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6~0618
vs 한화 (대전)
2:2 무 / 9:6 승 / 6:5 승
1차전 안우진 / 산체스
2차전 장재영 / 한승혁

3차전 후라도 / 문동주


1. 이전 경기들 정리

마지막으로 리뷰를 썼던 5월 중순 두산전 이후 루징 시리즈만 5번을 하는 무기력한 경기력을 보였다. 19일에는 요키시의 1회 8실점 경기가 있었고 (중하위 타선으로 넘어갈 때까지는 그냥 바빕타였는데 바빕타가 계속되면서 멘탈이 많이 털린 듯 싶다) 그 이후에는 4연패가 포함된 의미없는 경기를 계속했다. 27일 롯데전에서는 패배하면서도 6점차 경기를 1점 승부까지 쫓아가며 상대 마무리를 나오게 했는데, 그래서인지 다음날에는 8회말 임지열의 역전 만루홈런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6월 SSG 3연전에는 9회말과 10회말 끝내기 두 방을 얻어맞고 졌다가 4일 세 번째 경기에서 이정후와 김혜성의 백투백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해 이겼고, LG 3연전에는 두 번째 경기인 7일 김수환이 12회말 동점 투런을 터뜨리며 간신히 무승부가 포함된 1승 1무 1패로 균형을 맞췄다. 이후 9~11일 KT 3연전에서 오랜만에 위닝시리즈를 따냈고, 13~15일 KIA 3연전에서는 화요일과 수요일 1점차 접전으로 승리했으나 목요일 패배하면서 다음을 기약해야했다.

 

그리고 요키시가 내전근 부상으로 6주 진단을 받으며 웨이버공시됐는데, 앞서 얘기한 5월 19일 KIA전부터 12-9-6-10피안타로 선발등판할 때마다 유독 안타 허용이 많았던 것은 아마도 허벅지 통증의 영향 때문이었던 것 같다. 별도로 포스팅을 해두고 싶지만... 새로 온 대체 용병인 이안 맥키니를(18만 5천 달러라는 금액은 무시하더라도 '잘해봐야 애플러'인 프로필은 굉장히 놀랍다) 보니 느낌이 이번이 요키시의 마지막은 아니지 싶어서 일단 생략해본다.

 

 

2. 한화전 정리

사흘 내내 접전을 하느라 주중 KIA전에도 불펜을 많이 썼는데 결국 일요일에 김재웅-원종현-임창민-하영민 등 불펜투수 4명이 3연투를 하고 말았다. (이미 토요일에 주4에 3연투를 한 양현도 있다) 시즌을 치르다보면 가끔 3연투나 주4~5회 투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지만, 저번 주의 투구는 걱정될 정도였다. 박빙 승부가 워낙 많아 김재웅과 임창민은 3연투가 포함된 주5회 등판을 했고, 둘 다 현저하게 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김재웅은 요새 제구가 너무 안되고 있다) 김재웅은 물론이고, 최근 4경기에서 무려 볼넷 4개를 내줬던 김성진도 한번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지만 불펜 뎁스가 이들의 휴식을 보장해줄 수 없는 여건이니 또 문제.

 

일단 주간 타격을 보면 김휘집이 23타석에서 .391 1.000으로 제일 좋았고, 임병욱도 무려 볼넷 3개(!!)를 얻어내며 .385 .962로 좋은 활약을 해주었다. 물론 금요일에 12회 폭투사이 진루실패아웃으로 3루에서 죽어서 사실상 이길 수도 있었던 경기를 무승부로 끝내버린 것도 임병욱이지만... 김혜성(.292 .829)이나 이정후(.211 .702)는 기대에 미치는 성적은 아니었고, 특히 김혜성은 사흘 연속 실책성 플레이를 벌여 3연전을 어렵게 끌고 간 주범이기도 하다. (장재영을 강판시킨 것도 사실상 김혜성 아니었나) 이형종은 .238 .670으로 아직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니었지만 사구를 3개나 맞으면서 나름 의지(?)를 보여줬고, 이지영도 11타수 3안타(.273)에 희생번트 4개를 대며 수고가 많은 한 주를 보냈다. (물론 금요일에 희생번트 3개를 대고도 이기지 못했던 것은 도저히 찬스를 받아먹을 생각이 없었던 바로 뒤 타순 이원석의 역할도 크다...) 러셀은 뜨거웠던 4월(86타석 .342 .889)을 지나 이제 완전히 가라앉은(6월 50타석 .267 .607) 모양새인데 과연 얘를 계속 끌고 갈 가치가 있을까 좀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못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경기에 너무 자주 빠지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 김준완은 KIA전에서는 10타수 무안타 1볼넷으로 아웃카운트 자판기였으나, 한화전에서는 10타수 3안타 1볼넷으로 나름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고 특히 일요일 경기 결승득점이 되는 2루타를 때려내기도 했다. 한 주 정도는 더 기다려봐도 좋지 않을까.

 

투수진은... 요새 커맨드 불안이 있지만 안우진(7이닝 5피안타 8K 1실점)은 확실히 안우진이었고, 일요일 선발인 후라도는 6회까지는 노히트 피칭을 펼쳤으나 7회 선두타자인 채은성에게 우측 2루타를 얻어맞고(예진원의 포구실책에 가까웠다) 급격하게 상태가 안 좋아지며 내려갔다. 염치없는 소리지만 후라도가 조금만 더 버텨줬다면 불펜 부담이 덜해졌을 텐데 아쉽기도 하다. 일요일 사고의 주범이었던 예진원은 그나마 공격에서는 9번을 맡아 멀티히트로 가능성을 보였다는 정도만 언급해두자.

 

토요일 선발이었던 장재영은 3.1이닝 4피안타 1볼넷 4탈삼진 무실점을 하고 내려갔다. 4회 양현이 만루를 틀어막아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장재영 본인이 김휘집의 좁은 수비범위나 김혜성의 한심한 송구를 등에 업고도 무너지지 않는 피칭을 했고, 특히 불리한 카운트에도 다시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공이 안정적인 탄착군을 보였던 것이 좋았다. 일단 올라와서 세 경기 연속으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한데, 다음에는 과연 어떨지? 팀의 대체선발이 이제 더 이상 없기 때문에 장재영이 3이닝 1~2실점 투구라도 계속 해준다면 큰 보탬이 될 것이다.

Posted by 김에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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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서론

이번 게시물에서는 투수들이 던지는 구종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움짤과 함께 소개하겠습니다. 각 구종마다 장단점이 무엇이 있는지, 주로 어느 카운트에 던지는지, 최근의 트렌드는 어떤지 등을 서술합니다. 너무 어려운 내용은 '심화'로 따로 빼놓았습니다. 히어로즈 팬이라면 도움이 될 만한 추가적인 정보들도 간략하게 덧붙입니다.

