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키움은 왜 망했을까

전반기 마지막엔 7연패를 했고, 후반기 시작 후 삼성-한화와 3승 3패를 맞춘 다음 1무 9패로 무려 4.5게임 가량을 또 까먹었다. 이제는 삼성과 승차 없는 9위고,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은 0.3%로 10개 구단 중 가장 낮다. 오늘 지면 창단 최다 연패 기록인 10연패도 달성한다. 우와~

 

그럼 키움이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는 그 어떤 다른 요인보다도 드래프트 실패를 들 수 있다. 2016-2018-2019 3개 년도 드래프트의 실패는 팀을 궤멸적인 위기로 몰아넣었다. 2016 드래프트는 지명자 전원이 망했고, 2018 드래프트도 서울 1번으로 안우진을 뽑은 것 외에 어떠한 수확도 건지지 못했다. 그나마 예진원과 김수환(2018) 주성원(2019)에게 싹수가 보일 뿐이지만 이들도 갈 길이 멀다. 지금까지 히어로즈 선수단 뎁스의 튼튼함은 중하위 지명자를 잘 육성한 데서 나왔다. 특히 2006-2009-2012-2015 3년 주기로 주전급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주전은 못 해도 백업으로 1군을 채워줄 선수들을 대거 뽑으면서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강팀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장타자도 없고 뛰는 타자도 없는 무색무취한 타선과, 1이닝 막기도 급급한 143 클럽(야 10년 전엔 138 클럽이었는데 리그가 참 많이 레벨이 오르긴 했다)들의 향연인 불펜을 원인으로 짚을 수 있겠다. 이것 역시 드래프트 실패의 부수적인 결과니까 넘어가고...

 

세 번째는 올 시즌을 앞두고 했던 선택들이 모조리 실패로 돌아갔다는 거다. 한계를 드러낸 애플러 대신 후라도를 데려와 외국인 투수를 업그레이드하고, 작년 정규시즌의 약점이었던 외야 한 자리와 타선은 이형종으로 메우고, 포스트시즌의 약점이었던 불펜 한 자리는 원종현으로 메우고, 그 동안 내내 약점이었던 불펜 뎁스는 임창민 등 자유계약선수로 메우고, 포스트시즌 역시 한계를 드러낸 김휘집-신준우 유격수 체제는 러셀로 대체해서 다시 한번 대권에 도전해보겠다는 발상은 이 팀이 할 수 있는 무브 중에는 굉장히 좋았다. (※혹시나 해서 첨언하자면 이미 망한 놈을 데려와서 뭣하냐는 이유라면 모를까 김휘집-신준우를 유격수로 놓고 안정적인 한 시즌을 치를 수 있다는 생각은 다들 이제 깔끔하게 접으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이 중에 후라도를 빼고는 결국 안정적으로 들어맞은 수가 없었다. 불펜은 임창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 안 좋아졌고, 원종현은 수술로 내년까지 날릴 위기며 (그 동안 튼튼하게 던져서 아웃라이어인 줄 알았더니 청구서 발송이 이틀 남은 신용카드였다) 이형종은 예상하던 범위에서 가장 안 좋은 쪽으로 망했다. 러셀의 타점먹방쇼 역시 조기종영으로 막을 내렸으며 타선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단행한 이원석 트레이드도 팀 뎁스에 먹튀를 하나 추가하며 실패로 돌아갔다. (이원석 연장계약은 정말 심각하게 고위층의 배임이나 기타 범죄 혐의를 의심해봐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의 새로운 희망

2) 최원태 트레이드

앞서 살펴본 대로 이 팀이 오프시즌에 취했던 무브는 대부분 망했고, 그래서 전반기 끝났을 때의 순위는 9위였다. 사실 나는 그래서 올스타 브레이크 동안 후라도를 트레이드하는 결단이 나올 줄 알았다. 최원태를 예상에 넣지 않은 이유는 상위선발투수를 미드시즌에 파는 전례없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다면 시즌 끝나고 전 구단이 달려들 수 있을 때 트레이드하는 게 좀더 짭짤할 거라고 보기도 했고. 그러나 결국 최원태가 트레이드됐다. 이정후의 부상 전까지는 구단도 달려볼 마음이 있었던 모양인데, 공수의 핵이었던 이정후가 이탈하며 이제 더 이상 반등할 가능성이 없을 거라고 본 듯 하다.

