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키움 히어로즈

어제 키움 히어로즈는 KIA 타이거즈와 포수 주효상을 내주고 KIA의 2024년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을 받는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원래 좋아하지 않았던 선수라서 처음에는 만세! 를 불렀지만 하루가 지나니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을 거 같아 또 끄적끄적해본다.

 

 

1. 의외의 강점들

주효상은 2016 신인드래프트에서 히어로즈에 1차 지명되었던 선수다. 문제의 2016 드래프트는 히어로즈 역사상 최악의 드래프트로, 이 중에 1군이라도 밟아본 선수는 주효상을 제외하면 2차 5라운드에 지명된 투수 유재훈과 2차 8라운드에 지명된 외야수 채상현뿐이다.

 

원래 외야수로 뛰던 주효상은 고2때 포수를 시작하여 빠른 성장세를 보였는데, 특히 타격에서 중장거리 타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고 포수로서는 팝타임이 짧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명 이후 2년차인 2017시즌에는 박동원을 대신해 상당한 시간을 선발로 출장했지만 공수 모두에서 수준 이하라는 것만 밝혀지며 악평을 듣다가, 2018시즌 박동원의 성폭행 연루 사건 때 백업 포수로 나서면서 볼배합 등 포수로서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이며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승선했다. 하지만 이후 삼성 포수였던 이지영이 삼각트레이드로 이적하면서, 2019-2020 두 시즌 동안에는 간혹 브리검이나 한현희의 전담포수를 맡는 정도에 그치다가 2021시즌 초 군에 입대했다.

 

주효상의 강점을 살펴보면 일단 첫 번째로 타격을 꼽을 수 있겠다. 1군에서는 405타석에서 .203 .279 .267에 그쳤지만, 2군 529타석 .303 .419 .458의 기록은 KIA의 포수 유망주인 신범수(763타석 .275 .349 .399) 한준수(441타석 .301 .354 .410) 권혁경(193타석 .285 .358 .448)보다 조금 더 좋다. 군대에 가기 전 마지막 시즌이었던 2020시즌에도 101타석에서 .190 .296 .238에 불과했지만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만드는 능력과 볼넷을 얻는 능력은 어느 정도 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2018-2021 프레이밍 득점 합산, 출처는 본문에

 

두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장점은 프레이밍이다. 주효상의 수많은 낮은 존 덮밥을 보던 히어로즈 팬들은 '이게 무슨 개소리냐'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4년간 프레이밍 득점 수치를 보면 (출처 링크) 주효상은 -7.4점으로 이는 4년간 KIA에서 뛰던 김민식(-16.7) 한승택(-19.4) 그리고 새로 합류한 박동원(-27.5)보다도 좋은 수치다. (박동원은 저 수치에서 매년 하위권을 찍었기 때문에,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블로킹 역시 괜찮다. 2017-2020 4년 동안 Pass/9 수치를 보면 주효상의 블로킹은 0.579(342이닝)-0.442(366.2이닝)-0.136(66이닝)-0.376(191.1이닝)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선되고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한승택의 Pass/9는 지난 3년간 0.618(597이닝)-0.397(589이닝)-0.362(299.2이닝)이며, 지난 5년간 KIA 포수진의 Pass/9는 0.427에서 0.624를 오갔다. 즉 블로킹에서 마이너스를 만들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도루저지도 나쁘지 않다. 2020년에는 191.1이닝 동안 39.1%의 도루저지율을 기록했다. (KBO 공식사이트 기준) 지난 3년간 박동원의 도루저지율이 20.0%-25.5%-35.5%이며, 한승택은 22.2%-35.6%-29.2%이다.

 

 

2. 치명적인 약점

여기까지 얘기하면 '그러면 이렇게 괜찮은 선수를 대체 왜 트레이드한 거냐'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주효상은 포수 경력이 너무 짧다. 그가 프로에 입단하기 전까지 포수를 경험해본 시간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중학교 때부터 포수를 맡았던 선수들조차 프로에 들어오면 어느 정도 쓸 만한 선수로 성장하기까지 최소 5년은 걸리는 게 현실이다. 지금 20대 중반 아래 포수들 (좀더 심하게 얘기하면 20대 전체조차도) 중에서 팬들에게 대단한 인상을 남긴 선수는 리그 전체에서도 찾아보기 드물다. 게다가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군대를 현역으로 다녀왔기 때문에 그 커리어마저 연속성이 없다는 거다. 2020시즌 2군에서 주효상은 지명타자로 적지 않은 경기에 출장했는데, 이는 히어로즈에서도 주효상이 포수 포지션을 유지할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지 않았나 의심할 수 있는 사례다.