 

※주의: 모든 투수들은 신체조건, 공을 잡는 방법, 공에 힘을 주는 방법이 개개인마다 전부 다릅니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구종 분류는 임의적인 구분이라는 것을 인지하셔야 합니다. 같은 그립을 잡고 공을 던졌지만 투수마다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도, 각각 다른 그립을 잡고 공을 던졌지만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그립 및 던지는 방법으로 분류하는 공의 종류를 가리키는 '구종'과 달리, 이러한 개인의 신체 및 메카닉에 따라 발현되는 궤적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공의 종류를 '구질'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분류와 선수들의 인식이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김광현의 경우 검지와 중지를 살짝 벌려서 공을 잡고 던지는 스플리터 그립의 구종을 보유하고 있지만, 본인은 체인지업으로 부릅니다. (스탯티즈에서는 스플리터, 2itracking에서는 체인지업으로 분류함) 한현희의 경우에도 우타자 바깥으로 휘어나가는 변화구를 던지는데, 대체로 슬라이더로 칭해지지만 자신은 커브라고 부릅니다. (스탯티즈에서는 슬라이더로 분류하지만, 2itracking에서는 올해부터 커브로 분류함)

 

시작하기 전에 야구의 구종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는 것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가장 빠른 패스트볼(Fastball), 크게 변화하며 꺾이는 브레이킹볼(Breaking), 변화량보다는 타이밍을 뺏는 것을 중요시하는 오프스피드(Offspeed). 우리가 흔히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포심이나 투심 등이 패스트볼, 슬라이더와 커브 등이 브레이킹볼, 체인지업이나 스플리터 등이 오프스피드에 속합니다.

 

 

1. 포심 패스트볼(Four-Seam Fastball)

조상우의 포심, 2014년 5월 3일
안우진의 포심, 2023년 4월 7일
알칸타라의 포심, 2019년 5월 8일
오승환의 포심, 2012년 8월 25일

투수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는 포심 패스트볼은 야구의 제일 기본적인 구종입니다. 제구되는 포심을 던지지 못하는 투수는 1군에서 살아남을 수 없고, 상대 투수의 포심을 타격할 수 없는 타자 역시 1군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포심 패스트볼은 다른 구종과 비교했을 때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1) 가장 빠르다.

(2) 상대적으로 제구가 쉽고 폭투가 나올 확률이 적다.

(3) 투수들이 공을 던지는 레퍼토리의 기본이 된다.

(4) 타자들이 우선적으로 노리는 공이라 가장 얻어맞기 쉽다.

(5) 주로 초구 혹은 투수에게 불리한 카운트일 때 던지는 경우가 많다.

 

MLB 기준으로는 1880년까지 투수에게 언더핸드 피칭만 허용되었지만, 이후에 점점 투수가 팔을 올릴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나게 되어 1884년에는 어깨 높이에서도 던질 수 있게 허용되었습니다. 1893년에는 투수판에서 홈플레이트까지의 거리가 50피트에서 60피트 6인치(18.44m)로 늘어났는데, 따라서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투수들의 '패스트볼' 의 기원은 19세기 말에 시작되었다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흔히 우리가 '직구'라고 칭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투수의 손에서 떠나 포수 미트에 들어가기까지 수직으로 가는 공은 없습니다. 다만 덜 떨어질 뿐입니다. '직구'라는 용어를 '빠른 공'이나 '속구'로 대체하자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직구'라는 단어의 수명은 한동안 유지될 것 같습니다.

 

포심 패스트볼 그립

보통 위 사진과 같이 야구공의 솔기와 손가락이 만나는 부분이 네 곳이라 '포심'이라 부른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물론 모든 투수들이 위와 같이 그립을 잡고 던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삼성의 오승환 같은 경우 손바닥과 공 사이를 띄우고 엄지를 꺾어서 공을 받치는 그립을 구사했는데, 이와 같이 던지면 팔 전체의 근력을 활용하는 스윙이 만들어집니다. 이 외에도 손가락의 위치를 조정해서 제구나 스피드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검지와 중지를 붙이면 스피드, 띄우면 제구에 좀 더 도움)

 

상대적으로 다른 투수에 비해 회전수가 많고 덜 떨어지는 포심을 던져서 상대 타자에게 '공이 떠오르는 듯한' 착각을 주는 투수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성질의 포심을 '라이징 패스트볼' 이라고 합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름처럼 실제로 떠오르는 공은 아닙니다. 다만 타자의 뇌에서 예상한 궤적보다 덜 떨어지는 공을 떠올랐다고 착각했을 뿐입니다. 흔히 '회전수가 많거나 수직 무브먼트 값이 높은' 투수를 좋은 포심을 던진다고 이야기하는 케이스가 있는데, 이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투수의 포심과 그 특성이 달라서 타자의 예측을 어렵게 하고, 그로 인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포심이 좋은 공입니다.

 

과거에는 '공을 낮게 던져라'가 통설이었지만, 2010년대 타자들의 체격 조건이 향상되고 파워가 붙으면서 어퍼스윙으로 공을 퍼올리듯이 스윙하는 타자들이 많아졌습니다. 따라서 '낮은 존에 제구해라'는 명제는 오늘날에는 예전만큼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요즘은 타자의 어깨 높이까지 올라가는 하이패스트볼을 던져서 타자들의 시선을 흐트러뜨리고, 뒤이어서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를 구사해 헛스윙이나 범타를 유도하는 레퍼토리가 일반적입니다.

 

히어로즈에서는 조상우, 안우진, 김재웅 등이 좋은 포심패스트볼을 던지는 것으로 유명하며, 이승호·문성현·하영민 등의 투수도 수직무브먼트가 큰 포심을 던집니다. 특히 김재웅은 빠르지 않은 (평속 140km/h 안됨) 공을 던지는 스몰사이즈 투수임에도 1군 주축 불펜으로 활약하고 있는데, 이는 김재웅의 포심이 낮은 타점에서 공이 출발해 떠오르는 것 같은 착시 효과를 줌으로써 상대 타자들을 혼란에 빠뜨린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 투심 패스트볼(Two-Seam Fastball), 싱커(Sinker)

나이트의 투심, 2012년 9월 7일
최원태의 투심, 2018년 7월 5일
박희수의 투심, 2012년 6월 7일
정우영의 투심, 2022년 5월 15일

투심 패스트볼은 포심 패스트볼과 달리 야구공의 솔기와 손가락이 만나는 부분이 두 곳이라 '투심'이라 부릅니다. 이름과 같이 우리가 그냥 야구공을 잡고 실밥 두 개가 나란히 지나가는 교차점을 검지와 중지로 잡으면 그게 바로 투심의 기본적인 그립입니다. 선수에 따라 다르지만 투심은 (KBO 기준) 포심보다 3~5km/h 정도 느리고 조금 더 떨어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투심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1) 같은 손 타자의 몸쪽, 반대 손 타자의 바깥쪽으로 움직임

(2) 같은 손 타자에게는 위력적이지만 반대 손 타자를 상대로 약해짐

(3) 포심 패스트볼의 구위가 떨어지는 투수들이 대체재로 많이 선택함

(4) 땅볼 유도에 탁월하며, 포심과 달리 수직 무브먼트가 낮아야 (=공이 더 많이 떨어져야) 유리함

(5) 포심처럼 던져야 하지만 포심에 비해 제구가 어려움

 

투심을 던지는 투수들은 대체로 공 끝의 변화를 만들어 정타를 피하고 땅볼을 만드는 특징이 있어 팀의 내야수비가 받쳐주지 못하면 성적이 나오지 않습니다. 또한 투심은 반대 손 타자의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움직임 때문에 타자가 공을 더 오래 볼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투심 투수에게 반대 손 타자를 저격할 보조 구종이 없다면 우타-좌타 상대 스플릿이 크게 벌어집니다.