 

올해의 스텝업을 보고도 최원태를 내준 건 물론 아쉬우나 어차피 지금 퍼포먼스면 키움에서 감당할 수 없는 몸값으로 진입한 지 오래다. 차라리 빨리 트레이드해서 21번째 선수 정도의 보상보다 더 큰 반대급부를 받는 것도 괜찮은 판단이다. 대가로 받아온 선수 중 김동규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 않으나 (우완 떡대 상위픽이라는 점은 맘에 든다) 이주형은 굉장히 만족스럽다. 물론 파워툴이 있는 이재원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아직 미필인 선수가 아시안게임 출전도 무산됐기 때문에 전성기에 해당하는 나이를 군에 보내야 한다는 점에서 그 리스크가 더 커진 상황이다. 따라서 LG 팜에서 최고의 야수 유망주는 군 문제를 이미 해결했으면서 현역 복무가 성적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은, 그러면서도 모든 툴을 고루 갖춘 이주형이었다. 이주형이 무조건 터지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현 시점에서는 가장 당첨 확률이 높은 선수고 또한 밀어줘야 하는 유망주이기도 하다.

 

 

3) 군대나 보내자

작년 이 팀이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건 어마어마한 우주의 기운이 작용한 덕이었다. 안우진-요키시-이정후-김혜성을 제외하면 나머지 멤버들은 작년에도 리빌딩팀 수준이었고, 올해 더 이상 그 실체를 은폐할 수 없게 되었다.

 

야구 전문 채널에서는 올해 이정후의 해외진출을 시작으로 향후 김혜성의 해외진출, 주축 선수들의 군입대를 비롯한 K-탱킹이 이어질 거라고 예측(또는 확신)하고 있다. 마침 투수 쪽에서는 안우진-이승호-김재웅-김성진-김동혁-장재영, 타자 쪽에서는 김혜성-김동헌-김수환-김휘집-박찬혁 등의 군 문제 해결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입대가 시급한 선수는 다음과 같다.

 

안우진... 어차피 국가대표팀을 통한 군 문제 해결이나 등록일수 보너스는 글렀다. 정찬헌이 1년이라도 멀쩡하다 싶을 때 빨리 다녀오는 거 나쁘지 않다. 김재웅 혹은 이승호... 김재웅은 플레이스타일상 앞으로도 국가대표 구성에서 후순위로 밀릴 확률이 높고, 이승호는 1군에서 한계에 부딪쳤다. 김성민과 바톤터치하자. 김성진... 대졸 미필이므로 역시 군대를 빨리 다녀와야 한다. 조상우와 바톤터치하자. 박찬혁... 그나마 고만고만한 외야 유망주 중에서 기회를 많이 받은 편이지만 1군 즉전감이 되려면 멀었다. 변상권과 바톤터치하자. 일단 이런 선수들을 보내놓으면 내년 시즌이 끝나고는 다시 김동혁 대신 이강준이, 김수환 대신 이명기가 들어오면서 차근차근 정리가 되리라.

 

 

4) 이봐, 리빌딩팀답게 굴어

드래프트 실패와 주요 선수들의 연이은 해외진출 도모, 쌓아둔 상위지명권과 그리고 스폰서 재계약 5년 가운데 첫 해라는 요소가 모두 겹쳤다. 이 중 어느 한 요소라도 결여되었다면 팀을 전면적으로 갈아엎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신인지명권은 많고 돈줄은 안정적이며 로스터에는 4할 승률을 4할 5푼으로 올려줄 수 있는 주축 선수들마저 뿔뿔이 흩어질 예정이다. 그렇다면 이제 가을야구 컨텐더는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2년간은 뼈를 깎는 쇄신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어차피 이장석이 구단주고 홍원기가 감독이며 강병식과 오윤이 타격코치인데 뭐가 달라질까요?' 라는 시선도 있을 수 있다. 구단이 그런 시선을 받게 된 것에는 구단의 귀책 사유가 크므로 나도 '이런,,, 부정충 쉐끼들,,, 구단의 플랜에 따라라(엄근진)!!!' 하고 모두 장밋빛으로 포장할 마음은 없다. 다만 이 팀은 4년 동안 선수를 팔아먹으며 생존에 급급하던 시절도 극복하고 이후 11년간 10번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루어낸 팀이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지금의 고통은 향후의 도약을 위한 성장통이며, 같은 실패의 반복이 무서워 아무 것도 안할 수는 없는 법이다.