 

요새야 군대를 현역으로 다녀오는 야구선수들이 많아 이 문제가 별것 아니라 느껴질 수 있겠지만, 10개 구단 1,2번 포수 중에서 군대를 현역으로 다녀온 선수는 아무도 없다. 못 믿겠으면 직접 세어봐도 좋다. 그래서 나도 항상 '박동원과 이지영이 있으니 포수 세대교체는 좀더 어린 친구들에게 맡기고 주효상은 1루수나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꾸는 게 옳다'라고 주장해왔다. 어제 페잉에는 '주효상은 4-5라운드급이라 무조건 이득인 트레이드다' 라고 썼는데 생각해보니 그 정도는 아닌 거 같고... 그래도 한 3-4라운드급은 되지 않을까? 2라운드를 반대급부로 받아온 것은 키움 입장에서 이득이면 이득이지 손해는 아니다.

 

군복무시절(2021년 9월) TJS 경력이 있는데 투수도 아닌데 수술한 게 왜 이리 많이 언급되는지 좀 의아하다. 야수의 토미존 수술이 크게 의미가 있었던가? 그 외 워크에식이 안 좋다느니 술을 좋아한다느니 여성팬에게만 사인을 해준다느니 그런 이야기들이 많은데 확인되지도 않는 사항들을 굳이 단점으로 열거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좀 4차원적인 면이 있어보이기는 하는데 어차피 과묵한 선수들보다는 자기 캐릭터가 확실하고 살짝 또라이같은 선수들이 성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크게 문제는 없겠다.

 

 

3. KIA에서 데려간 이유는

장정석 단장이 감독 시절 직접 써본 포수라 어느 정도 신뢰가 있었기 때문인 듯 하다. 일단 포수가 가능하기만 한다면 주효상은 3번 포수로서는 상당히 괜찮은 선택이고, 만약 백업 포수 수준의 수비력에 머물러도 추후 타격의 발전이 있다면 절망적으로 타격을 못하는 한승택은 무조건 밀어낼 수 있을 거다. 포수가 아닌 1루수나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꾸더라도 공격력에서 발전할 여지가 있으므로 긁어볼 수 있는 로또고.

 

박동원의 다년계약 협상 기간과 겹쳐서 다소 분위기가 험악하긴 한데, 어차피 박동원급의 포수가 뻔히 FA 대박이 예상되는 상황에 시즌 중에 장기계약을 맺어줄 일은 거의 없으므로 주효상 트레이드로 박동원과 KIA의 계약은 무산되었다고 단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 상황을 대비한 보험의 측면이 0%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강민호가 있는데도 작년 김태군을 심창민과 맞바꿔서 데려온 삼성 라이온즈의 사례도 있지 않았나. 만약 박동원과 계약한다면 한승택-주효상이 백업으로 앉게 되므로 안정적이고, 추후 주전 경험도 있는 한승택을 트레이드카드로 쓸 수 있는 선택지도 만들 수 있다. 반면 박동원 혹은 그에 걸맞는 레벨의 FA 포수와 계약하지 못하게 된다면 자동적으로 주효상은 주전을 노리는 백업 포수 레벨로 올라가는 것이고.

 

지금까지 장정석 단장이 한 무브를 정리해보면 이민우-이진영-김민식-김태진-한승혁-장지수 및 신인지명권 2장을 내주고 김도현-김정빈-임석진-박동원-변우혁-주효상을 데려왔다. 신인지명권 2장을 함께 태워서라도 결코 A급은 되지 않을 견적이 확실히 나온 선수들이나 성장이 제한된 선수들은 내보내고, 대신 든든하게 뎁스를 확충하면서 하이리턴이 가능할 선수들을 영입했는데... 팬들 사이에서는 악평이 자자하지만 방향성이 뚜렷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게까지 나쁜 트레이드들은 아니지 않았나 싶다. 물론 시간이 좀더 지나봐야 결과를 알게 될 테고, 무엇보다도 박동원을 못 잡으면 시즌 중에 현금과 신인지명권까지 더해가면서 트레이드를 한 의미가 크게 퇴색된다는 점은 변하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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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키움 히어로즈