 

투심 외에도 투심과 그립이 같으면서 변화가 더 큰 싱커(Sinker) 혹은 싱킹 패스트볼(Sinking Fastball)이라는 구종이 있는데, 우투수 기준 우타자 몸쪽 아래로 더 떨어지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투심과 싱커를 엄격하게 구별하는 추세는 아니며, 둘은 사실상 같은 구종으로 봐도 문제가 없습니다. (심화1)

 

KBO리그에서는 2010년대 이전에도 던지는 투수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로 구사 비율이 높아진 구종입니다. '악마의 투심'이라는 별명이 있었던 좌완투수 박희수나 선수생활 말년의 송은범이 대표적인 투심 투수고, MLB를 경험했던 김선우나 서재응도 투심 구사에 능했습니다. 반면 MLB에서는 2010년대 초반 주로 사용되다가 그 이후로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줄어들었습니다.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까지 MLB에서는 피츠버그가 선도한 투심 등의 변형패스트볼 투구와 땅볼유도, 수비시프트의 적극적인 사용이 유행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타자들이 낮은 코스에 투구되는 변형패스트볼에 대응하기 위해 어퍼스윙 전략을 들고 나오면서 공을 띄우기 시작했고, 투심/싱커볼러들은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크게 감소했습니다. (심화2,3) 현 시대에 누가 가장 투심을 잘 던지는 MLB 투수인지는 여러 의견이 있겠으나, 투심으로 가장 유명한 투수라고 하면 자연히 누구나 한 명을 떠올릴 겁니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마스터' 그렉 매덕스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히어로즈는 2017~2022 6년 동안 투수들이 투심을 던진 비율이 리그에서 가장 높을 정도로 투심을 많이 활용하는 구단입니다. 장수외국인인 제이크 브리검(2017~2021)과 에릭 요키시(2019~) 역시 대표적인 투심 피처였고, 이 두 투수 이전에는 브랜든 나이트가 싱커로 유명했습니다. 나이트는 2011시즌 이후 직구 구속이 떨어져 대체할 구종을 찾다가 손승락에게 싱커 그립을 배우고 2012년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이후 2군 코디네이터로 일하면서 윤영삼에게 우타자 몸쪽으로 떨어지는 싱커를 전수했습니다.

 

이 외에도 최원태가 같은 시기 박승민 투수코치에게 '포심 대신 투심을 던지는 게 어떤가'라는 권유를 받고 투심으로 패스트볼을 바꿔 풀타임 선발투수가 되기도 했고, 경찰청 제대 이후의 김태훈이나 올 시즌의 김성진 등이 대표적인 투심 투수입니다.

 

심화1: 선수들이 말하는 투심과 싱커의 차이는 주경야덕의 다음 글을 참고하세요 - (링크)

심화2: 최근 싱커볼러들의 퇴조에 대해서는 야구공작소의 <싱커재판>을 참고하세요 - (링크)

심화3: 타자들의 반격에 맞선 싱커볼러들의 변화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하세요

<다시, 싱커를 던지기 시작하는 MLB> - (링크)

<역전재판 - 싱커의 역습> (링크1) (링크2)

 

 

3. 슬라이더(Slider)

김성진의 슬라이더(스위퍼), 2023년 5월 21일
김수경의 슬라이더, 2000년 8월 23일
김광현의 슬라이더
김병현의 슬라이더

슬라이더는 195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유행한 야구 역사에서 비교적 늦게 나타난 구종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던진 투수들은 있었을 겁니다) 횡적 움직임을 강조한 공이지만 종적인 변화도 결코 작지 않은 것이 슬라이더입니다. 팔꿈치와 손날이 몸 안쪽을 약간 보게 하고 '문고리를 잡고 돌리듯' 하는 느낌으로, 대체로 중지에 힘을 실어서 던집니다. 한국야구에는 60년대 초반 김영덕, 신용균 등의 재일동포 출신 투수들이 보급시켰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오승환의 슬라이더 그립(2006년)

슬라이더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같은 손 타자를 상대하는 대표적인 변화구

(2) 포심보다 10~13km/h 가량 느림

(3) 반대 손 타자를 상대로는 강점이 상당히 감소함

 

슬라이더는 횡으로 크게 변화한다는 특성 때문에 타자가 홈런을 노릴수록, 투수들의 구속이 빠를수록 그 강점이 커집니다. 타자는 주로 투수의 패스트볼을 예상하면서 타격 타이밍을 맞추는 경향이 있는데, 패스트볼이 빠르면 빠를수록 타자가 더 빠르게 타이밍을 맞춰야 하고 그렇게 될수록 변화가 큰 슬라이더가 더욱 효과적인 것이지요. MLB의 경우 2010년대 초반 15% 내외였던 슬라이더의 구사 비중은 최근에는 20%를 돌파했습니다. 하지만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빠르지 않은 KBO에서도 슬라이더의 비중은 예나 지금이나 높습니다. 대부분의 투수들이 슬라이더로 첫 번째 변화구를 택하는 경향이 있고, 또 대부분의 투수코치들이 슬라이더를 우선 가르치는 것이 그 원인입니다.

 

반면 구속이 그렇게 느리지 않다는 점은 때로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흔히 제구가 잘 되지 않거나 횡변화를 주는 데 실패해 존 가운데로 몰리는 밋밋한 슬라이더를 '행잉 슬라이더'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공은 직구 타이밍으로 나오던 타자도 충분히 대응해서 칠 수 있습니다. 또한 타자 중에는 투수가 던지는 슬라이더 특유의 회전(회전 방향과 실밥 때문에 가운데에 붉은 점이 생긴 것처럼 보임)을 순간적으로 알아채고 타격하는 선수도 있다고 합니다.

