은 기간 동안 더 많이 진출한 팀은 당연히 없다. 언제까지 명품조연에 만족하고, 언제까지 첫 우승에 도전하는 혈기에 찬 애송이 취급에 만족할 셈인가. 팬은 설령 잘 싸웠다고 생각할 수 있어도, 구단은 전혀 그래서는 안된다. 팬에게는 아름다운 도전기일 수 있어도 구단에는 그냥 세 번째로 정상탈환에 실패한 1년일 뿐이다. 프로야구의 간판 스타 외야수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고작 1-2년이 남았다. 메인스폰서 계약도 1년이 남았다.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너무도 분명하지 않나. 무슨 거물급 FA를 잡으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납득이 가는 전력보강을 바란다.

 

 

3. 그래도, 수고했다

생각해보니까 10년간 이 블로그를 하면서 선수들에게 직접적인 감사의 말을 쓴 적은 없는 거 같아서... 재주는 없지만 짧게나마 쓴다. 정규시즌 144경기, 포스트시즌 15경기 동안 보여준 선수들의 열정에 팬으로서 너무 고맙다. 우승까지는 한 끗이 모자랐지만, 이번 포스트시즌을 보면서 그게 의지나 정신력의 차이는 아닐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내년에는 정상의 자리에 올라선 게 그대들이기를, 우리의 기다림보다도 당신들의 땀방울이 보답받기를 원하고 소망한다. 이정후나 안우진은 말할 것도 없고, 포스트시즌에 뛰었던 모든 선수들에게 (그 동안 비난을 퍼부었던 선수들에게마저도) 고맙지만, 특히 김재웅-최원태 너무 수고했다. 그 동안 최원태 이름 석자만 들어도 증오로 이가 갈렸는데, 내년에는 조금 더 여유롭게 지켜볼 수 있을 거 같다.

 

그런데 산통깨서 미안한데, 내야수들 수비 조금만 잘하자. 화이팅.

Posted by 김에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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