1. 패턴

2번 전병우DH-5번 김태진1B-9번 김혜성2B이라는 파격적인 라인업을 이어간 5차전, 1회 전병우의 볼넷-이정후의 2루타 이후 김태진의 2타점 적시타로 먼저 2점을 득점했다. 2회에도 김광현을 무사 만루로 흔들고 김준완의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더했다. 6회 송성문의 볼넷-신준우의 희생번트 이후 김혜성의 안타로 (뇌주루가 있었지만 상대 실책으로 2루에서 살기까지 하며) 4점째까지 무난하게 득점. 하지만 안우진이 6이닝 무실점으로 막고 내려간 마운드가 흔들렸다. 7회말 양현은 선두타자 안타에도 불구하고 이후 3타자를 모두 범타처리하며 물러났지만, 8회말 1사 최지훈의 타석에 신준우의 유격수 실책이 나온 후 김재웅이 최정에게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투런 홈런을 맞으며 4-2까지 점수 차가 좁혀졌다. 9회말 최원태가 선두타자 박성한을 상대했으나 아쉬운 볼 판정 끝에 볼넷으로 내보냈고, 이어서 최주환의 안타 이후 대타 김강민의 역전 끝내기 스리런이 터지며 그대로 패배.

 

6차전 역시 후반기 내내 기용하던 1번 김준완을 포기하고 1번 임지열DH-2번 전병우1B라는 또 하나의 파격을 실행했으나, 다시 실책이 발목을 잡았다. 3회 임지열의 선제 투런으로 폰트에게 실점을 안기며 앞서나갔으나, 3회말 최지훈의 우중간 안타 때 푸이그가 3루 다이렉트 송구로 최지훈에게 2루를 허용하며 1사 2,3루가 되었다. 애플러가 최정을 인사이드 커브로 (반대투구였지만 전혀 손쓸 수 없는 코스였다) 잡으며 위기를 넘기는 듯 했으나 한유섬의 1루수 땅볼 때 전병우의 토스가 높게 들어가 2루 주자까지 포수가 백업을 위해 비운 홈플레이트를 밟으며 동점. 김휘집의 포구 실책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실점이 늘어나진 않았으나, 5회초 출루를 위해 기용한 박준태 대타로 수비포지션이 김혜성SS-김태진2B-박준태LF로 바뀐 것은 다른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6회초 이정후가 다시 앞서나가는 솔로 홈런을 터뜨렸지만, 리드를 지키기 위해 올라온 투수 요키시가 맞붙은 첫 타자 라가레스는 2루수 김태진의 실책으로 살아나갔고, 이후 박성한의 타석 때 이지영의 포일로 2루까지 진루. 최주환의 희생번트 이후 김성현의 좌중간 2타점 2루타가 터지며 경기는 또 다시 SSG가 앞서나갔고, 그대로 시리즈까지 끝나버렸다.

 

우세를 장담하기 어려운 매치업에서 안우진과 애플러 두 선발투수가 역투했고 자신의 임무를 달성했으며, 전력상 앞서는 상대팀을 상대로 매번 리드를 잡았으나 그때마다 번번히 수비실책으로 경기가 터진 점은 정말 가을야구 히어로즈의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그나마 예전과의 차이라면 강정호-김하성은 그럴 줄 몰랐던 놈들이 그랬던 거고, 김휘집-신준우는 그럴 줄 알았지만 넘어가주길 바랐는데 결국 저질렀다는 정도일까. 2019년 포스트시즌에서 히어로즈 수비진은 11경기 11실책을 했는데,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는 총 15경기에서 22실책을 했다. (김휘집 5실책, 신준우 4실책) 전반기 선두 SSG와 다퉈도 될 정도로 막강했던 수비능력은(DER 기준) 후반기에는 시즌 전체에서 독보적인 꼴찌를 한 롯데 수비진과 별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붕괴했으니, 포스트시즌에 잘 넘어갔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으리라.