 

'각 구종이 날아올 때 타자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https://www.cbssports.com/mlb/news/look-visualizing-how-different-pitches-look-to-the-hitter/

슬라이더는 반대 손 타자에게는 존 바깥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는 움직임을 보이고, 그래서 스트라이크존 가운데로 들어오거나 반대 손 타자를 맞히기 쉬워 같은 손 타자에게 구사하는 것보다 그 효과가 떨어집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어퍼스윙을 하는 타자를 상대로 '백풋 슬라이더'라고 불리는 좌타자 뒷발까지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구사해 헛스윙을 이끌어내는 것도 주요한 전략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래의 두 짤은 같은 좌타자를 상대로 백풋 슬라이더를 던지는 우투수를 보여줍니다. 첫 짤에서는 슬라이더가 원하는 위치로 들어가지 않아 타자의 무릎을 맞혔지만, 두 번째 짤에서는 헛스윙을 이끌어내기에 적절한 코스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브리검(vs 한유섬)의 백풋 슬라이더, 2018년 9월 5일
브리검의 백풋 슬라이더, 2018년 9월 22일

투수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슬라이더는 보통 0볼 2스트라이크, 1볼 2스트라이크 등 투수가 앞선 카운트에서 상대 타자를 속이기 위해 던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이를 역이용하여 초구부터 존 안에 슬라이더를 던져 상대 타자를 교란하고 카운트를 잡거나, 슬라이더만을 던져서 상대 타자를 계속 피해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MLB의 경우 슬라이더의 수평 무브먼트(=횡무브먼트)가 크면 약한 타구를 유도할 가능성이 높고, 슬라이더의 구속이 빠를수록 헛스윙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심화4) 또한 최근에는 장타를 강조한 리그 메타 때문에 어퍼스윙을 하는 타자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이러한 성향의 타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최근에는 횡무브먼트를 극도로 강조한 슬라이더를 투수들에게 던지도록 육성하거나, 그런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수들을 찾아서 영입하는 것이 추세가 됐습니다. 이러한 추세를 따라 등장한(혹은 재발견된) 공이 바로 '스위퍼'입니다. (심화5) 홈플레이트를 쓸고 가는 듯한 움직임으로 스위퍼(Sweeper)라는 이름이 붙은 이 공은, 투심 그립을 잡고 커브를 던지듯이 구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슬라이더보다는 구속이 느린 대신 팝플라이를 유도하는 데 더 유용합니다. KBO에서는 페디와 김성진이 이 공을 던지는 것으로 잘 알려져있고, 일부 투수들도 장착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페디가 던지는 스위퍼 영상 - 1분 40초부터) MLB에서는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스의 투수들이 주로 많이 구사하고, LA 에인절스의 오타니 쇼헤이도 이 공으로 유명합니다. 스위퍼 외에도 슬라이더를 분류하는 여러 명칭이 있습니다. (심화6)

 

페디의 스위퍼

KBO에서 뛰어난 투수들 중 대부분 슬라이더를 구사하지 못하는 선수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지만, 특별히 더 슬라이더로 유명한 투수들이라고 한다면 '염슬라'라고 불렸던 1992년 신인왕 염종석, 2000년 다승왕으로 현대 왕조를 이끌었던 김수경, '조라이더' 조용준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2010년대에는 김광현이 리그에서 가장 슬라이더를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는 투수인데, 존 안으로 들어와서 카운트를 잡는 느린 슬라이더 그리고 존 보더라인에 걸치거나 바깥으로 나가면서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하는 빠른 슬라이더를 던집니다. (화7) MLB에서는 1970년대 초반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활동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좌완 스티브 칼튼과, 큰 체구에서 150km/h 후반의 불꽃같은 패스트볼을 내리꽂으면서 한 시대를 지배했던 좌완 통산 탈삼진 1위 '빅 유닛' 랜디 존슨이 대표적으로 유명한 슬라이더의 장인들입니다.

 

히어로즈 투수들을 살펴보면, 김시진 감독과 정민태 투수코치의 시대(2009~2012)에 주로 1군에서 뛰었던 유망주 투수들은 좋은 구위의 포심과 횡적인 움직임이 강한 슬라이더를 주요 레퍼토리로 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후 염경엽 감독과 손혁 투수코치가 함께 뛰던 시절(2015~2016)에는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의 구속 차이가 10km/h 이하로 얼마 나지 않는 '하드 슬라이더' (혹자는 커터로 분류하기도 함)의 장착을 주로 시도했는데, 대표적인 케이스로 2016시즌의 하영민과 이보근, 김세현 등이 있습니다. 그 해 신인왕을 차지했던 신재영 역시 사이드암 투수로서 두 가지 이상의 슬라이더를 섞어던지며 능숙한 유인구 제구력으로 선발 투수 자리를 꿰찼습니다. 현재는 특정한 슬라이더 움직임을 투수진 차원에서 강조하는 거 같진 않습니다만, 종적 움직임이 큰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수로는 안우진-최원태-이승호를, 횡적 움직임이 큰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수로는 김성진-김선기-장재영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심화4: 종슬라이더와 횡슬라이더 어느 것이 좋은가 - (링크)

심화5: MLB 구단들의 횡슬라이더 투수 육성 및 영입 방향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하세요

<양키스의 신무기 '훨리' 슬라이더> (링크)

<'다저스 슬라이더'에 대해> (링크)

<레이스가 특정한 슬라이더 무브먼트를 노리고 있는가?> (링크)

심화6: 일반적인 슬라이더보다 더 빠른 '하드 슬라이더', 횡적인 움직임을 억제하면서 크게 떨어지는 '종슬라이더' '자이로 슬라이더' 등이 있고, 슬라이더와 커터의 중간 움직임을 보이는 '슬러터'나 슬라이더와 커브의 중간 움직임을 보이는 '슬러브'도 있습니다. 미국의 트레이닝/피칭 센터인 '드라이브라인'에서는 슬라이더를 크게 (1) 커터 (2) 슬러터 (3) 자이로 슬라이더 (4) 일반 슬라이더 (5) 스위퍼 (6) 슬러브로 구분합니다. (각각의 슬라이더들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영상 링크)

화7: 김광현의 투구가 왜 까다로운지에 대해서는 다음 두 글을 참고하세요 - (링크1링크2)

 

 

4. 커터(Cutter) 혹은 컷 패스트볼

금민철의 커터, 2014년 4월 26일
손승락의 커터, 2014년 11월 10일
고우석의 커터, 2022년 9월 2일
리베라의 커터

커터는 야구 역사에서 가장 최근에 등장한 구종입니다. (스위퍼를 별도의 구종으로 보지 않는다면요) 커터의 기원에 대해서는 1950년대라는 설도 1980년대라는 설도 있지만, 커터를 본격적으로 알린 사람은 뉴욕 양키스의 레전드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라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할 겁니다. 커터(Cutter)라는 명칭은 반대 손 타자의 몸쪽으로 휘어들어가면서 배트 손잡이 가까운 부분에 맞아 배트를 부러뜨리는 특성에서 기인해 지어진 겁니다. 2000년대는 커터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MLB 투수들이 커터를 던졌습니다.

 

커터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닙니다.

