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키움 히어로즈는 KIA 타이거즈와 포수 주효상을 내주고 KIA의 2024년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을 받는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원래 좋아하지 않았던 선수라서 처음에는 만세! 를 불렀지만 하루가 지나니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을 거 같아 또 끄적끄적해본다.
1. 의외의 강점들
주효상은 2016 신인드래프트에서 히어로즈에 1차 지명되었던 선수다. 문제의 2016 드래프트는 히어로즈 역사상 최악의 드래프트로, 이 중에 1군이라도 밟아본 선수는 주효상을 제외하면 2차 5라운드에 지명된 투수 유재훈과 2차 8라운드에 지명된 외야수 채상현뿐이다.
원래 외야수로 뛰던 주효상은 고2때 포수를 시작하여 빠른 성장세를 보였는데, 특히 타격에서 중장거리 타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고 포수로서는 팝타임이 짧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명 이후 2년차인 2017시즌에는 박동원을 대신해 상당한 시간을 선발로 출장했지만 공수 모두에서 수준 이하라는 것만 밝혀지며 악평을 듣다가, 2018시즌 박동원의 성폭행 연루 사건 때 백업 포수로 나서면서 볼배합 등 포수로서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이며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승선했다. 하지만 이후 삼성 포수였던 이지영이 삼각트레이드로 이적하면서, 2019-2020 두 시즌 동안에는 간혹 브리검이나 한현희의 전담포수를 맡는 정도에 그치다가 2021시즌 초 군에 입대했다.
주효상의 강점을 살펴보면 일단 첫 번째로 타격을 꼽을 수 있겠다. 1군에서는 405타석에서 .203 .279 .267에 그쳤지만, 2군 529타석 .303 .419 .458의 기록은 KIA의 포수 유망주인 신범수(763타석 .275 .349 .399) 한준수(441타석 .301 .354 .410) 권혁경(193타석 .285 .358 .448)보다 조금 더 좋다. 군대에 가기 전 마지막 시즌이었던 2020시즌에도 101타석에서 .190 .296 .238에 불과했지만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만드는 능력과 볼넷을 얻는 능력은 어느 정도 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두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장점은 프레이밍이다. 주효상의 수많은 낮은 존 덮밥을 보던 히어로즈 팬들은 '이게 무슨 개소리냐'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4년간 프레이밍 득점 수치를 보면 (출처 링크) 주효상은 -7.4점으로 이는 4년간 KIA에서 뛰던 김민식(-16.7) 한승택(-19.4) 그리고 새로 합류한 박동원(-27.5)보다도 좋은 수치다. (박동원은 저 수치에서 매년 하위권을 찍었기 때문에,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블로킹 역시 괜찮다. 2017-2020 4년 동안 Pass/9 수치를 보면 주효상의 블로킹은 0.579(342이닝)-0.442(366.2이닝)-0.136(66이닝)-0.376(191.1이닝)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선되고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한승택의 Pass/9는 지난 3년간 0.618(597이닝)-0.397(589이닝)-0.362(299.2이닝)이며, 지난 5년간 KIA 포수진의 Pass/9는 0.427에서 0.624를 오갔다. 즉 블로킹에서 마이너스를 만들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도루저지도 나쁘지 않다. 2020년에는 191.1이닝 동안 39.1%의 도루저지율을 기록했다. (KBO 공식사이트 기준) 지난 3년간 박동원의 도루저지율이 20.0%-25.5%-35.5%이며, 한승택은 22.2%-35.6%-29.2%이다.
2. 치명적인 약점
여기까지 얘기하면 '그러면 이렇게 괜찮은 선수를 대체 왜 트레이드한 거냐'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주효상은 포수 경력이 너무 짧다. 그가 프로에 입단하기 전까지 포수를 경험해본 시간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중학교 때부터 포수를 맡았던 선수들조차 프로에 들어오면 어느 정도 쓸 만한 선수로 성장하기까지 최소 5년은 걸리는 게 현실이다. 지금 20대 중반 아래 포수들 (좀더 심하게 얘기하면 20대 전체조차도) 중에서 팬들에게 대단한 인상을 남긴 선수는 리그 전체에서도 찾아보기 드물다. 게다가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군대를 현역으로 다녀왔기 때문에 그 커리어마저 연속성이 없다는 거다. 2020시즌 2군에서 주효상은 지명타자로 적지 않은 경기에 출장했는데, 이는 히어로즈에서도 주효상이 포수 포지션을 유지할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지 않았나 의심할 수 있는 사례다.