 

여기에 시즌 내내 보강이 없었던 불펜진은 막판에는 윤정현과 김선기가 셋업맨 자리에서 등판할 정도로 붕괴했으나, 가을야구에는 드디어 플레이오프부터 정신을 차린 최원태가 김재웅-김동혁의 필승조에 합류하며 승리공식을 만드는 듯 했다. 그러나 2019 조상우를 뛰어넘는 무리한 등판일정에 김재웅과 최원태의 어깨는 피로를 견디지 못했고, 결국 5차전 최정에게 걸리는 행잉슬라이더와 김강민의 방망이에 걸리는 0-2 카운트에서의 높은 슬라이더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2. 한 해의 끝

2014년이 끝나고 나서는 안타까우면서도 내년에 다시 이 자리에 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2019년이 끝나고 나서는 이 화려한 멤버로도 안 되는가 하는 참담함이 있었다. 올해는... 그냥 지긋지긋하다. 준우승이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 양키스의 前 구단주였던 조지 스타인브레너의 명언 몇 개만 인용해보자.

 

-살아있는 것 다음으로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하는 것이다. (Winning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my life, after breathing. Breathing first, winning next.)

-2등은 그냥 첫 번째 패배자다. (Second place is really the first loser.)

-난 지는 걸 증오한다. 정말로 증오한다. (I hate to lose. Hate, hate, hate to lose.)

 

물론 시즌 전 5강 예상에도 없었던 팀이 정규시즌 3등으로 페넌트레이스를 끝내고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시즌을 끝낸 일은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좋은 일이다. 자랑스럽다, 잘 싸웠다고 자축하는 주변의 반응이나, 언론의 찬사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고. 나도 시즌 전 기대치에 비하면 이 팀이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올해도 결국 무관의 사슬을 끊어내지 못한 건 지겹다.

 

마지막 무대에 들어섰으면 결국은 승리해야 역사에 남는다. KBO 최다 우승팀이 KIA 타이거즈인 건 야구를 보는 팬이라면 누구나 안다. 그러면 최다 준우승팀은 어디일까? 아마 삼성인지 두산인지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거다. MLB 최다 우승팀이 양키스인 건 MLB를 조금이라도 본 팬이라면 대부분 안다. 그렇다면 최다 준우승팀은? 다저스? 자이언츠? 카디널스? 역시 어디인지 자신있게 바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다.

 

지난 10시즌간 9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올라왔다. 같은 기간 동안 더 많이 진출한 팀은 당연히 없다. 언제까지 명품조연에 만족하고, 언제까지 첫 우승에 도전하는 혈기에 찬 애송이 취급에 만족할 셈인가. 팬은 설령 잘 싸웠다고 생각할 수 있어도, 구단은 전혀 그래서는 안된다. 팬에게는 아름다운 도전기일 수 있어도 구단에는 그냥 세 번째로 정상탈환에 실패한 1년일 뿐이다. 프로야구의 간판 스타 외야수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고작 1-2년이 남았다. 메인스폰서 계약도 1년이 남았다.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너무도 분명하지 않나. 무슨 거물급 FA를 잡으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납득이 가는 전력보강을 바란다.

 

 

3. 그래도, 수고했다

생각해보니까 10년간 이 블로그를 하면서 선수들에게 직접적인 감사의 말을 쓴 적은 없는 거 같아서... 재주는 없지만 짧게나마 쓴다. 정규시즌 144경기, 포스트시즌 15경기 동안 보여준 선수들의 열정에 팬으로서 너무 고맙다. 우승까지는 한 끗이 모자랐지만, 이번 포스트시즌을 보면서 그게 의지나 정신력의 차이는 아닐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내년에는 정상의 자리에 올라선 게 그대들이기를, 우리의 기다림보다도 당신들의 땀방울이 보답받기를 원하고 소망한다. 이정후나 안우진은 말할 것도 없고, 포스트시즌에 뛰었던 모든 선수들에게 (그 동안 비난을 퍼부었던 선수들에게마저도) 고맙지만, 특히 김재웅-최원태 너무 수고했다. 그 동안 최원태 이름 석자만 들어도 증오로 이가 갈렸는데, 내년에는 조금 더 여유롭게 지켜볼 수 있을 거 같다.

 

그런데 산통깨서 미안한데, 내야수들 수비 조금만 잘하자. 화이팅.

Posted by 김에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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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키움 히어로즈

1. 총평

2승 2패, 여전히 나쁘지 않다!