(1) 포심보다는 살짝(5km/h 내외) 구속이 떨어지지만 같은 손 타자 반대 방향으로 살짝 휘는 편

(2) 포심과 슬라이더의 중간에 있는 구종이라고 할 수 있음

(3) 범타 유도에 용이함

 

커터는 포심 그립으로 슬라이더 스윙과 비슷하게, 혹은 슬라이더 그립으로 패스트볼의 스윙과 비슷하게 던지되 공을 놓을 때 중지에 힘을 줍니다. 보통 우투수가 좌타자 몸쪽으로 패스트볼을 던지면 존 가운데 쪽으로 휘어들어가는 위험성이 있고, 슬라이더를 던지면 깊게는 들어가지만 공이 느려 얻어맞기 쉽습니다. 그러나 커터는 좌타자 몸쪽으로 파고들면서 조금 더 빠르게 날아가고, 따라서 제구가 더 쉬우면서 타자에게 더 빠른 반응속도를 강제할 수 있습니다. 커터는 포심과 같은 팔스윙에서 나오고 초반 궤적이 비슷해 타자들은 직구라고 착각하고 배트를 휘두르지만, 타자가 구종을 인지할 수 있는 시간범위를 넘어서서 구질의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에 방망이 중심을 비껴나가게 됩니다. 따라서 안 맞으면 헛스윙이고 맞더라도 땅볼 유도에 유용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커터는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당연히 단점도 존재합니다. 일단 투수가 손끝으로 공을 던지는 감각이 뛰어나야 합니다. 잘못 구사된 커터는 느린 패스트볼 혹은 변화가 없는 행잉 슬라이더와 다르지 않고, 당연히 타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됩니다. 또한 대성하기도 어렵습니다. KIA 타이거즈의 간판 투수 양현종은 2010년 아시안게임에서 김시진 대표팀 투수코치(당시 넥센 감독)에게 커터를 배웠지만 결국 장착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들어와서는 고우석, 소형준, 최민준, 이승진, 류진욱, 신민혁 등 리그에 커터를 던지는 젊은 투수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심화8) 2010년대 중후반까지 외국인 투수를 제외한다면 능숙하게 커터를 구사하는 선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이 외에도 커터를 많이 던지면 타점이 내려가 포심의 회전력에 영향을 준다(김시진)라는 견해가 있으며, 포심과 슬라이더의 중간에 있는 커터의 특성상 장착을 시도하다가 포심과 슬라이더의 위력이 동시에 감소하는 투수들도 있었습니다.

 

히어로즈에서 커터를 구사한 주요 투수라고 한다면 포심 그립을 잡아도 커터성 움직임을 보였던 금민철도 있지만, 역시 손승락을 빼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손승락의 커터는 상하좌우로 큰 움직임을 보이면서 좌타자 몸쪽과 바깥쪽에 모두 유용하게 던질 수 있는 구질이었습니다. 손승락은 이 커터를 던지기 시작하고 2010시즌에 처음 구원왕을 차지했는데,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의 필요성을 느끼고 연구하던 도중 마리아노 리베라의 커터를 보고 독학으로 시도했다고 합니다.

 

※팁: 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서는 슬라이더와 커터를 구별해서 분류하고 있지 않습니다.

 

심화8: 고우석의 커터에 대해서는 <야구에 산다-제92구>를 참고하세요 - (링크) ()

심화9: MLB의 커터 유행에 대해서는 2012년 4월 인사이드MLB의 <MLB는 지금 '컷패스트볼의 시대'> 칼럼을 참고하세요 - (링크)

 

 

5. 커브(Curve)

송신영의 커브, 2015년 4월 19일
요키시의 커브, 2021년 5월 16일
김원형의 커브
윤성환의 커브

커브는 야구의 가장 기본적인 변화구로 19세기 중반까지 그 기원이 거슬러올라갈 정도로 오래 된 구종입니다. 직구와 20~30km/h 차이가 나는 커브가 나오면서 비로소 빠른 공과 느리고 변화하는 공을 섞어서 던지는 투수들의 투구전략 역시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예전만큼의 위상을 지니고 있는 구종은 아닙니다. 커브를 던질 때는 손날을 포수 방향으로 하면서 탑스핀을 주어 던지는데, 이때 직구를 던질 때와는 투구폼 차이가 나기 때문에 상대 타자에게 커브를 던진다는 사실을 간파당하기 쉽습니다. (심지어 평범한 야구팬이라도 투수가 커브를 던질 때 팔 움직임이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약점을 감추기 위해서는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해서 역시 마스터하기 까다롭습니다.

 

커브는 대체로 존 안에 집어넣어 상대 타자의 타이밍을 뺏거나 범타를 유도하는 방식과 존 아래로 떨어뜨려 헛스윙을 유도하는 방식 두 가지로 나누어 던질 수 있는데, 전자는 커브를 던지는 타이밍을 최대한 감추는 게 중요하고 후자는 낙폭을 충분히 주어 떨어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자는 어떤 카운트에라도 던질 수 있고, 후자는 주로 유리한 카운트에서 슬라이더와 마찬가지로 결정구처럼 사용합니다. 커브는 종적 움직임을 많이 보여서 타자의 배팅포인트가 선이 아닌 점으로 형성되고, 따라서 타자가 타이밍을 이미 뺏겼다면 컨택하기 어렵습니다.

 

커브 역시 종류가 많은데, 일반적인 커브보다 브레이킹이 많이 걸리고 빠르게 들어오는 '너클 커브' (검지를 구부려서 관절을 공에 찍어 던집니다) 90~110km/h 정도의 구속을 보이면서 상대 타자를 교란하는 '슬로우 커브' 등이 있고, 투수들이 강하게 던져서 130km/h 가량의 구속이 찍히는 커브를 '파워 커브', 종방향 움직임이 크게 강조되어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듯한 커브를 '12 to 6 커브'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파워 커브는 구속, 12 to 6 커브는 궤적에 따라 나눈 것입니다)

 

MLB에서는 배리 지토, 클레이튼 커쇼 등이 커브로 유명하고 KBO에서는 김상엽과 김진우가 파워커브를, 정민태가 슬로커브를 던지는 대표적인 투수들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김원형, 윤성환 역시 커브로 한 시대에 인상깊은 족적을 남긴 투수들입니다. 히어로즈에서 커브를 잘 던진 투수로는 대표적으로 송신영을 들 수 있습니다. 송신영은 2006년 장착했던 포크볼의 위력이 떨어지자 커브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가했고, 그 결과 70km/h대의 슬로 커브, 120~130km/h대의 두 가지 커브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2011년 클로저 손승락이 이탈하자 그 자리를 대체해 마무리로 활약했습니다. 최근에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선수생활을 한 좌완 에릭 요키시가 뛰어난 커브를 던졌습니다. 원래 미국에서 건너올 때까지만 해도 요키시의 두 번째 구종은 서클체인지업이었으나, 2년차인 2020시즌에 커브의 브레이킹이 향상되면서 상대 타자를 가리지 않고 던질 수 있는 구종으로 진화했고 그 결과 좌우타자를 모두 압도하는 성적을 내기도 했습니다. LG 시절에 봉중근에게 너클커브를 배운 정찬헌 또한 커브 구사에 능숙한 투수고, 최근에는 최원태가 정찬헌이나 켈리 등에게 커브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어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됩니다.

 

 

6. 체인지업(Changeup)

김동혁의 체인지업, 2022년 11월 1일
김재웅의 체인지업, 2020년 6월 6일
고영표의 체인지업
류현진의 체인지업

슬라이더가 같은 손 타자를 상대하는 최종병기라면 체인지업은 반대 손 타자를 상대하는 최종병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슬라이더와는 반대로 체인지업은 타자에게서 달아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체인지업은 직구와 같은 폼을 유지하며 같은 팔스윙으로 던지는 것이 관건인데, 손바닥에 공을 붙이거나 공을 던지는 중심축에서 공을 일부러 비껴잡는 등의 방식으로 직구보다 힘이 덜 전달되게 합니다.