 

신인드래프트야 스카우터들이 알아서 한다 치고, 이제 올 시즌 남은 40경기 동안 중요한 것은 옥석을 가려내고 누구에게 경험치를 먼저 줄지 정하는 일이다. 홍원기 감독이 이것만 해내도 그럭저럭 중간은 가는 감독으로 남을 수 있다. 내가 보는 타석을 먼저 몰아줘야 하는 선수는 다음과 같다- 김수환, 주성원, 예진원. 상세히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김혜성, 송성문, 김휘집처럼 너무 주전급이 명확한 레벨들은 그냥 뺐다)

 

Tier 1(남은 40경기에서 무조건 라인업에 이름을 써놔야 하는 타자) - 김동헌, 이주형, 김수환, 주성원, 예진원

Tier 2(적당히 체력안배 및 준주전 역할로 출전하면 되는 타자) - 김웅빈 / 김태진, 이용규, 이지영

Tier 3(1군에 있을 필요가 없는 타자) - 박찬혁, 박주홍, 김건희 / 김준완, 이원석

 

올 시즌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주전 포수는 이지영이었지만, 내년에는 김동헌의 출전 비중이 더 높아져야 한다. 올해 거의 6:4였는데 내년에는 4:6 혹은 그 이상이 되는 게 적합하다. 이제 이지영에게 계속 마스크를 씌우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김수환과 주성원은 뛰어난 장타력이나 2군에서 계속 우상향하고 있는 볼삼비를 봤을 때 기회를 줄 만 하다. 특히 주성원이 단연 1순위다. 이미 군대에 다녀왔고 상대적으로 게임에 많이 내보낼 수 있는 코너 외야수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예진원에게는 부진한 성장세로 신뢰를 잃은 팬들도 많겠지만, 아직 송우현 비슷하게라도 터질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만약 안 터질 선수라면, 빨리 긁어서 안될 선수라는 점을 확인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김웅빈은 별로 믿지 않지만, 김수환의 플래툰 파트너로 가치가 있을 거 같고 김웅빈보다 더 늦은 나이에 포텐을 개화한 오재일의 케이스를 기대하는 팀도 하나쯤 있을 법 하다. 박찬혁은 어젯밤까지만 해도 조금 고민했는데, 주성원과 이주형이 있을 때 그냥 얼른 군대 다녀오는 게 좋지 싶다. 박주홍도 마찬가지다. 올해 스윙하는 걸 보니까 야구랑 잠깐 떨어지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해보인다. 김태진은 '아름다운 2주'의 타격과 내야 유틸리티가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1군에 남기는 게 좋겠다. 점점 3티어 쪽으로 이동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이용규도 올해 성적은 안 좋지만 덕아웃 리더로서 존재감이 크고 주장 역할도 잘해줬던 선수니 1군에 남아야 한다고 본다.

 

김건희는 왜 자꾸 1군에 올리는지 모르겠는데 투수나 타자나 1군에서는 모두 실력 미달이다. (그리고 2군에서도 그럴 거라 짐작한다) KBO가 아무리 수준이 낮은 리그여도 투타겸업이 만만한 과제는 아니다. 자꾸 얘가 즉전감인 것처럼 1군에 불러대지 말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쭉 2군에 박아놓는 게 낫다. 이원석은 공수 모두 떨어지므로 1군에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 내년이야 144경기 시즌을 치러야 하니 다시 불러올린다 치더라도, 올해는 그냥 다시 1군에서 볼 일이 없었으면 한다. 김준완도 마찬가지다. 홍원기 시대 최대의 미스터리가 김준완의 중용인데, 자꾸 머니볼 보고 야구 헛배운 중생들이 1번 타자로 김준완을 찍어대는 걸 보면 미치겠다. 33세 무툴 외야수는 1번이 아니라 1군에서도 있으면 안된다. 젊은 외야수들이 김준완만큼 성적을 당장 못 내더라도 그것은 세금이다. 하지만 김준완이 1군에서 범타를 쳐대고 있으면 그것은 파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리해보면 이주형 빼고 최소 두 명만이라도 남은 40경기에서 계속 타석을 부여했으면 좋겠다. 일주일 30타석 쓰고 내리고 몇 주 후에 일주일 30타석 쓰고 내리고 이런 식으로 타석을 쌓아서 200타석쯤 주고 기회를 많이 줬다고 면피하는 것만큼 한심한 짓거리가 없다. 박병호도 2011시즌에 시즌 포기하고 데려오면서 풀타임 4번으로 김시진이 계속 쓴 덕에 결국 터진 거다. 지금 언급한 선수들이 박병호만큼의 재능이 있지는 않겠지만, 안정되고 꾸준한 출전 기회 부여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2000년대 후반 롯데의 No Fear 돌풍 이전에는 양상문의 유망주 밀어주기가 있었다. 2010년대 초반 두산과 LG의 유망주 성장을 가른 결정적인 요인도 유망주를 쓰는 방식 차이였다. (두산은 2군에서부터 1군까지 집중적으로 쭉 타석을 먹였고, LG는 한 자리에 여러 명을 돌려쓰면서 시험하다가 망했다) 리빌딩팀이면 리빌딩팀답게 유망주들을 중점으로 쓰고, 당장 성적 낼 수 있는 케이스도 미래가 보장된 케이스도 아닌 선수들은 과감하게 제외해야 한다.

Posted by 김에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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