 

물론 하위팀인 우리 입장에서는 가급적 빨리 SSG를 잡아내는 게 좋겠지만, 상위팀이고 상대전적에서도 뒤지는 팀을 그렇게 쉽게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 적은 없다. 2승 2패를 맞춰놨으니 이제 남은 3경기 중 2경기를 잡아내면 대업을 이룩한다. '지더라도 만족한다...' 이따위 소리는 이제 하지 않는다. 이런 개소리를 하면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하인 경기력을 보이면서 지는 게 이 팀의 특성인데, 작년 와카 1차전 끝나고 그런 얘길 써놨더라. 연봉 차이고 원정구장이고 전력이고 이제 그런 말 하나도 안 통한다. 우승하면 팬인 나보다 선수인 당신들이 더 좋다. 응원팀 우승과 삶은 무관하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옳았다...

 

 

2. 3차전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한 불펜 투수들의 구위와 수비집중력이 눈에 보이는 경기였다. 8회초 김휘집의 수비 실책과 라가레스의 역전 투런으로 끝나긴 했지만, 사실 이미 한유섬이 우익수 플라이로 아웃당할 때 X됐음을 실감했다... 유감이지만 이 팀 투수들에게 1점 리드를 막으라는 건 너무 가혹한 주문이다. 2018년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신재영이 올라왔을 때 그가 1점차를 지키리란 기대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지영의 1회 포일과 4회 주루사는 나와서는 안 되는 장면이었고 (물론 오태곤의 커트가 적절하기도 했다) 이전 타석에서 안타를 잘 쳐놓고 6회 2사 만루에서 김태진이 추가점을 내지 못한 게 아쉽기도 했다. 물론 5번으로 내려가서 박성한의 적선에 가까운 내야안타로 간신히 한국시리즈 무안타의 잔혹사를 끊은 김혜성이 더 책임이 크겠지만. (1루에 던질 각 안 나오니까 2루 주자 잡겠다고 3루에 바로 송구해버리는 스마트함에는 감탄했다. 김휘집이 이런 BQ 반만 따라갈 수 있어도 내년 풀타임 주전이다)

 

7회말과 8회말에도 계속 주자는 나갔지만 점수는 나지 않았다. 푸이그가 2루수 땅볼 쳐놓고 진루타 쳤다고 으쓱 하던데... 저기요? 니 뒤에 김혜성이거든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흩어졌다. (참은 건 아닌데 왜 흩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지영과 김태진을 믿었는데... 여기서 김태진이 또 어이없는 공에 헛스윙하면서 기회가 날아갔다.

 

9회에는 김혜성의 송구 정확도, 김태진의 포구능력, 푸이그의 탐욕송구, 맛이 간 김태훈이라는 폭탄들이 모두 터지면서 게임이 일방적으로 밀려버렸다. 그나마 서진용이 언터처블은 아니라는 걸 확인한 게 희망적이다. 이 경기를 보면서 다시는 김태진에게 1루수를 시키면 안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김태진이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다리를 찢어주고 있지만 그의 강습타구 수비에는 전혀 믿음이 안 가고, 그 이전에 1루수 경험도 거의 없는 야수한테 퓨처스 1경기 시켜놓고 1루수를 보라는 팀의 요구부터가 굉장한 무리수였다...)

 

 

사진: 키움 히어로즈

3. 4차전

'김혜성이 부상 투혼을 발휘하는데 어쩌라고? 모르지도 않았을 텐데 그런 상태인 선수를 4-4-5번으로 낸 네가 책임을 져라.' 하고 경기 후 감독 인터뷰에 비아냥거렸는데, 놀랍게도 전병우3(2번)-김태진4(5번)-이지영2(6번)-송성문5(7번)-신준우6(8번)이라는 라인업이 나왔다. 공격에서 아무리 허접해도 수비를 감안하면 김혜성을 뺄 수 있는 감독이 많지 않았을 텐데, 그의 결단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유연함을 올해 후반기 시작 때만 발휘해줬더라도 이렇게 개고생을 하면서 올라가지는 않았을 거다)

 

아무튼 김휘집-김혜성 아웃, 이정후 앞의 타격감이 오른 2번, 김태진-이지영의 중심타선 붙이기, 9번 송성문의 고립이라는 여러 가지 필요했던 사안들을 한번에 만족시킨 이 라인업은 대성공이었다. 2회와 3회 팀의 타선은 5번 김태진부터 8번 신준우까지 우안-투희번-1안-1안(스퀴즈 번트), 다시 우안-좌안-중2-우안으로 활발하게 돌아가며 순식간에 6점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동안 침묵하고 있었지만, 3회 2루타를 치고 나간 전병우를 불러들이는 이정후의 안타가 결승타가 됐다는 점도 긍정적인 측면이었다.