 

이론상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모두 잘 던지는 투수는 같은 손 타자도 반대 손 타자도 잘 상대할 수 있지만, 두 구종을 모두 잘 구사하는 투수는 많지 않습니다. 보통 팀의 간판투수급이 되어야 두 구종을 모두 잘 던지는 것이 현실이고(그래도 한 쪽의 완성도가 훨씬 높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둘 다 잘 던지는 투수는 어느 팀에 가도 선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던지는 원리가 서로 반대라서입니다. '문고리를 돌리듯' 던지는 슬라이더와 달리 체인지업의 경우 손목을 안쪽으로 비틀어 던지는데 (이 손목을 돌리는 방향을 '외전' '내전'이라고 합니다) 보통의 사람은 어느 한 쪽으로 돌리는 것에만 더 익숙하기 마련입니다.

 

출처:&nbsp;https://thegrandblue.tistory.com/108

KIA 윤석민의 현역 시절 체인지업과 슬라이더의 움짤입니다. 위가 체인지업이고 아래가 슬라이더인데, 손목을 안쪽으로 비트는 움직임이 보이시나요? 단 모든 투수가 이렇게 체인지업을 던지는 것은 아닙니다. 체인지업은 슬라이더나 커브에 비해서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 구종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손목을 비틀지 않고 던지는 투수가 더 많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키움의 최원태 같은 경우에는 손목을 안쪽으로 비틀지 않고 직구와 동일한 원리로 던진다고 합니다)

 

체인지업도 수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원래 체인지업이라고 하면 검지-중지-약지 세 손가락을 공에 붙여서 던지는 '스리핑거 체인지업'이 일반적이었지만, 요즘에는 엄지와 검지를 OK 모양으로 공에 붙이고 중지-약지-소지를 붙여서 던지는 '서클 체인지업'이 대세입니다. (현재 체인지업을 던지는 투수들은 대부분 서클체인지업을 사용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 밖에도 스타트렉에 나오는 벌칸족에서 유래해 중지와 약지를 벌려서 잡고 던지는 '벌칸 체인지업'도 있는데, MLB에서 마지막으로 사이 영 상을 수상한 마무리 에릭 가니에의 주무기였습니다. KBO에서는 고영표가 포심 그립으로 체인지업을 잡고 던지고, 뷰캐넌·곽빈·함덕주 등이 중지와 약지를 벌려서 잡는 벌칸 체인지업을 구사합니다.

 

MLB에서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샌디에이고의 간판마무리 '지옥의 종소리' 트레버 호프만이 손바닥 전체로 공을 잡아던지는 '팜볼'이라는 특유의 체인지업으로 유명합니다.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MLB를 지배한 선발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2000년대 초반 미네소타의 에이스였던 요한 산타나 또한 서클체인지업의 대가들이었습니다. KBO에서는 한화 이글스의 프랜차이즈 투수로 MLB까지 진출한 류현진의 서클체인지업이 가장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히어로즈에서는 김성민-이승호-김재웅 같은 좌완 투수들이 체인지업을 구사하면서 우타자 상대 약점을 극복하고 있고, 우완 최원태도 좋은 서클체인지업을 던집니다. (최원태 체인지업 그립 영상 링크)

 

 

7. 포크볼(Forkball), 스플리터(Splitter) 혹은 스플릿-핑거 패스트볼

밴헤켄의 포크볼
김상수의 포크볼, 2019년 6월 14일
서진용의 포크볼
조정훈의 포크볼

포크볼은 공을 검지나 중지 사이에 끼워서 곧게 가도록 던지고, 마지막에 뚝 떨어지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구종입니다. 1910년 조 부시라는 선수가 고안했다는 게 일반적인 설이지만, 1905년 마이크 린치라는 외야수가 공을 갖고 놀다가 개발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검지와 중지를 넓게 벌려서 잡고 손목에 스냅을 주어서 던지는 공인데, 따라서 검지와 중지 사이에 공을 끼울 수 없으면 던질 수도 없습니다. 과거 OB에서 뛰었던 이광우는 이 공을 던지기 위해 손가락 사이를 찢는 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

 

포크볼의 근연종이라고 할 수 있는 스플리터는 1980년대의 공으로 20세기 초 포크볼을 개량한 공입니다. 포크볼과 달리 공을 더 손바닥 안쪽으로 잡고 손가락을 벌려서 잡는 폭이 좁은 것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포크볼이 더 큰 각도로 느리게 떨어지는 반면 스플리터는 구속이 더 빠르고(패스트볼보다 10km/h 내외 느림) 낙차는 덜합니다. 스플리터를 대중화한 인물은 로저 크레이그로, 이 공을 배워 1980년대 MLB를 지배했던 투수가 휴스턴의 에이스였던 마이크 스캇입니다.

 

포크볼과 스플리터는 엄밀히 따지면 다른 공이긴 합니다. 공을 던지면서 마지막 순간 손목에 힘을 주고 탑스핀이 걸리면 포크볼, 그렇지 않고 일반적인 백스핀이 걸리면 스플리터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두 구종을 그립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스플리터는 손가락을 벌려서 공을 잡되 포크볼보다는 조금 더 그 폭이 좁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포크볼' '스플리터'라고 부르는 공들은 대부분 스플리터고, 일상에서 이를 엄격하게 구별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심화10) 저도 두 구종의 명칭을 혼용해서 사용합니다.

 

현재 MLB에서는 전통적인 '포크볼'을 던지는 투수는 멸종했고, 스플리터를 던지는 투수도 많지 않습니다. 스플리터는 아래로 떨어지는 움직임 말고도 반대 손 타자에게서 달아나는 움직임 또한 큰데, 체인지업이나 변형패스트볼로 그 역할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어서죠. 반면 NPB에서는 웬만한 선수들이 대부분 포크볼 혹은 스플리터를 구사할 줄 알아, KBO의 슬라이더와 비슷한 입지에 놓여있다고 합니다. KBO에서는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진들이 주로 포크볼 혹은 스플리터를 많이 던지는데, 빙그레-한화의 선발투수로 활약하다가 롯데로 이적한 이상목이 포크볼을 전수하면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사례가 2009년 롯데의 에이스였던 조정훈입니다. 태평양-현대에서 뛰면서 1994년 KBO 최초 40세이브를 돌파했던 통산ERA 3위 투수 정명원도 포크볼로 유명한 투수였습니다.