요새야 군대를 현역으로 다녀오는 야구선수들이 많아 이 문제가 별것 아니라 느껴질 수 있겠지만, 10개 구단 1,2번 포수 중에서 군대를 현역으로 다녀온 선수는 아무도 없다. 못 믿겠으면 직접 세어봐도 좋다. 그래서 나도 항상 '박동원과 이지영이 있으니 포수 세대교체는 좀더 어린 친구들에게 맡기고 주효상은 1루수나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꾸는 게 옳다'라고 주장해왔다. 어제 페잉에는 '주효상은 4-5라운드급이라 무조건 이득인 트레이드다' 라고 썼는데 생각해보니 그 정도는 아닌 거 같고... 그래도 한 3-4라운드급은 되지 않을까? 2라운드를 반대급부로 받아온 것은 키움 입장에서 이득이면 이득이지 손해는 아니다.
군복무시절(2021년 9월) TJS 경력이 있는데 투수도 아닌데 수술한 게 왜 이리 많이 언급되는지 좀 의아하다. 야수의 토미존 수술이 크게 의미가 있었던가? 그 외 워크에식이 안 좋다느니 술을 좋아한다느니 여성팬에게만 사인을 해준다느니 그런 이야기들이 많은데 확인되지도 않는 사항들을 굳이 단점으로 열거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좀 4차원적인 면이 있어보이기는 하는데 어차피 과묵한 선수들보다는 자기 캐릭터가 확실하고 살짝 또라이같은 선수들이 성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크게 문제는 없겠다.
3. KIA에서 데려간 이유는
장정석 단장이 감독 시절 직접 써본 포수라 어느 정도 신뢰가 있었기 때문인 듯 하다. 일단 포수가 가능하기만 한다면 주효상은 3번 포수로서는 상당히 괜찮은 선택이고, 만약 백업 포수 수준의 수비력에 머물러도 추후 타격의 발전이 있다면 절망적으로 타격을 못하는 한승택은 무조건 밀어낼 수 있을 거다. 포수가 아닌 1루수나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꾸더라도 공격력에서 발전할 여지가 있으므로 긁어볼 수 있는 로또고.
박동원의 다년계약 협상 기간과 겹쳐서 다소 분위기가 험악하긴 한데, 어차피 박동원급의 포수가 뻔히 FA 대박이 예상되는 상황에 시즌 중에 장기계약을 맺어줄 일은 거의 없으므로 주효상 트레이드로 박동원과 KIA의 계약은 무산되었다고 단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 상황을 대비한 보험의 측면이 0%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강민호가 있는데도 작년 김태군을 심창민과 맞바꿔서 데려온 삼성 라이온즈의 사례도 있지 않았나. 만약 박동원과 계약한다면 한승택-주효상이 백업으로 앉게 되므로 안정적이고, 추후 주전 경험도 있는 한승택을 트레이드카드로 쓸 수 있는 선택지도 만들 수 있다. 반면 박동원 혹은 그에 걸맞는 레벨의 FA 포수와 계약하지 못하게 된다면 자동적으로 주효상은 주전을 노리는 백업 포수 레벨로 올라가는 것이고.
지금까지 장정석 단장이 한 무브를 정리해보면 이민우-이진영-김민식-김태진-한승혁-장지수 및 신인지명권 2장을 내주고 김도현-김정빈-임석진-박동원-변우혁-주효상을 데려왔다. 신인지명권 2장을 함께 태워서라도 결코 A급은 되지 않을 견적이 확실히 나온 선수들이나 성장이 제한된 선수들은 내보내고, 대신 든든하게 뎁스를 확충하면서 하이리턴이 가능할 선수들을 영입했는데... 팬들 사이에서는 악평이 자자하지만 방향성이 뚜렷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게까지 나쁜 트레이드들은 아니지 않았나 싶다. 물론 시간이 좀더 지나봐야 결과를 알게 될 테고, 무엇보다도 박동원을 못 잡으면 시즌 중에 현금과 신인지명권까지 더해가면서 트레이드를 한 의미가 크게 퇴색된다는 점은 변하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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