 

반면 7회말 2사 만루 풀카운트에 임지열을 상대로 한 박종훈의 무릎 아래 공이 스트라이크가 된 판정은 상당히 불만스러웠고, 7회말 신준우 타석의 김웅빈 대타나 8회말 전병우 타석의 김혜성 대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김웅빈 대타는 이날 최악의 판단. 여기에 SSG 타선은 6회부터 9회까지 4이닝 동안 계속 만루를 만들었고, 후반 이닝을 김휘집-김혜성-김태진이라는 공포의 수비 조합을 등 뒤로 하고 있는 투수들과 함께 보는 것은 심장 건강에 무척 해로웠다.

 

데일리 MVP를 이승호가 받았는데, 1회 영점이 잡히지 않으면서 추신수에게 볼넷을 허용하고 최정에게 바빕타를 맞아 실점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 믿음이 없었으나 (내 기대치는 2~3이닝 2실점이었다) 그 이후 놀랍게도 예전의 임팩트를 다시 찾으면서 4이닝 1실점이라는 대박을 터뜨렸다. 칼같은 제구와 우타자 몸쪽으로 팍팍 꽂히는 패스트볼은 정말 이게 지난 2년간 불펜에서 골골대던 그 이승호가 맞는지 의심스러웠을 정도. 조금 더 길게 끌고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올해 불펜으로 풀타임 뛰던 선수에게는 4이닝도 힘에 부쳤을 터. 6-7차전 길게 던질 수 있는 투수를 하나 얻었다는 것만 해도 대성과다. 뒤이어 올라온 양현은 1이닝을 9구로 깔끔하게 삭제했는데, 지금까지와는 확실히 다르게 스트라이크존 낮은 보더라인을 타고 제구가 잘 되는 모습이었다. 이영준이 흔들리자 6회 투아웃을 김선기로 끊은 거까지는 깔끔했다.

 

그러나 좌완 상대 특출한 무기가 없는 김선기에게 대타 전의산-1번 추신수까지 연이어 상대하게 한 판단은 무리수. 칼같이 빠른 투수교체를 가져가던 감독이 잠시 머뭇거린 게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다. 김재웅으로 7-8회, 최원태로 8-9회를 끊어가기로 계획했다던 입장에서는 김선기가 아웃카운트를 조금만 더 잡아준다면 두 선수의 소화 이닝과 피로도를 줄일 수 있으니 바로 내리기가 애매했을 거다.

 

김재웅이 김강민을 유격수 플라이로 잡고, 최정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은 다음 다시 한유섬을 유격수 플라이로 처리했는데, 8회 올라왔을 때는 두 번째 이닝이라 그런지 구속도 떨어지고 제구도 흔들리는 게 보여서 안타까웠다. SSG 타자들이 큰 점수차로 리드당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타석에 임해서 그런지 내야플라이가 유독 많이 나오는 날이었는데, 이들이 조금만 평정을 되찾고 스윙했더라면 키움의 허약한 불펜진이 결코 고비를 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1) 먼저 리드 (2) 꾸준한 추가점으로 압박 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경기였다.

 

8회말 2사 만루 위기를 최원태가 추신수의 좌익수 플라이로 넘기고 (문학이었다면 꽤 아슬아슬했다) 추가점 없이 다시 돌입한 9회. 김강민 중견수 플라이-최정 볼넷-한유섬 3루수 플라이까지는 생각하던 이상적인 그림이었다. 하지만 라가레스에게 투스트라이크를 잡아놓고도 투심을 빼다가 2루수 옆으로 빠지는 안타. (변화구를 왜 안 던지나 했는데 유튜브 보니까 본인도 거기서 슬라이더 던졌어야 하는 걸 알더라; 다음에는 꼭 실천해주길 바란다) 이후 제사장의 마운드 방문으로 사기를 올렸지만 박성한 타석에서 투수 땅볼 실책.