 

히어로즈에서는 윤영삼-조성운-김태훈-김상수-이보근 등 불펜투수들이 주로 포크볼 혹은 스플리터를 구사했는데, 이 중에서는 김상수의 완성도가 가장 높았습니다. 그러나 포크볼로 가장 유명한 투수는 뭐니뭐니해도 2012시즌부터 2017시즌까지 넥센에서 활약한 좌완 선발 앤디 밴 헤켄입니다. 밴 헤켄은 세 종류의 공을 던졌는데, 첫 번째는 리그 평균적인 스플리터와 비슷한 공, 두 번째는 다른 투수들보다 30cm 이상 떨어지는 낙차가 큰 공, 세 번째는 탑스핀 성질을 가지고 있어 커브와 비슷하게 움직이는 공이었습니다. (심화11)

 

※팁: 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서는 포크볼과 스플리터를 구별해서 분류하고 있지 않습니다. 2itracking에서는 둘을 구별하고 있지만, 스플리터를 던지는 투수들을 따로 분류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구별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심화10: 포크볼과 스플리터의 차이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고하세요 - (링크) (원문)

심화11: 밴 헤켄의 세 가지 포크볼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들을 참고하세요

<'마구'를 던지는 투수, 앤디 밴 헤켄> (링크)

<밴헤켄, 선발 14연승 신기록... '3색 포크볼' 분석> (링크)

 

 

8. 너클볼(Knuckleball)

마일영의 너클볼
피어밴드의 너클볼
노경은의 너클볼
R. A. 디키의 너클볼

너클볼은 '제구할 수 없고, 가르칠 수 없고, 칠 수 없고, 잡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구종입니다. 공의 회전을 극도로 죽여서 공 주변의 난기류에 따라 공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을 지니는 것이 특징입니다. 원래는 손가락 관절로 찍어서 공을 잡았지만, 오늘날에는 손가락 끝으로 잡는 법이 더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너클볼 투수들은 손톱을 항상 짧게 깎고 다니면서 관리합니다) 너클볼은 홈플레이트까지 2회 아래로 회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데, 그 이상 회전하면 그냥 느린 구속의 배팅볼이 됩니다.

 

보통 20세기 초반의 에디 시콧을 최초의 너클볼 투수로 보지만, 1952년부터 1972년까지 선수생활을 하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중간계투인 호이트 윌헬름을 너클볼의 시조라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윌헬름의 의의는 너클볼을 커리어 시작부터 던진 최초의 투수라는 점입니다. 이후 필 니크로, 찰리 허프, 팀 웨이크필드, R. A. 디키 등의 투수가 너클볼의 계보를 이어갔고, 현재는 메이저리그에서 너클볼을 던지는 투수가 없습니다. (너클볼을 던지는 투수가 워낙 희귀한 탓에, MLB의 너클볼 투수들은 팀이 달라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고 자신이 부진한 성적을 거둘 때면 선배를 찾아가 조언을 받기도 했습니다) KBO에서는 마일영이 던졌고, 이후 옥스프링과 채병용, 피어밴드, 노경은 등이 너클볼을 던진 적이 있을 뿐 전문 너클볼러는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너클볼의 최대 무기는 '스윙하고 잘 맞기를 기도해야 하는' 불규칙성입니다. 매번 궤적이 다르기 때문에 타자들이 예측하고 스윙한다고 해서 그대로 맞는다는 법이 없습니다. 또한 팔에 부담이 없기 때문에 긴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대표적인 너클볼 투수였던 필 니크로와 팀 웨이크필드는 각각 40대 후반, 40대 중반까지 선수로서 활약했습니다. 투수들이 자신의 선수생명이 다했다고 느끼면 마지막으로 너클볼 구사에 도전해보는 것도 드문 광경은 아닙니다.

 

그러나 상대가 너클볼을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은 공을 잡아야 하는 포수도 궤적을 예측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히어로즈에서 뛰었던 라이언 피어밴드는 넥센에서 KT로 팀을 옮긴 다음에야 비로소 너클볼을 실전에서 던질 수 있었는데 당시 합을 맞췄던 포수 장성우가 너클볼을 특별히 잘 잡기 때문이었습니다. MLB에서는 포수가 포수 미트 대신 소프트볼용 미트를 끼고 경기에 임했다거나, 너클볼 투수의 전담 포수 역할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백업 포수를 트레이드했다가 공을 잡아줄 포수가 없어 다시 데려왔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또한 빠른 공은 필연적으로 많은 회전수가 동반되기 마련인데, 상대가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정 구속으로 날아가는 공을 회전수를 억제하면서 던져야 하는 어려움도 너클볼을 던질 때 겪는 또다른 어려운 점입니다. 너클볼을 마스터하기 위해서는 다른 구종의 구사를 거의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의문점이나 글의 오류에 대한 지적은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김에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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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게 된 계기

0. 서론

저는 야구를 잘 모릅니다. 평소에 제가 쓰는 글이나 트윗들을 본 사람들은 '새끼 자식 녀석 평소에는 온갖 잘난 척을 다 하더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아무튼 잘 모릅니다. (진심임) 한때는 야구를 잘 안다고 느낀 순간도 있긴 했지만,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야구의 세계는 참으로 크고 넓으며 심지어 내가 한 발짝 따라잡았다 싶으면 두 발짝 멀어지기까지 하는 광활한 우주와도 같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때로 저는 야구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공포를 마주합니다. 내가 쭉 좋아하던 스포츠가 내가 이해하지 못할 영역까지 확장되는 것이 무척이나 두렵습니다. (최근에 그런 공포를 느낀 주제는 SSW였는데, 중요한 얘기는 아니니 넘어가겠습니다)

 

그러다가 위의 질문을 받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공포의 허들이 나와 다른 사람도 있을 수 있겠구나! 야구팬이라면 가끔 까먹기도 하는 사실입니다만 야구는 상당히 복잡한 스포츠입니다. 가령 축구를 예로 들면, 축구 규칙에서 처음 마주하는 장벽은 기껏해야 오프사이드 정도입니다. 하지만 야구 규칙에서는 그런 걸림돌이 수도 없이 나타납니다. 아무리 오래된 야구광이라도 인필드 플라이, 보크, 낫아웃 등을 익숙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마련한 시리즈, [야구참고서]입니다. (애인이 작명 아이디어를 제공했습니다) 잭 햄플의 2007년 저서 '야구 교과서(원제: Watching Baseball Smarter: A Professional Fan's Guide for Beginners, Semi-experts, and Deeply Serious Geeks)'는 15년 이상 지났지만 아직도 야구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참고할 만한 좋은 책 중 하나입니다. 교과서가 있으면 참고서도 있어야겠지요. 그런 참고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글을 준비했습니다. 꼭 봐야 하는 글은 아닙니다. 이미 야구에 대해 지식이 풍부하신 팬이라면 여러 오류를 발견하면서 웃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야구를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한 팬이라면 틀림없이 야구를 더 알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목표는 생후 3개월 된 웰시 코기도 글을 보고 나면 '커브 커브, 포심 포심' 하고 짖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읽으시는 분이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건 글을 쓴 제 책임이 100%입니다.

 

제 블로그 글은 대체로 '나무위키에 내 기억을 위탁할 수 없다'는 목적으로 쓴 것이라 평어체지만, 이 시리즈는 다른 사람이 보라고 쓰는 의도가 99%기 때문에 경어체를 사용하고자 합니다. 좀더 편한 투로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약간이나마 있습니다.