 

여기서 정말 끝난 줄 알았다. 이미 영점이 풀려서 슬라이더는 존 상단으로 날아가기 일쑤였고 (그 와중에 체인지업을 바깥쪽 아래 로케이션에 딱딱 꽂아넣는 건 정말 대단했다. 정규시즌 중에 좀 하지 자식아...) 실책한 패턴으로 볼 때 이미 멘탈은 날아갔을 테고... 그러나 놀랍게도 헛스윙 삼진으로 경기 종료! 이게 내가 욕하던 그 가을쫄보 최원태가 맞단 말인가? 포스트시즌에 병살을 잡고도 동공이 규모 7짜리 지진처럼 흔들려서 조기강판을 당하던 그 최원태란 말인가?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출처: 키움 히어로즈

4. 영웅, 우승도전

위에서도 썼지만 우승하면 네가 좋지 내가 좋냐, 그러니 우승해라... 연봉 많이 오르고 포스트시즌 보너스도 늘고... 이것도 진심인데, 이번 가을야구를 보면 정말 변화무쌍하다. '가장 중요한 상황에 쓴다'고 공언했지만 준플레이오프 때는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 피칭으로 일관하다가 플레이오프 2차전부터 필승조가 되어서 나타난 최원태, 후반기부터 플레이오프까지 '얘를 대체 왜 쓰지?' 하다가 한국시리즈 4차전에 대박을 친 이승호, 준플레이오프에선 셋업을 하다가 플레이오프부터 두 번째 투수로 전직해서 잘 하고 있는 양현, 준플레이오프 3차전 3실책의 악몽을 극복하고 다시 크게 활약한 신준우... 여기에 노구(?)를 이끌고 전 경기에서 마스크를 쓰면서 공격까지 이끌고 있는 이지영, 한국시리즈 4할의 사나이 김태진, 정규시즌 1홈런이지만 포스트시즌 2홈런으로 확실히 눈도장을 찍은 임지열까지...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고, 또 이전에 부진했어도 다음에 만회할 기회가 생긴다는 점이 이 팀 야구의 매력인 것 같다. 누군가 빠져도 대체자가 늘 나타난다는 것도. 그러나 언제까지 잇몸으로 버틸 수만은 없다. 시즌을 멱살잡고 끌어온 선수들에게 다소 과한 바람이지만, 이정후가 4안타 푸이그가 2홈런 안우진이 8이닝 1실점 해주고 5차전 이기는 게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다.

 

특히 이정후-푸이그... 네들이 못 치니까 득점은 해도해도 모자라고, 불펜투수들은 죽어라 견디고 있다. 2019년 조상우가 포스트시즌에서 8경기 9이닝 던졌다. 그때 146구인가 투구했는데, 김재웅은 현재 8경기 10이닝 160구 던졌다. 한국시리즈에서만 47-22-30구... 최원태는 8경기 9.1이닝 159구다. 김동혁도 8경기 7.1이닝, 양현이 7경기 6이닝 투구했다. 3년 전에는 6이닝 이상 던진 PS 불펜이 조상우 포함해서 오주원-김상수-안우진-한현희까지 다섯이었다. 지금은 넷이고, 김재웅-최원태-김동혁에 대한 의존도는 3년 전의 조상우보다도 훨씬 높다.

 

안우진의 물집 컨디션이 얼마나 괜찮아졌는지, 애플러가 다음 등판에는 더 잘 던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즉, 뻔뻔스럽고 미안하게도 또 불펜 삼총사의 최소실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무리한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면, 타선의 대폭발이 필요하다. 이제 한두 점 찔끔찔끔 낸다고 이길 수는 없다. 무조건 다득점이 살 길이다. 시즌에 비해서 별로 구속 증가 효과가 없는 SSG 불펜진, 4차전부터 다시 정신을 놓기 시작한 김원형 감독 등 여러 변수가 있지만 아무튼 타선이 반드시 해줘야 한다.

 

무엇이 두려워 앞으로 나가지 못하겠는가. 무엇이 아쉬워 지난 경기를 돌아보겠는가. 두 번만 이기면 정상에 설 수 있는 순간이 온다. 잃을 것은 무관의 치욕뿐이요, 얻을 것은 무한한 영광뿐이라.

Posted by 김에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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