 

 

1. 투수들은 어떤 공을 던지는가

프로야구 1군에서 뛰는 투수들은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구종을 '던질 줄은' 압니다. 하지만 '던질 수 있다'는 것이 곧 '잘 던진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마음먹은 곳으로 공이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고, 원하는 코스로 공이 가더라도 어떤 구종을 던지는지 상대 타자에게 간파당할 수도, 공의 무브먼트가 충분하지 않아 안타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투수의 가장 기본적인 레퍼토리는 패스트볼-슬라이더-체인지업-커브입니다. (물론 여기에 몇 가지 기출변형으로 다른 구종들이 더해지거나 제외되기도 합니다) 선발투수라면 대체로 패스트볼을 포함해서 세 가지 구종, 불펜투수라면 대체로 패스트볼 및 나머지 하나의 구종을 더해(보통 슬라이더가 많습니다) 두 가지 구종을 괜찮게 던진다면 1군에 정착할 수 있습니다.

 

포심 그립

 

2. 투수들은 언제 특정 구종을 던지는가

투수들이 언제 특정 구종을 던지는지 명확히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몇 가지 경향성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1) 초구는 대체로 패스트볼(포심 혹은 투심) 계열의 공을 던질 가능성이 높다.

(2) 카운트가 투수에게 유리하면(0볼 2스트라이크, 1볼 2스트라이크 등) 변화구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

(3) 반대로 카운트가 투수에게 불리하면(2볼 0스트라이크, 3볼 0스트라이크 등) 패스트볼을 던질 가능성이 높다.

(4) 파워가 없는 타자 상대로는 가운데-몸쪽으로 찍어누르는 패스트볼을 많이 던지고, 파워가 있는 타자 상대로는 몸쪽으로 깊게 파고드는 패스트볼과 바깥으로 달아나거나 떨어지는 변화구를 함께 던진다.

(5) 같은 손 타자에게는 슬라이더로 유인구를 던지고, 반대 손 타자에게는 체인지업으로 유인구를 던진다.

 

당연히 위에 열거한 항목들은 '상대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지, '100% 그렇다'는 진술이 아닙니다. 가령 제구에 자신이 있는 투수라면 3볼에 몰려도 스트라이크존 바깥쪽에 걸치도록 공을 던지면서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파워가 있는 타자를 상대하거나 병살을 유도해야 할 경우에 투수가 초구부터 변화구를 던지면서 승부할 수도 있고요. 반대 손 타자에게도 슬라이더를 던질 수도 있습니다.

 

 

3. 중계방송을 보면서 구종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세 가지를 보면 됩니다. 구속, 움직임, 상황.

 

첫 번째는 구속입니다. 올해 KBO 투수들의 포심 평균 구속은 143.5km/h입니다. 이것보다 빠른 공이 변화구일 확률은 높지 않겠죠. 물론 아까 얘기했듯이 야구에서는 100%가 없습니다... 가끔 140km/h 중반대의 슬라이더를 던지는 생태계 파괴종들이 등장하는데, 그런 예외들까지 얘기하면 너무 복잡하니까 일단 넘어갑니다. 다른 변화구의 리그 평균 구속은 다음과 같습니다. 슬라이더 132.2km/h, 체인지업 128.9km/h, 커브 121.0km/h입니다.

 

KBO 투수들 몇 명의 구종별 구속을 모아놓은 자료입니다. (※후라도와 페디만 2itracking 기준, 나머지는 스탯티즈 기준입니다 / 페디가 던지는 '커터'는 실제로는 '스위퍼'입니다) 대체로 포심 구속에서 10~14km/h 차이가 나는 것이 슬라이더, 그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느린 것이 체인지업, 그보다도 확실히 느린 것이 커브라는 점을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두 번째는 움직임입니다.

포심/투심 - 우리가 중계방송을 보면서 '곧게 간다'고 인식하는 빠른 공은 대체로 포심 혹은 투심입니다. 같은 손 타자의 몸쪽으로 공이 휘는 '테일링' 무브먼트를 중계방송에서 확인할 수 있는 투수들도 있습니다.

슬라이더 - 투수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같은 손 타자 바깥쪽으로 달아나는 느낌이고, 종으로도 횡으로도 움직임이 큽니다.

커터 - 패스트볼 계열과 슬라이더의 중간 움직임을 보입니다. 같은 손 타자 바깥쪽으로 살짝 휘는 느낌입니다.

체인지업 - 같은 손 타자 몸쪽 혹은 반대 손 타자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커브 - 같은 손 타자 기준으로 바깥쪽으로 떨어지지만, 슬라이더와 비교하면 대체로 종적 움직임이 더 큽니다.

스플리터 - 수직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도 있지만, 반대 손 타자의 바깥쪽으로 휘어져나가는 움직임 또한 동반됩니다.

 

구종별 움직임은 다음 게시물에서 구종별 설명과 함께 첨부된 움짤에서 더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단락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세 구종만 구별해보는 연습을 해보겠습니다.

출처: 트위터 @PitchingNinja 2022년 8월 19일 트윗
출처: 트위터 @PitchingNinja 2022년 9월 8일 트윗

움짤의 주인공은 제이콥 디그롬(Jacob deGrom)입니다. 첫 짤에서는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그 다음 짤에서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던지고 있습니다. 짤마다 두 구종을 구별하실 수 있으시겠죠?

 

세 번째는 상황입니다. 위에 말한 '투수들은 언제 특정 구종을 던지는가'를 다시 떠올려봅시다. 지금 맞서고 있는 타자는 중심타선에 있는 파워히터인가요, 아니면 별볼일 없는 9번 타자인가요? 좌타자인가요, 우타자인가요? 주자가 루상에 있나요? 포수는 블로킹에 능숙한 편인가요? 이렇게 현재의 상황들을 종합해서 인지하고 있다면 현재 마운드에 있는 투수가 어떤 구종을 던질지 대략은 감을 잡을 수 있고, 또 실제로 공을 던졌을 때 무슨 구종인지 얼른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추가하자면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지는 선수인지 미리 알아두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SSG의 서진용이라면 패스트볼(61.9%) 아니면 스플리터(37.3%) 두 구종 외에는 거의 던지지 않습니다. KT 주권 역시 세 번째 구종을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주력 두 구종이 차지하는 비율이 큰 투수입니다. (2022년 기준 패스트볼 34.1% 체인지업 58.7%) 이런 투수들은 구종을 구별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4가지 구종을 20% 이상 비율로 구사하는 삼성 수아레즈나, 5가지 구종을 모두 일정 비율 이상으로 던지는 LG 켈리 혹은 키움 후라도라면 한번에 무슨 공을 던지는지 화면으로 파악하기는 힘듭니다.

 

구종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아직 감이 오지 않는다면 베이스볼 서번트(Baseball Savant)의 미니게임 'Guess the Pitch Type'을 추천합니다. (링크) 투수들이 던지는 공의 비디오를 돌려보면서 이 투수가 방금 던진 구종이 어떤 것인지 골라보는 게임입니다. (포심, 싱커, 커터, 스플릿 핑거 패스트볼,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브 총 7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위에 말한 요소들을 바탕으로 연습해본다면 금방 익숙해지실 겁니다.

 

(다음 편에 계속...)

Posted by 김에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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